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시인이라면. <보르헤스의 말> '내 이름은 잊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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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미로 속에서'
보르헤스 작품들은 실제와 상상이 뒤섞인 그래서 시와 산문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시는 이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상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시인이라면,
인생의 모든 순간이 시적이라고 느낄 것이고,
주무르고 빚어서 형상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일종의 점토라고 느낄 테다.
내가 뭘 썼다면 그래야만 했기 때문에 그렇게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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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도구
잘못된 인연
잘못된 행동
잘못된 환경
시인은 그 모든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불행조차도.
실수
악몽
밤마다
(우리의 과제)
그것을 '시'로 녹여내는 것.
밤의 우화
밤의 악령
악몽은 다른 꿈들과 다르다.
악몽,
불행의 느낌
지옥이 존재한다는 증거
특별한 공포
깨어있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한다.
악몽,
육체적인 고통처럼 날카롭게 참을 수 없는
영혼은 스스로 지옥과 천국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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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책
달의 역사
광명의 책
노래의 책
영원의 책
전통의 일부가 되는 것
언어의 일부가 되는 것
계속 살아남는 것
내 이름은 잊히는 것
가장 힘든 항해
눈앞에 닥친 항해
시간이 미래에서 우리를 향해 흘러온다.
미래가 과거로 변하는 순간
꿈에 충실하기
진실하기
단순한 단어 쓰기
평범하기
우주에는 평이한 것이 없다.
모든 게 복잡하다.
단순한 이야기로 위장한다.
느끼지 않는 순간
발견하지 않는 순간
그 순간 우리는 죽은 것이다.
우리는 줄곧 과거를 바꾸고 있다.
과거는 우리의 보물
과거에 내 삶의 물리적 경험이 더해질 수 있기를....
<보르헤스의 말> 중 비밀의 섬 p15-40
내 마음속 내밀한 곳에서... 세상에 두 종류의 시인이 존재한다.
하나, 열여덟 살에 자기 시를 모두 불태워버리는 좋은 시인과
평생 시를 쓰는 나쁜 시인이다.
- 움베르토 에코 -
저는 움베르토 에코의 저 말의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했어요. 한 동안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것 같아요.
평생 시를 쓰는 시인은 자신이 보고, 느낀 모든 것을 시로 남기는 것은 옳은가?라는 식으로 저도 모르게 옳고 그른 것으로 판단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했어요. 작가 움베르토 에코도 자신의 마음속 내밀 곳에서.. 숨겨둔 말입니다. 그저 자신의 생각일 뿐이니 괘념치 않길 바라기도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가 그렇게 보는 것은 안될 일이죠..
모두가 아름다운 시인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으니깐요. 또 여러 가지 감정을 담아서 이야기하니깐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모두가 시인이란 생각도 들어요. 다만 희망을 망쳐버리는 시인은 나쁠 거란 생각이 들어요. 버텨온 일말의 정신을 무참히 짚 밟아 버리는 이기적인 사람은 되지 않기를 바라요. 질문하고 답하기가 어려운 요즘입니다. 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곤 하는데 도저히 이것이 맞는 답인지 판가름하기가 어려운 것들이 있거든요. 묻지만 침묵으로 돌아오면 저는 갈 곳 없는 외톨이가 되어버립니다.
시인은 슬픈 존재 같아요. 아름다운 것 이면까지도 들여다보니깐요. 그것을 시로 표현하고 마는 자신을 탓하기도 할 테니깐요. 자신이 순수했던 존재로 남을 수 없음을 한탄할 테니깐요. 그럼에도 시인은 자신을 사물의 눈이 되려고 해요. 그렇게라도 세상의 한 부분이 되고자 합니다. 이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요. 이름은 어디에도 남지 않고 다만 사물들의 대화만 있을 뿐이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