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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Feb 17. 2021

다자이 오사무, 포스포렛센스phosphorescence

소설과 에세이 - 민음사 다자이 오사무 디 에센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원고지 앞에 앉았다.
이런 걸 진정한 수필이라 하는지도 모른다.

- 다자이 오사무 -



다자이 오사무 1948년 생애 마지막으로 발표한 <인간 실격>. 그에 매료된 지 5년이 지났다. 다자이 오사무는 작품 속에서 '인간이란 모름지기 피의 무게 생명의 거친 맛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광대 짓으로 인간에 대한 마지막 구애求愛를 펼친다.'라는 문구에서처럼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글을 쓴 게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생각까지 들게 했다. <인간실격>을 읽고 난 사람들은 작품의 주인공과 작가에게 '불꽃같은 분노의 세례, 비열한 배신자 명찰을'붙이며 비평한다. 그는 불명예마저도 의도한 게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2016.3.22 인간실격 리뷰

https://brunch.co.kr/@roh222/185



그의 별난 작품 하나를 아주 인상 깊게 보았고 시간이 된다면 다른 작품 읽어보고 싶었다. 그는 작품 속에 자신의 체험을 어느 정도 허구화하여 소설과 에세이의 중간쯤 되는 작품을 썼다. 본명 쓰시마 슈지, 1909년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에서 부유한 집안의 11남매 중 열째로 태어났다. 집안이 고리대금업 신흥 졸부라는 사실에 부끄러워했고 도쿄 제국 대학 불문과 입학 좌익운동을 했으며, 자살기도, 정신병원 수용 등 개인사가 우울하다. 1945년 일본이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후, '데카당스 문학', '무뢰파 문학'에 있어 사카구치 안고, 오다 사쿠노스케 등과 대표 작가로 불리며 정신적 공항상태에 빠진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지지는 받는다. 1948년 연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다마 강 수원지에 투신 생애 5번째 자살기도에 3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 역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지만 자신의 말만은 갖고 있을 작정인데, 당신은 완전히 과묵하거나, 아니면 남이 말한 것만을 흉내 내고 있을 뿐이 잖아요. 그런데도, 당신은 신기하게 성공하셨습니다.
- <여치> 중에서 -


<여치>는 다자이오사무가 당시 수입이 좀 생기면 다 써버리기 일쑤였고 '원고 장사꾼'이 된듯하여 그 경계의 의미로 쓴 작품이라고 한다. 자신의 속물근성을 훈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주인공 화자는 여성으로 화가인 남편을 관찰자로서 말하고 있다. 여성체를 가뿐히 선보이는 다자이 오사무를 엿볼 수 있다. '전깃불을 끄고 혼자 똑바로 누워 있자니, 등줄기 아래서 귀뚜라미가 열심히 울고 있었습니다. 마루 밑에서 울고 있는 거지만, 그게 마침 제 등줄기 바로 아래쯤에서 울고 있는 탓에 어쩐지 제 등뼈 안에서 작은 여치가 울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자그마한, 희미한 소리를 평생 잊지 않고, 등뼈에 품고 살아가자고 생각했습니다.'(p36)


다자이 오사무 진짜 속마음은 <여치>의 그녀처럼 '마음속에 멀고도 큰 프라이드를 지니고, 살그머니 살고 싶어' (p29) 했을까? 자신의 평범한 출생에 실망했다고 하는데 작가의 삶에 그래서 사활을 걸었을까? 그의 별난 작품에 웃음짓다가도 작가로서의 그의 고뇌는 그 바닥을 알 수가 없으니 어두움이 짙어진다. 그는 제멋대로 구는 낙천가로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써 내려간다. 자신에게 되돌리는 말들이 그에게 무엇으로 다가왔을까? 간직하고픈 것은 나에게 남겨두고, 당신은 빈손으로 갔을 것만 같다.





/사사로이 하는 이야기/

조금은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지만 예전에도 이러한 생각을 하곤 했는데.. 아무래도 여성은 여성으로 말이 드러난 시간이 역사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보니 남성 작가에 의한 여성, 그런 글이 다시 여성 스스로를 잘못 알게 하는 착오를 겪게 할 수 있다는... 오류가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여성이지만 나 스스로의 생각이 정말 나에게 우러난 그대로의 생각과 말일까 하는 그런 생각, 어디에서 의도되지 않게 주입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들.... 나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는 민주화와 여성인권을 빠르게 성장시켰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공동체로서 인간을 생각하는 방식을 찾는 것이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이라는 생각에 나 또한 동의한다. 페미니즘을 향한 타인의 공격성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여성해방운동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그 당위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마운 것들이다. 그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사회 뉴스를 볼 때면 할 말을 잃어버린다. 이 시간이 슬기롭게 지나길 바라게 된다. 당신의 생각(여성이든 남성이든)을 존중하지만 내 생각과 다른 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한을 정해 신불에게 기원하고 그 기한이 차는 것, 또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하는 <만원(滿願)>,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 소리 내어 읽으면 좋다는 <아, 가을>에서는 본업이 시인인 화자의 노트엔 가을에 대해 '서랍을 열어 사랑, 파랑, 빨강, 가을'이라 적혀있다. 일본 말로 아이, 아오, 아카, 아키라고 읽으면 그 어감이 남다를듯하다. <포스포렛센스phosphorescence> 인광, 푸른빛이라는 뜻으로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또 다른 현실 세계를 그린다. '이 세상에서 나의 현실 생활만을 보고 나의 전부를 이해하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리라. 동시에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는 바가 아무것도 없다.'(p68)


<기다리다> '기다리는 건, 당신이 아니에요. 간절히 간절히 기다려요.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 부디 기억해 주세요. 알려주지 않아도 당신은 언젠가 나를 보겠지요.'(p60) 유독 여성 독백체가 많다.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 특징이다. 다자이 오사무 디 에센셜에서 그러한 작품들로만 선별하였다고 한다. 1935년 <역행>을 아쿠타가와 상에 응모 차석에 그쳐 심사 위원이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항의 글을 발표하기도 한다. 여성과 자연을 그린 색채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들이 여성화하여 여성체로 쓴 이유는 작가들만이 느끼는 존재감, 사랑, 창조, 죽음, 우물, 무언가의 근원이라는 위대함 또는 가장 여리고 순수한 감성과 사랑을 위한 존재로서 그 이유는 단순하거나 다양함에 있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3자의 시선에서 느낄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서일까... '나'라면에서 시작된 이야기... 그것을 통해 전하고픈 이야기...




저희는 전쟁 중에 암거래 장사 따위를 해서 그 벌을 받느라 이런 도깨비 같은 인간을 떠맡아야만 하는 지경이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오늘 밤처럼 끔찍한 일을 당하고 보니 이젠 시인이고 선생님이고 나발이고 뭐고, 도둑이에요.(p111) (중략) 비인간인들 뭐 어때서요? 우린, 살아 있기만 하면 돼요!(p133)
<비용의 아내> -1947년 발표




<비용의 아내>는 다자이의 후기 단편들 가운데 걸작이란 평을 받으며 <인간실격>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전쟁 후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데카당을 표방하며 살아가는 오타니의 윤리성이 무너지며, 그의 아내 삿짱은 험난한 현실을 딛고 무능력한 남편을 대신에 진취적 인간성을 발휘하고 있다. 오타니가 도깨비 같은 인간임에도 부인하며 인간적이어서 돈을 훔칠수 밖에 없다고 말하니 기막힌 삿짱은 '비인간들 뭐 어때서요? 우린, 살아 있기만 하면 돼요!'하고 소리친다.





<마무리>

다자이 연보를 정리하며 인간실격을 떠올리기도 했다. 포스포렛센스... '이 세상에서 나의 현실 생활만을 보고 나의 전부를 이해하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리라. 동시에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는 바가 아무것도 없다.'

그의 자전적 소설에 대해 생각했다. 전기적 비평의 단점은 작품 자체의 미적 형상분석이 무시되기 쉽고, 작품의 현재성에 소홀할 우려가 있는 점이다. 주로 내가하는 것은 전기적 비평이다 '작가의 생애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 정리, 분류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텍스트의 부확정적 요소들을 해명'(문학비평론 참고)하고자 한다. 결코 삶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 그 사람의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힌트라도 찾듯이 파헤치고자 하면서도... 말로만 작품으로만 보아야지 한다...

포스포렛센스.. 당신의 현실 생활만으로는 전부 이해할 수 없어서 당신의 작품 속 정신의 족적을  찾아나선다고 하면 불가능을 넘어설 수 있을까?...







** 다자이 오사무 연보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군에서 신흥 상인이자 대지주인 부친 쓰시마 겐에몬과 모친 다네 사이에 열 번째 자녀로 출생. 본명 쓰시마 슈지

1912년 (3세) 부친이 중의원(일본 국회의 하원) 의원에 당선

1916년 (7세) 가나기 제일심상 소학교에 입학

1922년 (13세) 소학교 졸업, 6년간 수석, 교외 메이지 고등소학교 입학 1년 통학, 부친 아오모리현 다액 납세 의원 귀족원 의원

1923년 (14세) 부친 53세 별세 현립 아오모리 중학교 입학

1925년 (16세) 아오모리 중학교 《교우회지》에 작품발표, 작가의 꿈을 키움, 친구들과 동인지 《성좌》 창간, 희곡발표(1호로 폐간) 남동생이 동인으로 참가한 《신기루》를 창간해 편집을 맡아 소설, 에세이 등을 발표

1927년 (18세) 히로사키 고등학교 문과에 입학,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일본의 근대소설가, 「참마죽」, 「덤불 속」, 「지옥변」 등 단편소설)의 자살에 충격받아 학업을 소홀히 함

1928년 (19세) 동인지 《세포문예》 창간 생가의 치부를 고발한 장편소설 「무간나락」 을 발표, 게이샤 베니코를 만남

1929년 (20세) 남동생 패혈증 돌연 사망(18세), 기말 시험 전날밤, 다량의 칼모틴(안정제)을 먹고 하숙방에서 자살을 기도함

1930년 (21세) 도쿄 제국 대학 불문과 입학, 작가 이부세마스지(일본 원폭문학의 대표작 '검은 비'를 씀)에게 가르침을 받음. 고교 선배의 권유로 비합법 좌익운동에 참가, 도쿄 긴자 카페의 여급 다나베 아쓰미와 가마쿠라 해안에서 칼모틴으로 동반 자살 기도후 여성만 사망 그 해 12월 하쓰요와 간소한 혼례를 올림

1932년 (23세) 아오모리 경찰설에서 조사후 비합법 활동과 절연서약함, 단편 「추억」집필, 「어복기」, 「잎」, 「로마네스크」 등 『만년』에 수록될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

1934년 (25세) 동인지 《푸른 꽃》을 발간

1935년 (26세) 도교 대학 낙제, 미야코 신문 입사 시험 낙방, 가마쿠라의 산에서 자살 기도, 맹장염 수술후 복막염으로 중태, 진통제 파비날에 중독, 『일본낭만파』 5월호에  「어릿광대의 꽃」을 발표  「역행」  으로 제1회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라 차석에 그침 작가 사토 하루오(우울감을 탐구한 일본 작가)를 방문 이후 사사하게 된다.

1936년 (27세) 첫 창작집  『만년』을 간행, 우에노에서 출판 기념회를 갖음, 파비날 중독 증상이 극심해 입원 퇴원후 「창생기」,  「교겐의 신」 발표

1937년 (28세) 3월 아내 하쓰요의 부정을 알고 함께 동반자살 기도, 4월 『HUMAN LOST』 발표, 6월 하쓰요와 이별, 7월 창작집 『20세기 기수』 간행

1938년 (29세)  야마나시현 데카차야로 가서 창작에 전념

1939년 (30세) 스승 이부세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 「부악백경」, 「여학생」, 단편집 『사랑과 미에 대하여』 간행, 2차 세계 대전 발발, 「아, 가을」 발표.

1940년 (31세) 다나카 히데미쓰(일본문학사에서 무뢰파(無頼派) 작가로 분류)가 소설을 들고 미타카로 찾아와서 다자이와 첫 대면을 한 이후 사사했다. 「달려라 메로스」,  「여치」 발표

1941년 (32세) 「청빈담」,  「도쿄팔경」 등을 발표, 6월 장녀 소노코 태어남, 다자이 흉부질환으로 징용에서 면제 12월 태평양 전쟁 발발.

1942년 (33세) 장편 『정의와 미소』, 창작집 『여성-기다리다 여치 수록출간, 군사교련 받다 10월 모친 위독 소식에 귀향 12월 모친 별세(69세)

1943년 (34세) 「고향」을 발표, 장편 『우다이진 사네토코』를 간행

1944년 (35세) 『쓰가루』 집필을 의뢰받아 5~6월 쓰가루 지방을 여행, 8월 장남 출생, 창작집 『가일』을 출간, 영화화 됨

1945년 (36세) 공습으로 자택 파손, 가나기의 생가에 도착 8월 15일 일본 패전,  『석별』, 『옛이야기』 간행, 농지 개혁으로 지주 제도가 해체, 생가는 사양의 길로 접어듬

1946년 (37세) 큰형 전후 첫 중의원 의원 선거 당선, 「고뇌의 연감」, 희곡  「겨울 불꽃」, 『판도라의 상자』 출간

1947년 (38세) 오타 시즈코의 집 방문, 그녀의 일기를 빌림, 소설 「사양」에 반영됨, 몰락한 귀족을 지칭하는 사양족이라는 단어를 유행시켜 베스트셀러가 됨,  「비용의 아내」를 발표, 3월 차녀 사토코가 태어남, 11월 오타 시즈코와의 사이에 딸 하루코가 태어남

1948년 (39세) 『다자이 오사무 수상집』,  『다자이 오사무 전집』 간행, 5월 「앵두」 발표,  「인간실격」을 탈고한 뒤, 아사히 신문의 연재소설  「굿바이」 집필에 착수, 6월 13일 밤 도쿄 미타카의 다마 강 수원지에 야마자키 도미에와 투신함, 만39세 자신의 생일날 시신이 발견됨, 7월 유고  「굿바이」,  「인간실격」 작품집  「앵두(미남자와 담배 수록)」  출간, 11월 『여시아문』 출간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 다자이 오사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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