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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Sep 29. 2015

읽는 인간 - 오에 겐자부로

개개인의 독서강화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1935~) 는 팔레스타인을 위해 애쓴 활동가 에드워드 W. 사이드(1935~2003), 프랑스 여성 철학자 시몬 베유(1909~1943)를 언급하며 책을 읽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책을 읽으므로서 작가의 정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느끼고 이를 통해 독자는 발견하고 스스로의 문제를 깨닫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것이라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 안에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 정신의 움직임이 실제로 일어나고 우리는 그곳에 발을 들여 작가와 함께 하며 경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시몬 베유의 책 <중력과 은총> <시몬 베유 노동일지 - 자본주의 동력은 삶의 의미를 본질로 인식하는 것> <신을 기다리며>

에드워드 W. 사이드의 책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 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문학과 예술> <저항의 인문학 - 인문주의와 민주적 비판>  




제가 가장 궁금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작가는 어떤 정신 작용으로 글을 쓰는 것일까? 그래서 살아온 흔적을 살피기도 하고 작가에게 영향을 준 작가와 글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통해서 간접 경험을 한다고 생각했지요..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을 조곤조곤 작은 소리로 설명해주는 사람을 만났구나 하면서 오에 겐자부로 책을 읽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소설가라고 합니다. 그의 작품을 하나도 읽지 않고 이 책을 읽게 되어서 유감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의 책 <책이여, 안녕!> <개인적인 체험> <우울한 얼굴의 아이> <체인지링>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익사> <만 엔 원년의 풋볼> <말의 정의>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  



"평생 이 책을 간직하려고 적어둔 거야" 무엇이 이 열여섯 살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나만의 문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시를 쓴 사람의 문체로 진짜 내 글을 쓸 수 있다면, 이런 스타일로 표현할 수만 있다면,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화자가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그의 내면과 함께 제대로 그려낼 문장을 찾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의 성장기부터 지금까지의 독서와 글쓰기 활동, 가정사에 대해서도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엘리엇의 시처럼, 해질 무렵 노란 안개가 마치 고양이가 등이나 콧등을 비벼대며 거리를 걸어가듯 번져나간다는 표현 같은 거죠(p60)   



소설의 미래가 문체에 있다고 말합니다. 고교시절에 읽은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 <포의 시집>은 일흔이 넘어서도 소중히 읽으며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음속 깊이 간직한 문제와 인간을 뛰어넘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무언가와 같이, 실로 깊이 있는 것을 엮어내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시詩적인 것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찾는 일, 책과 만나는 일, 자신이 발견한 책 집필해준 사람들이 진정한 스승이라고 말합니다. 저 또한 로맹 가리, 파스칼 키냐르의 문체에 매료되었지요. 이런 감정, 이런 훌륭한 생각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이상 책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마음도 움직였는데 그런 이유는 워낙 독서의 폭이 협소하고 선택의 진중함이 없었던 터였죠.



재독의 방법도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즐거이 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좋은 번역서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원서로 공을 들여 읽어보길 권하시더군요.. 어려운 일이라 포기가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30년은 책을 읽는다면 시작은 가능할지.. 하고 상상을 잠시 해봤지만요. 아직은 더 많은 작가와 작품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넘칠 뿐이고 모든 게 더디기만 할 뿐입니다...

한 번 더 읽을 때는 방향성을 지닌 탐구가 되고 다음 무언가를 찾아 나서서 그것을 손에 넣고자 하는 행위로 전환된다.(p38)   



그는 스무 살 때 와타나베 가즈오(1901~1975) 선생의 강의를 듣고 선생이 번역한 가스카르 책을 자주 읽었다고 합니다. 원작과 대조해 보며 프랑스어와 문학을 동시에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소설을 쓰기 위한 준비는 프랑스어를 읽거나 영어를 읽으면서 갖췄다고 합니다. 외국어와 일본어 사이를 오가면서요. 언어의 왕복, 감수성의 왕복, 지적인 것의 왕복을 끊임없이 맛보는 작업이 새로운 문체를 가져다준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소설의 세계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습니다.  



오에 겐자부로가 20세기 불행한 작가 맬컴 라우리를 읽다가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시를 옮겨 읽게 되는 과정은 무척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블레이크가 '슬픔'이라고 영어 어휘로 쓸 때 'woe(비애)', 'sorrow(슬픔)', 'grief(비탄)'를 쓰는데 자신은 '비탄', grief라는 단어를 가져와 소설에 쓰고 싶었다고 합니다. 블레이크와 통하면서 맬컴 라우리와도 통할 수 있는 그런 걸 쓰고 싶다고 생각했답니다. 블레이크의 짧은 시에 지닌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지만 자신의 장남 히카리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 힘든 시기여서 이 글들과 함께 버티었다고 말합니다. '절망적으로 취했다'는 글 뒤로 1부가 끝나는 한 페이지가 무척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이 작가는 이렇게 글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괴로울 때는 주로 책을 읽습니다. 어떻게 쓸 것인가? 읽고 있는 책을 실마리 삼아 내 생활을 쓴다, 아이를 중심으로 쓴다,라는 식으로 써왔어요.(p95)



Can I see another's woe,

And no be in sorrow too?

타인의 슬픔을 보며,

어찌 나 또한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까.


Can I see another's grief,

And not seek for kind relief?

타인의 한탄을 보며,

어찌 따뜻한 위로를 구하지 않을 수 있을까.


Oh, he gives to us his joy,

That our grief he may destroy;

Till out grief fled and gone,

He doth sit by us and moan.

오오! 그분은 우리의 탄식을 부숴버리려,

그분의 기쁨을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의 탄식이 사라져 없어질 때까지

그분은 우리 옆에 앉아 신음하고 계신다.  



소설가의 인생에서는 그렇게 이상한 일이, 또 자기반성의 기회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찾아올 때가 있다는 고백을 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의 관계가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무거운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읽는 책을 연결시켜 어떻게 소설을 썼는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 책은 강연했던 자료를 엮어 만든 책이라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읽은 책들과 추천서들이 많았습니다.

인간은 상상력을 발휘한다, 윤리적 측면을 생각한다, 지적으로 다양한 추리를 하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을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람이 단테다.(중략) 상상력이라는 인간의 힘은 다양한 것을 꿈꾸기도 하지만, 진정한 진실이란 무엇인가를 추구하며 사고하는 것이야말로 상상력의 중심 기능이며, 단테는 이를 발 취하여 글을 썼다.(p130-131 존 라스틴의 단테 비평 중...)



저는 틈틈이 노년에 읽을 책들을 나름대로 선정하고 있습니다.  연암 박지원의 글을 읽은 다음 헤세의 전 작품을 읽고,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완독하고, 맨 정신으로 읽을 수 없다는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다는 계획이죠. 더 리스트에 추가될 예정입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책 읽는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헤매지 말고 이렇게 읽어보는 것 어떻겠습니까?"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가 오래도록 읽은 작품은 저에게 너무 어려운 책들이라 선 듯 손이 갈지 모르겠습니다.  



이상한 논리지만 책을 찾는 일이 어떻게 보면 쉽다고도 생각했어요. 각 나라에서 가장 글을 잘 쓰는 사람, 인정받은 작가를 찾아 그의 작품을 읽는 것만 해도 평생 못다 읽으리란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로맹 가리나 파스칼 키냐르가 프랑스에서 1등은 아니에요. 제가 그들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 거죠? 누군가를 통해서 이어질 뿐이란 생각도 듭니다. 저는 제 능력이 닿는 한에서만 읽어갈것이란 예감을 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한계치라는 게 있다는 걸 느끼거든요... 당장 지나가버리는 하루는 잊히지만 책은 오래도록 남는다는 걸 알았어요. 책으로 하루를 완성하는 삶이 행복일 수 있음을 저는 이제야 알았네요.


<불을 둘러싼 새> 단편 중
둘 다 반백의 중년이 되어 마을 의사가 된 친구와 재회하는데, 내가 휘파람 이야기를 하자 그는 그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의 영혼'은 기억한다. 그리고 나조차 믿지 못할 한 편의 시가 나의 입가에 떠올랐다. 나는 그것을 당신의 노년을 위해 적어둔다.








by 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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