<엄마, 나 또 올게> 에세이
아가야, 가여운 내 아가야.
어미 때문에, 어미 때문에.
아가야, 불쌍한 내 아가야.
열 손가락에 불 붙여 하늘 향해 빌어볼까,
심장에서 흐른 피로 만리장서 써볼까,
빌어본들 무엇하리, 울어본들 무엇하리.
아가야 아가야.
불쌍한 내 아가야.
내 사랑하는 아가야.
피어나는 국화꽃이 바람에 줄기째 쓰러졌다고 울지 말아라.
겨우내 밟혀 죽어 있던 풀줄기에서
봄비에 돋아나는 파란 새움을 보지 않았니.
돌쩌귀에 눌려 숨도 못 쉬던 씨 한 알이
그돌을 뚫고 자라 나온 것도 보았지.
뿌리가 있을 동안은 울 까닭이 없다.
생명이 있는 동안은 울 까닭이 없다.
밝은 아침에 해가 솟아오를 때 눈물을 씻고
뜰 앞에 서 있는 꽃줄기를 보아라.
햇빛에 빛나는 꽃잎을 보아라.
아가야 , 눈물을 씻어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웃어보아라.
쥐암쥐암 손짓 재롱을 부려보아라.
옹알옹알 옹알이로 조잘대보아라.
예쁜 나의 아가야.
우리 아기 피리를 불어주마.
우리 아기 우지마라.
네가 울면 저녁별이 숨는다.
<엄마, 나 또 올게> 1부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 - 우리 무남이 편
첫 닭 울 때 숨이 넘어갔다. 죽은 무남이를 들여다보니 속눈썹은 기다랗고, 보드라운 머리카락은 나슬나슬하고,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이 어미 가슴을 저며 내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얘기할 때마다 울지 않고는 못 배긴다. 헌 치마에 새처럼 말라 깃털 같은 무남이를 쌌다. 아, 지금 생각하면 무남이는 생으로 그냥 죽였다. 가여운 내 새끼야, 이 어미를 용서해다오. <저자의 아흔여섯 어머니와 일흔둘의 딸이 함께 쓴 찡한 우리들 어머니 이야기>
요즘은 에세이를 이어서 읽고 있다. 가슴 먹먹하게 하는 좋은 에세이가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너를 사랑하는 데 남은 시간>을 읽고 <엄마, 나 또 올게>를 읽으려니 눈이 시뻘게 졌다. 눈물 참느라 혼이 났다. 저자 황안나 씨는 어머니 홍영녀 여사의 일기장 8권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무학이시고 10년 가까이 병환에 시달리셔서 그렇게 많은 글을 썼으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서툰 글씨에 맞춤법도 엉망이지만, 글이 주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다.
나는 우리 무남이-편을 읽는 데 속이 상하고 슬프고 가슴 아팠다. 옛날 옛적 이야기인데 그토록 슬프게 와 닿다니... 생생하게 와 닿는 글이었다. 눈물이 철철 흐를 것만 같았다. 50년이 지나도 가슴에 사무친 이야기여서 그럴까.. 글을 배우시지 않았다면 글 풀이, 한풀이도 못하셨을 것만 같다.
나는 써놓은 글들이 부끄럽다. 그래서 이 구석 저 구석에 숨겨놓는다. 하지만 이만큼이라도 쓰게 된 것은 참 다행이다. 이젠 손자들이 보는, 글씨 큰 동화책을 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인어공주>도 읽었고 <잭과 콩나무>도 읽었다. 세상에 태어나 글을 모른다는 게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나마 잠 안 오는 밤에 끄적끄적 몇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말벗이 없어도 종이에다 내 생각을 옮기니 좋다. 자식을 낳으면, 굶더라도 공부만은 꼭 시킬 일이다.
-1995년 가을 엄마 홍영녀 <엄마, 또 올게> -
저자의 아흔여섯 어머니와 일흔둘의 딸이 함께 쓴 찡한 우리들 어머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