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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Mar 16. 2017

<새벽2시, 페소아를 만나다> 김운하

'독서의 기쁨을 창조할 수 있다면...'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명료한 답을 찾고자...

존재의 사실들에 대한 인과적 설명의 체계들
존재의 의미에 대한 해석의 체계들
이 모두를 동반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사고의 여정이 필요하다.

나는 누구인가?


- 김운하 -




01. 소설은 결코 철학적 명제의 대용품이 아니다.


소설은 살아 숨 쉬는 구체적인 인간들을 모델로 삶의 총체성을 그려낼 수 있는 장르이다. 문학은 일차적으로 읽는 이의 순수한 미적인 감동과 기쁨을 위해 존재한다. 표현과 문체는 언어 예술이며 마법이다. 미학적 서사구조, 철학적 의미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자 독자가 창조해 낸 것이다. 김운하  작가는 '책 읽는 행위 자체가 독서의 기쁨을 창조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말한다.

새벽 2시, 페소아를 만나다  / 저자 김운하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서머싯 몸 <인생의 베일> <면도날> <인간의 굴레>
도스토옙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마르셀 푸르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외젠느 이오네스코 <외로운 남자>
페터 비에리 <삶의 격>
빅토르 프랑클 <삶의 의미를 찾아서>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장 아메리 <늙음에 관하여>
필립 로스 <에브리맨>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제임스 설터 <올 댓 이즈>


02. 균형 잡힌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세속적인 것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자기완성을 추구해나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물질보다 더 소중한 가치와 삶의 의미를 망각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다. 삶이 완성되어가는 것은 자기완성의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 자체에 있다.
<위대한 개츠비> 중 p40

김운하 작가는 자신의 책을 통해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방식으로 사용되길 바라고 있다. 비록 내가 개츠비도 닉도 될 수 없었지만, 이 책에서 설명되는 위대한 개츠비는 훨씬 멋져 보였다. 지금 필요한 '그럴 용기'를 바라지만... 새로운 출발점이 이토록 불안한 이유가 무엇일까.




경험의 의미를 끝까지 추적하고, 거기서
자신의 미래 삶의 방향을, 자기 삶의 의미와
추구할 만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반성한다.

과감히 과거를 정리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새로운 출발점에 서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용기다.



02. 인간의 가장 큰 딜레마


딜레마란 그리스어의 di(두 번)와 lemma(제안 ·명제)의 합성어다. 일반적으로 사용될 때는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의미다. 결국 두 개의 판단 사이에 끼어 어느 쪽도 결정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말한다. <인생의 베일> 키티처럼 월터와 찰스의 사이에서 몸과 마음이 자아 속에서 따로 노는 것 같이 느끼는 것, 실제로 삶에서 그것이 드러나는 것, 이것을 실존적 심신이원론이라 부른다.

인생의 전반부, 삶의 진실, 참담한 인간의 운명. 진짜 소설은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대로, 추하면 추한 대로 진실을 탐구한다. 진실의 인식과 탐구, 그것이 소설 미학의 진정한 매혹이자 문학의 힘이다. 헛된 인생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후반부, 성숙한 존재로 불가해한 운명의 아이러니를 깨닫고 모두가 지나간 희미한 길을 따라간다면, <인생의 베일> 중 P64-76




페트로니우스 <사티리콘>
퍼시 셸리 시인 <인생의 채색된 베일을 걷어내지 말라> 시
카프카 <성> <소송>
한병철 <시간의 향기>
발터 벤야민 <경험> 에세이
블레즈 파스칼 <팡세>
괴테 <파우스트>
빅토르 프랑클 <삶의 의미를 찾아서>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
알렉산드로 졸리엥 <인간이라는 직업>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이상 <오감도> <거울> <날개> <종생기>
셰익스피어 <심벨린>
제임스 설터 <가벼운 나날>




03. 나를 세계로부터 분리해본다.



날카로운 분리감정은 불가피하게 끊임없는 어떤 '긴장들'을 조장하게 된다. 이런 긴장을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면 두 세계 사이에는 화해 불가능한 '불화'가 생기고, 이 불화는 때론 심각한 대결국면으로 치닫는다. 나의 자의식은 타인과 세계라는 나를 둘러싼 '객관적 현실'이 내 손가락에 걸린 줄에 걸려 조종당하는 인형들이긴 커녕, 언제든 쉽게 나를  파괴할 수 있는 적대적이고 무자비한 악마적인 존재라는 걸 더 통렬하게 깨닫게 된다. <지하생활자의 수기> 중 P85

자의식 과잉 인간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현실 극복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도스토옙스키 후기 작품들 속 모욕과 죄를 통한 정화와 구원의 주제가 등장한다. 굴욕과 죄책감 속에서 어떤 쾌락과 정화작용이 작동하는가?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이 떠올랐다. 나는 그의 진땀 나는 서비스를 잘 받아보았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리뷰 http://roh222.blog.me/220662457931



끊임없이 가면극을 벌어야 하는 사태 자체가
자기를 학대하는 과도한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결국 신경증이 된다.
심할 경우 우울증을 앓거나 암을 비롯한
온갖 육체적 병증으로 전이되기도 한다.




04. 저주받은 자유


우리 삶, 불연속적이고 파편화된 단편 모음 같다. 중간중간 그리고 처음과 끝은 상상력으로 채운다. '나'라는 존재는 현재의 시점에서 끊임없이 다시 쓰이는 허구의 소설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청년, 중년, 노후에 대한 두려움, 구체적인 대상 없이 그 원인과 대상이 모호한 추상적인 두려움이다.

불안Desassossego은 라틴어angustiae와 독일어enge에서 유래된 말이다. 두 단어 모두 '좁다' 혹은 '좁은 장소'를 뜻했다. 좁아지는 길 위로 고통에 대한 막연한 예감, 생리적 반응을 총칭하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인들이 불안한 까닭은 무엇일까? 전근대적인 신분제도에서 해방된 개인은 이제 행복과 불행, 삶의 목표와 방향, 심지어 삶과 죽음의 의미까지 일체를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했다.



우리는 자아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묻는 대신,
내 속의 다양한 잠재적 자아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우리는 그런 변신을 '생의 놀이'로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05. 영혼의 경험과 생의 의미... 생의 긍정.


집요한 관찰, 사고, 그리고 상상력이면 충분하다. 페소아는 어떤 경험도 그것이 기억으로, 기억에서 사고와 상상으로 나아갈 때만이 진정한 경험이며, 의미 있는 어떤 것이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는 '현실과의 접촉을 줄이는 대신 분석을 강화'하려 한 것이다. 마치 육체 없이 영혼만 존재하는 사람처럼.<불안의 서> 중 P146

'인간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엮어나갈 수 있는 기회는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나치와 죽음과 잔혹한 수용소에 대해, 삶이, 인간의 자유정신이 승리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삶과 고통, 태도와 자유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삶의 의미를 찾아서> 중 P181

삶도 무의미하고 죽음도 무의미하다. 잔혹한 운명과 갑자기 대등해진 느낌이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세상도 잔혹하다 할 수 없다. 혼돈 속에서 허무의 비밀을 찾아냈다. 사소한 것, 하찮은 것을 사랑하라. 인생에 뭔가 객관적으로 거창하고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일상의 하루하루 작고 소박한 것들 가운데서 생의 기쁨과 의미를 찾으라. <인생의 굴레>, <무의미의 축제> P182-186



의미는 만들어 내는 것이지 발견이 아니다.
생의 의미는 바로 당신이 창조하는 것이다.

삶이라는 예술작품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자기뿐이라 한들,
자신의 죽음과 함께 그것이 사라져 버린다 한들
그 아름다움이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06. 존재의 진실


노년의 진실... '존재하지 않음'을 향해 나아간다는 뜻이다. 내 할머니의 육신이 존재하지 않는 지금, 내 육신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되겠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그런 느낌을 연습해본다. 말이 이상하지만, 이렇게 없다고 생각해본다. 이상한 연습이지만,. 내가 없어도 그다지 이상할게 없는 세계를 인식해 본다.

* 프란츠 카프카 <변신>http://roh222.blog.me/220796040364



07. 순간을 영원으로...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죽음조차도 삶의 일부임을 긍정하면서,  피상적으로 이어지는 삶의 순간들을 죽음의 절대성과 결합하는 본질적인 순간들로 살아내도록 하는 내적인 힘을, 이 한 권의 소설을 읽으며 발견하게 된다. <댈러웨이 부인> 중 P269



이야기하기가 없다면,
고요한 고독 속에서 찾아드는 사색과 사유의 시간이 아니라면,
우리 삶은 그저 무의미한 현재적 사건들의 나열,
형형색색의 구슬들이 가득 담긴 자루에 불과할 것이다.

구슬들을 하나하나 꿰어 의미 있는 연결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기억의 예술이며,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이 비로소
인간다움으로 나아가게 되는 지점일 것이다.

- 김 운 하 -








<마무리>

다시 문학이고 싶은 마음, 독서의 기쁨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문학본능을 일깨우기에 충분했어요. 어려운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들려셔서 좋았고, 역시 어려운 이야기는 어렵게만 남겨졌습니다. 김운하 작가님은 벨레누스님으로 블로그 활동을 하고 계세요.  그리고 오랜만에 <새벽2시, 페소아를 만나다>를 집필하셨습니다. 저는 지금에서야 제대로 읽어 볼 수 있었어요.


못 다 읽은 책을 끝마치는 기분도 들었고, 어떤 대목에선 감정이입이 되기도 했어요. 쿤데라를 만나면서 머리가 무거워지기도 했고요. 페소아 관한 이야기 들을수 있어서 좋았어요. 다음에 여기에 소개된 책을 만난다면 잊지 않고 기억해 둬야지 싶었어요. 그리고 다음 책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미리 정해둔 책이 있었지만, 이 책 읽으면서 조금 늦추기로 했어요. 다시 카프카이고 싶고, 못다 읽은 것이 생각이 났어요^^; 못 다 읽은 책이 많기도 하지만.ㅎㅎ

김운하 작가님의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다른 인문서도 마저 읽고 싶어요. 더 알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시는 것 같아요. 처음 로맹 가리와 파스칼 키냐르에 대해 알고 싶어서 블로그를 헤맬 때 그래서 만난 이웃분들, 그래서 인연이 된 분들이 계세요. 벨레누스님에서 김운하 작가님이라는게 아직도 실감이 안나지만, 많이 알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 김운하 인문서 <카프카의 서재> 리뷰 http://roh222.blog.me/220553122420



김운하 작가 작품

소설
<137개의 미로카드> <언더그라운더>
<그녀는 문밖에 서 있었다>
<사랑과 존재의 피타고라스>

인문서
<선택, 선택의 재발견>
<카프카의 서재> <릴케의 침묵>

공저
<권태> <우리는 가족일까> <그로테스크의 몸>
<애도받지 못한 자들> <포르노 이슈>

번역서
<너무 이른 작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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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남은 말 :
삶이란,
이 얼마나 놀랍고, 위태롭고, 슬프고,
그리고 또한 아름다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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