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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Mar 22. 2017

내 이름은 해피다.

나는 다시 버려졌다.

달렸지만 집에 도착할 수 없었다.

주인은 나를 돌아올 수 없는 아주 먼 곳에 버렸다.

오늘은 적당한 바람이 부는 화창한 봄 날이었다.

걷고 또 걸었다.

배가 고팠고 의식이 희미해졌다.

밤이 되자 나는 이 쓰레기 같은 곳에서 비참하게 죽겠구나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꿨다.

행복했다.

내 이름은 해피다.



내 주인은 나와 닮았다. 예전 주인도 나와 닮았다. 매번 태어날 때마다 나는 주인을 닮았다. 이번 생은 버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개 인생은 좀 답답하다. 집을 지키던지, 버려지던지 왜 둘 중에 하나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 담벼락 밑이 저 대문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나는 저 문을 넘어 달리고 싶다.


개 인생 6년 만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담벼락이 사라지고 대문도 뜯겨 나갔다. 내 목줄은 여전히 매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건너편 도로도 보이고 공터도 보이고 오고 가는 사람들이 다 보인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짖어댔더니 목이 아프다. 오늘은 유달리 달이 참 밝다. 맙소사. 달 밝은 밤... 뜻밖의 밤손님이 찾아왔다. 나는 새끼 한번 배지 못한 개다.


아침이 되자 사람들이 모이고 땅을 파고 묻는다. 또 어떤 날은 밀가루 회반죽 같은 덩어리를 갖다 붓더니 또 어떤 날은 강철 같은 단단한 쇠를 땅에 세웠다. 이 사내는 내 이름을 계속 묻는다. 말해주고 싶지만 난 짖어댈 뿐이다. 나도 모르게 배를 보이고 말았다. 이렇게 지조 없게 굴고 싶진 않았는데.. 나는 왜 그랬을까.


오늘도 하루 종일 짖어 댔더니 힘이 없다. 밤이면 밤마다 바쁘고 요즘은 쉴 틈이 없다. 오늘은 우리 집 나이 든 여주인이 날 예쁘게 씻겨 주었다. 일찌감치 밥도 주고 아~ 배불러. 마당엔 볕이 뜨겁게 내려쬐기 시작했다. 또 한 번 짖어 볼까~


월~월~월월월월~~~~



무서운 주인 앞에서 꼼짝 못 하기 일쑤다. 어떤 날은 내가 뭘 잘 못했는지도 모른 채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그는 그래도 날 위해서 마당 한쪽 끝에서 한쪽 끝까지 뛰어다닐 수 있도록 긴 줄에 내 목줄 고리를 걸어줬다. 내가 움직이는 대로 그 줄을 따라 마당을 뛸 수 있다. 요즘 내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뛰어가서 짖었는데 이 고리가 벌어졌다. 조금만 더 벌리면 나는 여기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리 없이 집을 나섰다. 우리 여주인은 마실을 나갔고, 무서운 주인은 방 안에서 소리 나는 상자를 아주 크게 듣고 있었다. 아마 내가 나간 줄은 아무도 모를 테지.ㅋㅋㅋ 이 상쾌한 공기. 어쩌지 어디로 달음박질을 쳐야 하나 이 논두렁 얼마나 달리고 싶었던지. 목줄을 잡아당기는 통에 나 혼자 실컷 달려보질 못했다. 이게 자유라면 자유인가 보다. 나는 여러 번 환생한 개다. 자유쯤은 식은 죽먹기다.


내가 어떻게 놀았는지 그건 상상에 맡기겠다.  흰털은 반쯤 시궁창에 빠졌고, 흙 구덩이 뒹굴었다. 참새를 쫓았고, 이제 와서 다시 말하지만 내가 마당에서 참새를 여러 번 놓쳤다. 목줄만 아니었으면 그깟 참새 목숨 남아나질 않았을 테다.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개가 웃는 것 보았나? 나는 정말 웃고 있었다. 뛰고 달리고 온 동네 인사를 다녔다. 나의 기쁨을 공유하고 싶었다.


이제 해가 조금 남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동네는 내 발바닥 안이다. 금세 돌아갈 수 있다. 나는 샛길도 알고 있다. 그쪽으로 가야지.. 그래 이 구석이야. 어서 돌아가야지 안 그럼 어떤 혼구녕이 날지 몰라. 날 개조시키겠다고 매질을 할지도 모른다고.. 어어. 저기 우리 여주인이다. 나를 부르네.. 아 그새 보고 싶었나 보다. 나도 그런데..


왈왈~~왈왈왈왈왈~~~~



예상이 안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사라진 동안에 꽤 나를 찾아다녔나 보다. 젊은 여주인들도 나타났다. 작은 주인들은 나를 아주 가끔 예뻐하고 오래도록 못 본다. 밥 주는 여주인과 무서운 주인은 나를 매번 쓰다듬어 주고 이름도 불러주는데.. 내가 집을 나가니 다 모였네. 모처럼 내 꼬리는 힘차게 바닥을 쓸었다.


지금 내 주인이었던 당신은 나의 이름을 부른다. 나는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하게 되었다. 당신이 나의 작은 주인이었을 때 지금의 해피 이전의 해피였을 때 당신은 나를 참 사랑해주었다. 나는 그때 어쩔 수없이 버려졌고, 한 번은 돌아왔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다. 당신은 나를 잃고 한 참을 슬퍼했다.


나의 작은 주인아, 울지 않길... 나는 당신으로 인해서 여기 불려져 왔으니..

내 이름은 해피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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