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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Mar 11. 2016

<우물에서 하늘 보기> 황현산의 시 이야기

우리가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저 하늘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제목부터 시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란 이것과 같다. 탄생과 죽음, 기원으로 가는 길 같다. 그곳에서 본 것은 하나의 빛, 하나의 시선, 하나의 무엇이란 생각을 했다. 황현산 작가는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로 대표되는 프랑스 현대시를 연구하며 문학비평가로 활동하며 '시적인 것', '예술적인 것'의 역사와 성질을 이해하는 일을 해왔다. 지은 책으로 <밤이 선생이다> <잘 표현된 불행> <말과 시간의 깊이> <얼굴 없는 희망> 등이 있다.

시의 가장 어려운 점은 연상하기다. 그래서 한 단어, 한 문장에서 멈춘다. 그리고 흩어진 이미지를 주워 담는다. 조금은 이해했을까 정도로만 안다. <밤이 선생이다>도 그렇고 <우물에서 하늘 보기>도 그렇고 제목이 참 좋다. 분명 나는 지나는 길에 제목이 참 좋구나 생각했을 테다.




시를 쓰게 하는 힘도 읽게 하는 힘도
우리에게 세상의 시간이 아닌 것 같은
다른 시간을 경험하는 데서 온다.

시인은 바다에 떠 있는 섬을 바라보며,
다른 해안에서 그 섬을 바라볼 사람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 섬에 가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상징 속에 살러 갈 수는 없다.

-황 현 산-



시인은 저 보이지 않는 삶을 이 보이는 삶 속으로 끌어당긴다. 예술가들의 미학적 재능은 질서를 바꾸는 힘이다. 모든 감각이 착란에 이르게 하고 광인이 된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것이다. 그들의 성장은 세상을 바꾼다는 의미다.


시인은 비애의 극한이 잊힐까 봐 두려워한다. 그 정지의 시간은 살아있는 것들 속에도 부재가 동작의 한 형식으로 끼어든다. 풀이하면 영원한 비극이 되어 남게 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좌악이 다른 좌악을 덮는다. 우리의 죄를 씻어주는 않는다. 이 삶을 이대로 놓아둘 수 없다.


오래 사물을 보고 있으면 그 사물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고, 새로워진 사물을 표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말'을 찾을 수 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다. '단 하나의 표현'은 인간이 사물을 보는 방식을 바꾸고,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바꾸고, 끝내는 인생관과 세계관을 바꾸는 말이다.



예술의 희생보다 세상의 희생이
먼저 있다. 예술이 세상을 낯선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갑자기 낯선 것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예술이 있다.

예술에 희생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희생 뒤에 겨우 예술이 있다.

믿음과 사람이 그렇게 어렵고,
믿음과 사랑이 그렇게 절박하다.

P130-131



시는 현실로부터 초탈한 것이어야 하고, 초탈한 시의 언어는 사물들의 외곽에 있다. 육체가 없는 혼들 같다. 시는 특정한 의미에 붙잡히지 않는다. 시 쓰기는 끊임없이 희망하는 방식의 글쓰기다. 글쓰기는 개인들의 독창적인 작업이지만, 문학을 사회적 필수 기능으로 만드는 것은 이 공동체적 열정이다. 희망은 달성되기 위한 희망이 아니라 희망 그 자체로 남기 위한 희망이다.



시를 읽고 쓰는 일은 희망을 단단히 간직하는 일이다.

p262



<마무리>
황현산 작가는 예술이라 부를 것과 우리의 시간들을 이야기한다. 그 시, 음악, 그림, 노래, 영화..... 지난 시간들과 함께 있었다. 슬픔도 다시 고통도 다시 되돌렸다. 잊지 말 것을 당부한다.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의 생산자고 목격자다.

우리가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저 하늘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무거운 구름이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



<제목만 보아도>
이육사의 광야 / 김수영 꽃잎 / 정현종 섬 /  김현승 눈물 / 김종삼 민간인 / 야니스 리초스(그리스 시인) 부재의 형태  / 박노해 그대 나 죽거든 / 한용운 당신이 가신 때, 사랑의 측량, 이별의 美의 창조 / 보들레르 길 떠나는 집시 / 박정만 우리들의 평화주의 / 최승자 기억하는가 / 정화진 고요한 동백을 품은 바다가 있다 / 진이정 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백석 고야(옛날의 밤) / 윤극영 꽃길 / 유치환 깃발


이것이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 유치환 <깃발> -



유치환의 <깃발>은 1939년 <청마시초>에 수록되어 출간되었다. 일본이 중일전쟁을 벌여 점령하고 미국과의 결전을 벌일 시점이다. "영원한 노스탈쟈" "바람에 나부끼고" "이념의 푯대 끝에"...... 이 아름다운 말들은 열정을 슬픔 속에 녹이고, 이 슬픔은 가다가 돌아선 의지의 알리바이가 된다.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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