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어버림
2020년 7월이 지나고 8월 당신과 나는 안녕히
당신 생일은 제 생일 다음 날이었어요
저는 7월이 되면서 온통 제 생일만 누누이 당신에게 축하받았고 기뻤고 과분했어서 조금 미안하던 참이었어요
받으면 받을수록 좋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핑계를 데었죠
나는 뭘 해줘야 당신이 좋아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때를 놓치기 일쑤예요
나의 성의 없음에 당신이 실망할걸 알면서 잘해주는 게 어떤 건지 아직도 헷갈려합니다
그저 당신이 주는 사랑을 기뻐하는 거 말곤 없으니 참으로 이기적이지 않나요?
미리 쓰는 편지는 저만의 약속인데 이것마저도 때를 놓치고 말았어요 전날엔 써둬야지 당일은 넘기지 말아야지 하다가 달을 넘기고 지금이 되어버렸어요
나도 당신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은데 무엇하나 지키지 못하고 다 당신에게 떠 넘겨 버렸답니다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최악의 해가 되었어요
설마 지금까지 마스크를 쓰고 있을 줄 몰랐어요 3월에 우리 마스크가 없어서 2주나 썼던 그날이며 마스크 5 부제며 약국 앞에 줄 섰던 일까지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아직도 실감할 수가 없네요
꿋꿋이 마스크를 쓰며 저는 퇴근 중이랍니다
당신에게 미안함을 담아 편지를 쓰고 있어요
당신의 구릿빛 피부가 빨래를 널어주느라 그런 줄 누가 알까요
당신의 땀이 요리를 하느라 가스레인지 앞 뜨거운 열기 때문이라 걸 누가 알까요
저만 알고 있는 당신이 참 소중하고 고맙고 근사합니다
가끔 제 입이 문제란 생각을 했어요
조금 더 착한 말 걱정 안 되는 말 해줬으면 좋았을 덴데
저는 당신이 주는 위안에 무척 안심하고 살았더란 말입니다
얼굴이 말도 못 하게 엉망일 때 피부과에서 대처하기 곤란한 지경인 만큼 괴로운 얼굴이었는데 당신은 싫은 얼굴 표정 안 갖고 절 보아서 저는 괜찮을 거야 마음 놓곤 했어요 거울 보면 현실이지만요
그런데 저는 괜히 당신 탈모 걱정하느라 굳이 말을 꺼내서 기분만 팍 상하게 하고 도움도 안 되는 말이나 하고 안 하느니만 못 한말만 해댔을까요
그래서 이제는 당신이 심하게 못난 얼굴이라도 잘생겼다고 안심시켜주려고요 ㅎㅎ
우리 사이가 매번 좋은 건 아니잖아요
(잘 아시겠지만) 우리는 위험이 치닫도록 격렬하게 죽도록 싸우는 자신을 잘 알고 있어요
어리석고 현명하지 못함을 알면서도 같은 일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괜히 짜증내며 티격태격 풀기도 하죠
몇 번의 고비가 마지막이었을지 또 다른 고비가 언제 올지 그런 두려움도 있어요 누군가 손 놓게 된다면 홀가분할까 그리워만 하게 될까 저울질하기도 합니다
곧 우리 만난지 20년이 되는데 (여행좀가게)코로나는 사라졌기를...
정원 있는 집을 사서 꾸미며 남은 생을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했어요 이 편지 끝에 이뤄진 일들이 펼쳐지길...
당신이 보고 싶은 날들이 켜켜이...
2020.08.03
훌리아
ps 앗 그리고 당신 헌신 덕분에 올 A받은 기쁨과 소소한 장학금 감사하며 졸업때까지 힘내서 잘해볼께요 당신부담이 늘지않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