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는 의미를 득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짜이게 될 피륙, 업'
제가 멈추지 않고 제 생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마
무엇을 쓰느냐, 무엇을 나타내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
(무음으로 줄어드는 동안 준비되는 것,
소리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는 폭발적 에너지)
이런 공격, 이런 아타카 때문입니다
의미 너머에는 다가오면서 다가온 것이 있어요.
예술과 사랑이 만들어내는 여태 한 번도 없었던 당도.
당도하는 당도.
그게 아름다움입니다.
-파스칼 키냐르-
1959년 ~ 1965년 세브르 학교 다니던 이 시절 파스칼 키냐르는 2년 동안 디에프에 있는 바르 서점에서 책 판매원을 했다. 책을 파는 일을 맡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서고에 들어가 책을 읽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서점이 장서를 소유할 수 있고, 보유할 책을 늘릴 수도 있었다. 서점 재량으로 책을 관리할 수 있는 시대여서, 서고에 쌓아둔 책들을 희망 가격대로 팔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상점 내 테이블 위에 고서들을 전시하기도 하고, 진열창을 따라 인도 위에 가판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고서들을 놓을 수도 있었다.
1919년에 개업하여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1951년에 설립 된 작은 도서관으로 처음에는 르 미스트랄 ( Le Mistral )이라고 불렸지만 후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 변화는 실비아 비치(Sylvia Beach)가 유명한 고대 영국과 미국 문학의 참고 문헌으로 서점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한다.
파스칼 키냐르 1968년 3월-6월에 가업을 물려받아 오르간 연주를 할 결심을 하곤 앙세니 저택으로 돌아갔다. 매일 아침을 오르간 앞에 있었고, 오후가 되면 모리스 세브의 <델리>를 읽고 사랑에 대한 에세이를 썼다. 갈리마르 출판사 앞으로 240쪽 되는 에세이를 보내고 그 해 겨울 잡지 <레페메르>에 참여하게 된다. 미셸 레리, 파울 첼란, 앙드레 뒤 부셰, 자크 뒤팽, 이브 본푸아, 알랭 베인슈타인, 가에탕 피콩, 앙리 마쇼, 피에르 클로소프스키 등도 합류했다. 그는 갈리마르와 인연이 닿아 일을 시작했고, 1994년 기획위원과 사무국장까지 맡다가 그만두었다.
모리스 세브 Maurice sceve 16세기 프랑스 시인, 대표작 <델리, 최고의 미덕 대상>. 키냐르의 첫 문학 에세이기도 한 <델리의 말>은 바로 이 작품에 대한 에세이다. 키냐르는 <은민한 생>과 같은 장르가 없거나 혹은 장르를 초월한 형식의 문학을 바로 세브의 이 아름다운 시집에서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50여 개의 문장 아래 10음절 시구가 연속적으로, 파편적으로 실려 있다. 16세기 프랑스 리옹은 뛰어난 인쇄술의 발달로 활자와 제본이 아름다운 책들을 많이 제작하고 있었다. 당시 인쇄술의 질과 격을 이 아름다운 시집에서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고들 한다. 페르네트 뒤 기예라고 집작되는 델리라는 한 여성에게 바치는 사랑의 시인데, 사랑의 기쁨, 희망, 회환, 그 씁쓸함과 고통 등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중 마지막 왕국 시리즈는 키냐르가 1996년 갑작스러운 혈관 출혈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귀환하는 경험을 하고 쓴 <은밀한 생>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마지막 왕국' 시리즈를 전체 14권으로 구성하고 각 권의 제목도 미리 정해놨는데, 가장 먼저 쓴 <은밀한 생>이 제 8권에 해당하고, 전체 14권 중 한가운데에 오게 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쓴 작품이기에 비유적으로 한중앙에 놓았다고 키냐르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은밀한 생>은 단독 작품으로 1998년 먼저 출간되고, 정작 제 8권이 나올 때는 그 권을 건너뛰고 바로 제 9권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출간 방식을 택했다. 국내에 출간된 <떠도는 그림자들> <옛날에 대하여> <심연들>은 제 1~3권이고, 제 1권 <떠도는 그림자들>로 키냐르는 2002년 콩쿠르상을 수상했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제 9권 <죽도록 생각한다> 까지 출간되었다.
<은밀한 생> 리뷰보기 : http://roh222.blog.me/221094679350
http://roh222.blog.me/221396713402
1966년 대학 서점에서 자크 라캉의 <에크리>와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 에밀 뱅베니스트의 <일반언어학의 문제들>도 함께 샀던 기억이 납니다. 대단한 해였어요. 모든 봄이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요.
책을 사기에는 너무나 기분 좋은 봄이었어요.
http://roh222.blog.me/221431422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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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꼭 동일하지는 않지만 자신이라는 것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독서 속에서입니다.
저는 메디타토르 이메디타투스meditator immeditatus라는 개념을 제 마음속에서 소중하게 여깁니다.
비매개적 매개체.
거기 있는 것이 보이면 어떤 것 앞에 있을 수 없어요.
그것이 바로 순수한 스탕달입니다.
자신의 욕망 속에서 영영 길을 잃어야 합니다.
자신의 독서 속에서.
자신의 감시 속에서.
자신의 황홀 속에서.
정신은 뭔가 할 것을 찾고 또 실제로 하는 것 같지만, 결국 머리를 푹 숙인 채 사회적 통합체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물에서 물을 깃듯 알아본 것을 끌어내보지만, 결국 텅 빈 통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 텅 빈 곳은 자기 육신이 들어갈 구멍, 결국은 죽음이죠.
읽는다는 것.
지적 쾌락은 애로틱한 것.
사랑이 몸을 변화시키는 것.
독서 속에서 언어가 감수성을 변모시키는 것.
읽힌 경험들이 지금의 경험을 심화하고, 타자 혹은 죽음이라는 벽면의 다른 쪽에서 파온 단어들이 지금의 단어들을 심화합니다.
왜냐하면 책 속에서 우리는 죽음 저편의 생을 만지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메타포 하기'
한 권의 소설은 한 삶의 공상입니다.
하나의 여행입니다.
삶 위에 던져진 카르멘.
영혼의 나침반을 완전히 분해해 불확실한 재조립을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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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라마 처럼, 내적으로.
성을 붙이고 이름을 붙이고.
시간과 계절 속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수동적으로.
모든 게 정말 있진 않아도 일단 있다.
추억들이 하나씩 올라오면 말하고 싶은 열망과 그에 알맞은 억양이 입술에 올라오면서 자연스레 써진다.
중간에 구멍이 뚫린 듯 연결이 안되고 말도 안 되는 기상천외한 것으로 밝혀질지라도 꿈꾼 것을 몹시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느낌. 그럴 때 재빨리 적어야 한다.
미신적으로, 맹신적으로 모든 것이 잡힐 때, 아니 잡히는 것처럼 보일 때, 그게 잊히지 않을 것 만 같을 때다.
물론 이야기의 얼개는 머릿속 저 깊은데서 아직 나오지 않고 입안에서도 들러붙어 좀처럼 나오지 않을 것 같지만, 이때 어떻게든 용기를 내어야 한다.
전속력으로 서둘러 종이 어디에라도 적어야 한다.
감상주의적인 토로여도, 이야기가 매끄럽지 않고 구멍투성이여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우선 적어야 한다.
다 헝클어졌어요 두려워하지 말고, 비웃음이 나올 만큼 우스워도, 너무 솔직한 고백 같아도 걱정하지 말고, 그렇게 한 달, 두 달, 석 달이 간다.
그 과정은 정말 힘들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재밌어진다.
이제 절단하고, 가학하고, 문법적인 것들을 꼼꼼하게 따지는 일을 한다.
이렇게 진행한 방식 덕분에 글에 활기가 생기고, 오렉시스와 코나투스가 생긴다.
그란의 일부는 아직 흥분 상태로 남아 있고, 또 어떤 일부는 약간 야한, 야생적인 비밀을 지니고 있다.
아직 더 솟구칠 게 남아 있기도 하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남자 혹은 여자 인물에게
어울릴 장소를 상상하는 것은 너무 즐겁고,
또 그에 어울리는 장소의 이름을 고르는 것도 탐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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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는 우리와 비슷해요.
우리처럼 물에서 왔고..
개구리는 둑길을 올라갑니다.
마치 우리가 빛이 가득한 강기슭에 던져지는 것처럼
하도 울어대서 목소리는 쉰 듯 거칠고, 목소리를 통해 자기 욕망을 불러내죠.
부드러운 여름밤 속에서 끝없이 외치며 하염없이 잃어버리는 목소리...
-파스칼 키냐르 -
그 벽화의 장면들이 문학적인 것은 아닙니다.
거기 그려진 장면의 의미를, 거기 표현된 말을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의 언어를 알지 못하니까요.
그러나 거기서 뭔가 말해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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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정말 예술이예요.
진짜 예술이요.
신의 가호 덕에 불손하기 짝이 없는 예술이죠.
근원에서 가장 가까운 예술이니까요.
영화는 꿈에 가장 가깝습니다.
소설은 꿈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가까울 뿐입니다.
미조구치, 구로사와, 스트로하임, 예이젠시테인, 베리만, 카잔, 비스콘티, 사티야지트 레이, 큐브릭, 오시마, 코폴라, 라스폰 트리에, 키아로스타미, 왕가위 같은 감독들이 만든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더 파스칼 키냐르.... 샹탈 라페르데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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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탈 라페르데메종은 프랑스 아르투아 대학의 불문학과 교수로 현대문학에 나타난 정신분석학의 영향 및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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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누구누구의 추종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튼 누구보다 더 파스칼 키냐르가 될 수 있다면이 좋을 듯하다. 추종자는 작가나 독자나 서로 노땡큐해야 되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은 그렇다. ('난 추종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반성하며...)
키나르는 "텍스트는 의미를 득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짜이게 될 피륙, 업"이라고도 썼다.
저는 제 안에 뭐가 자리 잡히고 나면 어떤 것도 남기지 않고 다 버릴 수 있어요.
도착하고 나면 미련 없이 떠나는 거죠. 벗은 몸으로..
자신 외에 어떤 것도 아래 두지 않으며, 자신을 떠받치는 힘을 강력하게 소진하여
자신 안에서 완전히 소비하는, 아무것도 태우지 않는 탈 것.
헌물(獻物)이 그러하듯.
- 파스칼 키냐르 -
파스칼 키냐르 <죽도록 생각한다mourir de penser>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