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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Apr 24. 2017

다시 없을 시간, 나의 독서는 미완성

카프카를 위한 듯이 아직은 그렇게...

나의 세계가 흔들릴 정도로 읽기



해석을 통해 책은 계속 만들어져 간다.
책은 고정되지 않고, 계속 성장한다.
책은 항상 새롭게 읽혀야 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서평을 통해 구현된다.


책이 말하는 바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기
자신의 모든 가용 자원을 동원하여 총체적으로 읽어 들어가기


책에 매료된다는 것은
책의 매력을 알아본다는 말이다.
나의 세계가 흔들릴 정도로 읽어야 한다.


'사랑한 자'가 미워할 수도 있다.
미움은 사랑의 역전.
숭배자만이 배교자(믿었던 종교를 배신한 사람)가 될 수 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에겐 스승 파리아 신부가 있다. 

이프섬의 감옥에서 광인으로 통하던 파리아 신부는 몇 년에 걸쳐 탈옥을 기도하지만 선 하나를 잘못 그어 계산이 어긋난 바람에 실패한다. 그의 방에서 파기 시작한 땅굴은 당테스의 방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파리아 신부는 좌절하고 낙심했지만 자유 대신 제자를 얻었다. 

파리아 신부는 당테스에게 자신이 감옥에서 <이탈리아의 통일 왕국 건설 가능성에 관해서>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고 말한다. 당테스는 펜과 잉크, 종이, 활용할 자료를 어떻게 구했는지 묻는다. 파리스 신부는 셔츠 두 장을 종이 대신으로 삼고, 펜은 대구 대가리의 연골로 만들고, 잉크는 그을음을 포도주에 섞어서 녹여 만들고, 강조할 부분은 손가락을 찔러 피로 썼다고 답한다. 그리고 자료에 대해서는 이렇게 언급한다.


로마에서는 서재에 오천권 가까이 책을 가지고 있었지.
그것들을 읽고 또 읽는 동안에 정성 들여 가려낸 백오십 권의 책만 있으면, 그것이 비록 인간의 지식을 완전히 요약한 것이라곤 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인간이 알아야 할 할 만한 것은 모두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
그래서 나는 삼 년 동안 그 백오십 권의 책만을 자꾸 되풀이해서 읽었네.
그래서 내가 체포됐을 당시엔 그 책들을 거의 다 외고 있었으니까.
감옥에 들어와선 기억력을 더듬어서 그것들을 완전히 생각해 낼 수가 있었지.
지금이라도 투키디데스, 크세노폰, 플루타르코스, 티투스, 리비우스, 타키투스, 스트라다, 요르난데스, 단테, 몽테뉴, 셰익스피어, 스피노자, 마키아벨리, 보쉬에 같은 건 암송해서 들려줄 수 있네.
지금 열거한 이름들은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만 뽑은 거야.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1> 민음사 284쪽


이원석의 <서평 쓰는 법, 독서의 완성> 발췌




<채근담> 내 마음의 음높이를 조율하다.



뜻이 없는 삶은 죽음과 같다.
봄이 되어 화창한 날씨면 꽃들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새들은 고운 노래를 지저귄다.
사람이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어 부유하게 살더라도 좋은 말과 좋은 일을 행하지 않으면 백 년을 살아도 하루도 살지 않음과 같다.




정중동(조용히 있는 가운데 어떠한 움직임이 있음)은 서로가 그 속에 있다.
움직이기 좋아하는 사람은 구름 속 번개와 같고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다.
고요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차가운 재와 같고 마른 나뭇가지와 같다.
사람은 멈춘 구름 속에서 솔개가 날고 잔잔한 물 위에 고기가 뛰는 기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깨우친 사람의 마음이다.





행복은 마음대로 구할 수 없다.
불행은 마음대로 피할 수 없다.
스스로 즐거운 마음을 길러서,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없애서 
행복을 부르는, 불행을 멀리하는 
그 바탕과 방법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신을 가다듬어 집중하자
배우는 사람은 정신을 가다듬어 한 곳으로 집중해야 한다.
만일 덕을 닦으면서 뜻을 사업이나 명예에 둔다면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책을 읽으면서 풍류나 놀이에만 머문다면 결코 깊은 마음까지 다다를 수 없다.





깨끗한 마음으로 옛것을 배우자.
깨끗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야 옛것을 배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 가지 선행을 보고 이것을 훔쳐 자기의 욕심을 채우게 되고, 한마디 좋은 말을 들으면 그것을 빌어 자기의 잘못을 덮는 데 쓴다.





좁은 못과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연기와 안개가 깃든다.
아름다운 꽃잎도 풀빛도 모두가 다 
오도(번뇌에서 벗어나 부처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의 문장이다.





옳은 독서란 저자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독서를 잘하는 사람은 책을 읽어 손발이 저절로 춤추는 경지에 다다라야 한다.
그것은 고기잡이 때 소쿠리를 잊고 토끼 사냥 때 덫을 잊는 것과 같다.
사물을 잘 관찰하는 사람은 마음과 정신이 무르익어 사물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외형에 구애되지 않는다.

 







나의 독서는 미완성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을 3월 어느 날부터 읽기 시작했어요. 잠깐 읽다가 덮는 건 어려운 일이었어요. 카프카의 세상에서 여기 느닷없이 나오기란 숨 막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맘 놓고 읽을 때가 아니면 펼치지 않았어요. 읽기 어려움도 동시에 있었습니다. 조급함과 답답함이 뒤섞여서 포기하고 싶기도 했어요. 로맹 가리의 책 <하늘의 뿌리>는 분량에서 오는 버거운이 있어 오래 걸렸지만, 카프카의 <소송>은 읽기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가 컸습니다.  


http://roh222.blog.me/220987992928


그가 그려낸 세상의 단면의 시선은 공허한 것이기도 했고, 같은 패턴을 여러 번 반복해서 더 이상 화자에게 서가 아니라 등장인물에 따라 감정이 이입이 되는 그래서 카프카의 음성은 여러 곳에서 다중적으로 들려오는 듯도 했습니다. 이야기 흐름은 뒤섞여서 곤죽이 되어버린 듯도 했어요. 다른 책 조르조 아감벤의 <불과 글>을 통해 제 모호한 표현을 대신해 언어로 표현해 주는 듯했습니다. 저에게 그런 어려운 말이 없음으로 그래서 그들의 말속에서 정리되는 듯했습니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마무리 지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 긴 여운을 누구와도 나눌 수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카프카의 소설은 다양한 해석을 만들어낸다고 하지만, 카프카는 하나이고, 저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이런 저의 마음을 카프카를 위해 그간 모든 책이 그를 위한 것처럼 지나온 한 달 남짓의 시간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다시없을 시간인 것만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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