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눈 대화들, 짧은 단상
어떤 날은...
제각각 다르지만 결국 하나야.
그러니 힘들게 여러 곳을 다닐 필욘 없단다.
또 어떤 날은...
모든 골목은 겉도 다르고 속도 달라.
비슷해 보이는 골목도 거길 누가 다녔고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단다.
- 엄마의 골목 -
1985년 봄, 엄마는 남편과 사별했다. 아버지 나이 마흔여섯 살, 엄마 나이 마흔네 살이었다. 내 나이가 마흔네 살을 넘어 마흔여섯 살까지 건너가버리자, 마흔여섯 살에 죽은 남자와 마흔네 살에 홀로 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에겐 열여덟 살, 열여섯 살 철부지 아들까지 있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다. 마흔네 살이던 여자는 일흔네 살이 되었다. 그 시간을 이 여자는 어떻게 살아낸 걸까.
<엄마의 골목> P18 중에서....
엄마의 골목에 다다라서 그가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이기도 했다. 모두가 엄마의 골목에서 나고 자라났다. 그 골목에서 우린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잊어야 할까. 잊지 말아야 할까.
*
기다린다는 말이 견딘다는 뜻임을 국민학교 6학년 때 처음 알았다.
폐결핵에 걸렸다.
병이 완쾌될 때까지 1년을 기다렸다.
그때 나는 견뎌야 했다.
점심시간이나 체육 시간에 땀 냄새 풀풀 풍기며 들어오는 친구들을 피해 미리 뒤뜰로 나가 걸었다.
나무와 벤치 사이를 서성거렸다.
기다린다는 것은 견딘다는 뜻이고 견딘다는 것은 '혼자' 견딘다는 뜻임을 그때 또 깨달았다.
졸업을 며칠 앞두고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완쾌 판정을 내렸다.
나는 병원을 나서자마자 집까지 달려가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열두 정거장이 넘는 먼 길이었지만,
그날은 달리고 또 달려도 지칠 것 같지 않았다.
발뒤꿈치를 들고 무릎을 구부리며 엄지발가락에 힘을 실어 달려 나가려는 순간,
작은 울음이 뒤통수에 닿았다.
돌아보니, 엄마가 오른손바닥으로 입을 막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견디며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그런 나를 '혼자' 바라보며 견디고 기다렸던 것이다.
*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계획도를 아무리 근사하게 만들어도, 매일매일을 그대로 지키긴 어렵다.
몇 번 엄마에게 거짓말을 한 후 친구들과 놀러 다니다가 들키기도 했다.
엄마는 나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 벽에 세웠다.
어둠이 깔린 숲을 혼자 보고 있노라면, 무서웠다.
먼저 낯선 소리들이 밀려왔고 뒤이어 알아보기 힘든 형체들이 일렁거렸다.
동생과 함께 벌을 설 때도 있었는데, 동생은 15분도 넘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 나는 견뎠다.
겨울에는 추위와도 싸워야 했지만, 엄마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진 않았다.
차라리 숲으로 들어가서, 그 숲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엄마 대신 문을 열고 나와선 나란히 섰다.
내 눈길을 따라 어둠을 쳐다보며, 아버지는 짧게 물었다.
그럴 땐 이상하게도 평안도 사투리가 슬쩍 얹혔다.
"뭐이가 있나?"
아버지는 내 야윈 어깨를 감싸며 덧붙였다.
"담부턴 그러지 말라우."
<엄마의 골목> P34-36 중에서
나에게 김탁환 작가는 '의리'다. 그가 1995년 3월, 해군 장교로 입대하여 진해에서 훈련받았고, 진해서 습작을 시작한다. 1996년 장편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 이야기>을 출간하여 소설가로 등단했다. 훗날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원작이 되는 이순신에 관한 소설 초고 4,500매를 품고 1998년 6월에 제대한다.
2011년 소설 <불멸의 이순신> 8권을 오랜 시간에 걸쳐 읽고 그 해 11월에 마무리했었다. 그 시간이 나에게도 견디는 시간이었는데 '무엇을 위해서 견뎠을까' 의문스럽기만 하다. (군대 근처도 못 가봤지만) 이 작가를 통해 함께한 전우애를 느낀다. (웃음) <불멸의 이순신>을 읽고 나서 <삼국지>를 읽고 드라마적인 역사소설을 읽다가 <토지>를 못다 읽고 말았다. 내 기억이 간도에서 머물고 꼭 붙잡고 있는 건 언젠가 다시 이어 읽으려는 다짐이다.
김탁환 작가의 소설로는 <허균 최후의 19일> <노서아 가비>를 읽은 기억만 있다. 그리고 드문드문 에세이가 보이면 읽는 정도이지만, 나에게 이만큼 애정을 받는 작가도 나로서는 드물기 때문에 정말 내가 왜 김탁환 작가를 좋아하나 질문해보기도 한다. <읽어가겠다>, <아비 그리울 때 보라> 두 권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이번 <엄마의 골목>이 김탁환 작가를 정말로 들여다본 것 같아서 그의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골목이 있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두에게 엄마의 골목이 있다. 그래서 유사한 감정이 있고, 개인적인 감정이지만 공유되는 감정이기도 하다. 김탁환 작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쓰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살아계실 때 함께 걷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단다. 울음을 토하듯 쓰는 글 보다 나 역시 이런 글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 언제나 내가 김탁환 작가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사는 것보다 둘이 사는 게 낫지.
(...... 그럼 왜 계속 혼자 사셨어요?)
.....
늙는다는 건 낯설어진다는 거야.
그리고 끝내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게 되지.
하나님도 안다고 다 알려주시진 않아.
용기를 내어, 혼자 사는 게 어떠냐고, 외롭진 않느냐고 묻진 못했다. 외롭고 힘들다는 답이 돌아오면, 그다음 이야기를 어찌해야 할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비끼듯 외면했다. 비겁한 짓이었다. <엄마의 골목> P50
김탁환 작가는 어머니의 무게 중심으로 자신은 멀리멀리 떠나고 싶었다고 말한다. "네 맘대로 하렴" 어떤 대답에도 어머니는 자신의 의견을 따라주셨다고 한다. 인문대를 가고, 고전 서사를 전공하고 교수가 되었지만,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기까지 어머니는 막지 않고 뒤에 서 계셨다고 한다.
잡음이야 늘 들렸죠.
하지만 예전엔 대부분 무시했어요.
잡음은 그냥 잡스러운 소리에 불과하니까요.
그 가을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오래 듣고 또 들은 잡음은 달랐어요.
읽는 인간이 아니라 쓰는 인간이 되자는 잡음,
남의 작품을 평하는 인간이 아니라 내 작품을 쓰는 인간이 되자는 잡음.
멋지게 말하면 속삭임, 그냥 잡음...
- 김 탁 환 -
(어릴 적) 엄마는 가끔 내게 와서 오늘 읽은 이야기책의 줄거리를 물었다. 같은 책을 두세 번 읽는 이유를 묻지도 않았고, 왜 같은 책의 줄거리가 매번 달라지는가를 따지지도 않았다. 그냥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짧게 묻기만 했다. 나로 하여금 쉼 없이 줄거리를 이야기하도록 만드는 물음이기도 했다. "다음엔 무슨 책을 사줄까?" <엄마의 골목> P40
진해, 창원, 마산의 지하동굴과 치숙 삼촌의 단추의 공간은 어떤 이야기로 만들어졌을까. 상해로 떠나기 이전의 청년 백범은 어떤 모습일까. 구석 할매가 이야기를 멈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야기가 새롭게 만들어질 것을 예상해 보라고 말하는 듯했다. 기. 대. 하. 라. 고. 하지만 작가도 그런 섣부른 기대를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꼭 써봐야지 하는 다짐.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자신의 인생을 달라졌으리라 예상한다. 누군가의 존재가 누군가의 삶을 바꾸듯 누군가의 부재가 누군가의 삶을 바꾼다고... 하지만 그건 정말 모를 일이다. 작가가 되어서 다른 글이 썼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로 메우지 않아도 될 그런 이야기로 나아갔을지도 모른다. 글을 쓰며 견뎠던 시간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책과도 인연으로 읽게 되는 것처럼, 그 글을 쓰는 것도 인연이란 생각이 든다.
<거짓말이다>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는 모두 세월호와 관련이 소설과 에세이다. <엄마의 골목>을 진행하면서 팟캐스트를 하면 세월호 가족을 만나 이야기 나눈 일 소설 작업 등을 잠깐씩 비춘다. 순간순간 떠올려지는 것들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그리고 바다가 김탁환 작가를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구석 할매가! (웃음)
흑백다방은 1955년에 문을 연, 진해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 찻집이다. 현재는 영업을 멈췄고 대신 주말마다 연주회, 공연 등 각종 문화행사가 열린다.
김탁환 작가는 어머니의 골목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며 추억을 회상한다. 흑백다방, 북원로터리, 안민고개, 탑산 계단, 진해 남부교회, 진해 해군사관학교 담벼락, 장옥거리, 중원로터리, 진해 여중, 진해 여고, 진해역, 천가초등학교, 진해 포구, 진해 우도 벽화마을 등 어머니가 흔적이 남은 곳을 찾아 걷는다.
작가의 어머니 1942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 1946년 귀국선을 타고 돌아왔다. 진해 도천 국민학교, 진해여중, 진해여고를 졸업하고 국민학교 교사로 8년을 근하다가 결혼했다. 이미 죽어 하늘나라로 떠난 남편의 이름 석자가 적힌 문패를 대문에 걸어뒀던 어머니다. 집으로 오는 우편물에 아버지 이름 석 자가 주소 제일 끝에 적혀 있곤 했고, 엄마는 소리 없이 입술로만 읽으셨다-는 대목에서 슬펐다.
옛날부터 마산과 창원에 이어진 곳이 바로 진해다. 진해가 진해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 셋은 가깝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래서 백석의 마산길을 걷기도 한다. 마지막 산책길이 다가왔지만, 더이상 마지막이 아닌것 처럼 계속 걷고 계실 것 같다.
이 책을 쓴 김탁환 작가가 혼자서 이 길을 걷게 된다면 무척 슬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걸었다. 살아오면서도 다 듣지 못한 이야기를 이 짧은 시간에 다 듣는 것도 무리일지 모른다. 모르진 않지만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일 테다. 이야기보따리가 어디에서 나왔나 했더니 여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게 할 이야기가 얼마나 더 남았어요?
내가 죽는 날까진 네게 들려줄 이야기가 마르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마주 앉으면, 이야기가 흘러나와,
내가 전혀 챙겨두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술술 나온다니까.
신기한 일이야, 정말!
- 엄마의 골목 -
분명 이 책엔 울음을 토하는 글이 없는데도, 어머니의 잔잔한 슬픔이 섞이고 만다. 그래서 눈물을 삼키고 만다. 세월이란 게 이랬던 거라고 잘 견디고 버텼다고. 어머니의 회상씬엔 그 눈엔 어머니가 있지 않았다. 세월을 비껴간 다른 이가 앉아있었다. 잠시 거기에 살다가 막 돌아온 그녀가 있었다.
하염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어머니를 이해하는 찰나. 네가 없으면, 그 책 들고 걸으면 돼. 아들과 같이 갔던 골목이니까, 바꿔 말해 어머니가 없으면, 이 책 들고 어머니와 같이 갔던 골목길이 되고 만다. 이 책은 누구를 위했던 책이었을까. 서로에게 다른 풍경이지만 하나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