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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Jul 28. 2021

이태원의 프래디 머큐리 '내일이 없는 것처럼.....'

픽션. 가공의 인물 혹은 이야기 따위...

카톡. 카톡. 카톡. 카톡.



메시지 수신음이 정신없이 연속해서 귀를 때렸다. 태오는 눈 감은 채 비개 아래 손을 넣어 폰을 찾았다. 눈이 부셔 눈을 찌푸리다 눈을 비비고 수신된 메시지를 확인했다. 희철의 카톡 메시지였다. “형 일어났어? 한낮인데 아직도 자? 어서 뉴스 봐! 터졌어!”라는 메시지로 줄을 이었고 마지막엔 뉴스 동영상이 링크되어있었다. 링크를 클릭하고 광고가 넘어가며 재생된 뉴스는 ‘서울 이태원 클럽 등을 방문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된 OO 강사 24살 A 씨가 5월 9일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역학조사관에게 동선을 고의로 숨겨.....’ 여자 앵커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희철도 태오도 OO 강사 A 씨가 누구인지 떠올렸다.

이태원에서 가장 규모가 큰 Yy클럽은 봄이 오려는 4월 말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태오는 자정 무렵 클럽에서 일하는 희철과 만나는 중이었다. ‘Love me like there's no tomorrow...’ 프레디 머큐리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해 달라는 멜로디를 시작으로 클럽 오픈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강렬한 비트 음악이 머리부터 발끝으로 진동이 느껴졌다. 태오는 긴팔 셔츠에 베이지 바지를 가볍게 입었다. 그는 나 홀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태오는 두꺼운 검은 뿔테를 쓴 희철을 바라봤다. “여기는 여전한데?” 희철은 과장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방역수칙 내려오긴 했는데 제대로 지켜지는 게 없지. 설마? 여기까지 코로나가? 젊은 애들은 걱정 안 해 걸리면 걸리라지 그래. 다들 먹고 마시다 보면 마스크도 벗고 있어. 숨 막혀서 어떻게 마스크 쓰고 흔들겠어? 형이야말로 언제부터 나올 수 있는 거야! 외국인들 많은데 영어가 능숙한 놈들이 없다. 내일부터 나올 수 있지?” 희철이 어깨로 태오의 어깨로 맞부딪쳤다. 태오는 적당히 웃어 보였다.

태오는 K 법학과를 입학한 후 적성에 맞지 않아 1학년을 겨우 끝마쳤다. 방학 동안 과외 알바를 하며 돈을 모으다 군입대를 했었고 제대 후 복학은 기한 없이 미룬 채 여행기간이나 늘려보자 싶어 Yy클럽에서 지난 1년간 일하며 돈을 모았다. 그러다 지난 연말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 19가 뉴스에서 드문드문 소식을 전하더니 국내까지 첫 확진자가 생겨났다. 태오는 1월 말 본가가 있는 대구에 내려가 어머니 태정을 보러 갔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인사드리고 올라가려던 태오는 며칠이라도 더 태정과 함께 보냈다. 오랜만에 뵌 어머니가 수척해 보이고 외롭게 느껴졌다. 태정과 자신은 특별하진 않지만 익숙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는 미안함을 안고서 돌아왔다. 서울에 자취방에 도착하고 나서 금세 한주가 지났다. 그런데 대구 S교에서 슈퍼 전파가 나타났다는 속보를 접하게 됐다. 매일같이 속보가 뜨고 2월 하루 확진자 백 명대에서 최고 천 명대 가까이 확진자가 치솟았다. 온종일 뉴스에서는 확진자 발생수와 마스크 부족 사태에 대한 보도였다. 여론은 악화되고 대구 봉쇄까지 거론되었다.

어머니 생각에 다시 대구를 방문하려 했지만 극구 말리셔서 마음만 졸였다. 태정은 이혼 후 자신을 홀로 키워냈다. 태정은 태오에게 친구이자 어머니이자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가리지 않고 영업직을 전전하며 열심히 저를 부양했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보이지 않게 최선을 다했고, 외조부와 외조모의 사랑으로 컸다. 다만 태정의 보이지 않는 기대에 태오 스스로 부담이 커져만 갔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100명대를 안정되며 지금의 봄이 왔다. 다행히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지냈고, 대구의 코로나 사태는 진정되었다. 태오는 일단 해외여행을 잠정 보류했다. 클럽 일은 희철에게 지난 1월에 넘기고 나온 터였다. 여행은 중단되고 희철의 권유로 다시 일을 하기로 했다. 무성한 소문처럼 Yy클럽은 게이클럽이다. 보통의 클럽과 다를 것 하나도 없지만 게이라는 선입견이 다른 클럽과 다르게 화려하게 포장되어 호기심에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외국어가 가능한 태오는 외모도 준수한 편이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여기서 일 할 수 있었다. 태오는 자신의 성적 지향과 별개로 자유로운 분위기의 Yy클럽이 나쁘지 않았다.

희철은 군에서 만났다. 유쾌하고 자유로운 성격의 희철은 경직된 군대에서 잘 버텼다. 제대 후 알바를 하며 제법 돈을 모으는 태오를 보고 희철도 관심을 보였고 당장은 Yy클럽에 자리가 생기지 않아 근처 다른 클럽에서 일하던 희철은 태오가 관두자 바로 Yy클럽으로 왔었다. 클럽 규모나 페이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는데 그땐 의아하기도 했다. 희철이 매니저가 불러 자리를 뜨자 태오는 다시 일할 클럽 내부를 둘러보았다. 성적 호기심으로 오는 사람, 이성애자, 양성애자로 뒤섞였다. 보이지 않는 선만 지킨다면 불쾌함 없이 한 순간의 나태와 방종 사이의 자유 또한 가질 수 있었다. 태오는 바뀐 스테이지와 BAR의 메뉴판을 재빠르게 확인하고 희철을 힐끔 보며 내일 보자고 손 흔들고는 돌아서 나왔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휴대폰 진동이 울려 발신자를 확인했다. 입대 전 과외 알바를 해줬던 현빈이었다. 희철과 동갑으로 현빈은 그해 수능을 보고 태오의 K대학에 입학해 같은 과 후배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꽤 쏠쏠한 과외비가 태오에게 도움이 되었다. 현빈은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에서 강제로 독립된 상태였다. 한마디로 집에서 쫓겨났다는 건데.. 그는 1학년을 마치고 휴학해서 바닥부터 강사직을 다시 배웠고, 태오가 제대한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태오는 지난 일들을 떠올리며 현빈의 전화를 받으며 클럽에서 걸어 나왔다. “형 오랜만이에요. 지금 어디예요? 우리 한 번 만나야죠. 형 보고 싶어요!” 현빈은 꽤나 쾌활한 목소리로 태오의 근황을 물었다. “오늘은 어렵겠고... 내일부터 Yy클럽에서 일하게 됐어 놀러 와라”라고 말했다. 일하면서 친구들을 만나기 어려워 거부감만 없다면 이곳으로 부르곤 했다. 현빈은 바로 내일 찾아가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현빈은 특이하게도 태오는 본 과외 첫날부터 호감을 보였다. “형은 첫눈에 반할 타입이에요.” 현빈이 말하기에 태오는 “그게 무슨 의미야 너 오해받겠다”며 피식 웃었다. 이에 현빈은 “나이 차도 없는데 형은 어른스럽고 일단 내 타입. 뭔지는 모르겠는데 느낌 있고. 나도 어른이 되면 형처럼 되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라고 말했다. 그땐 고 3인 현빈이 그저 솔직한  녀석이란 느낌을 받았다.

현빈의 부모는 이름 있는 대학 경제학 교수에 어머니는 대학병원 내과의사셨다. 현빈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거리감을 두고 행동하는 타입이었다. 그런 성격의 현빈이 자립했다고 했을 때 무척 놀랐다. 현빈은 부족함 없이 자라 생활 씀씀이가 헤펐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얄팍한 처신에 능숙해지고 깊이 사람을 사귀지 못했다. 조언이랍시고 말해준 게 있지만 당시엔 태오 자신도 어렸을 뿐이었다. 태오에게 있어 과외비가 만족스러웠다는 점이 현빈을 밀어낼 이유가 없었다고 스스로 여겼다.




서울의 밤하늘에는 별이 안 보이지만,

이태원의 밤하늘엔 오색 무지개 빛깔의 네온사인이 밤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1년 내도록 꺼지지 않는 불빛이었다.

태오가 자주 보게 될 풍경 속 하나다. 태오는 학교를 자퇴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군대에서도 고민했지만 나 홀로 여행을 하며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결정을 내리고 싶었다. 어머니 태정을 만족시키는 것이 큰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게 태오는 자신이 원하는 길로 내딛고 싶어 졌다. 자신이 원하는 것도 모른 채 살고 싶지 않았다.









5월의 밤이 시작되었다. 현빈은 Yy클럽을 이틀 연속 찾아왔다. 현빈은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워 보였다. 태오의 짐작대로 현빈은 군생활을 물었고, 자신이 잘할 수 있을지 물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고민이 되고 막상 닥치면 닥치는 대로 헤쳐나 갈 수 있다는 뻔한 대답을 해주었다. 이어 현빈은 모호한 미소를 짓더니 담담하게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백해 왔다. 자신도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이제야 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태오는 자신이 Yy클럽에서 느꼈던 점을 솔직하게 알려주었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끌림은 억지로 부정할 필요가 없고 우선 학업이든 일이든 원하는 일을 찾아서 해봐”라는 지극히 뻔한 말로 조언했다.

여름을 지나 가을에도 비말 마스크는 벗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태오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클럽 내 다녀간 후 2주간 격리생활을 했다. 이후 클럽 내 방역수칙이 강화되고 영업시간이 단축되거나 폐쇄되거나를 반복했다. 클럽에 다녀간 확진자가 이태원의 유명 ‘게이클럽’들을 다녀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성소수자들은 집중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인터넷 실시간 검색 창으로 ‘동성애’, ‘게이클럽’, ‘게이’, ‘수면방’, ‘성소수자’, ‘문란함’, ‘집단감염’ 관련 검색어가 이어 붙었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희철을 뒤로하고 태오는 Yy클럽을 떠났다. 또 다른 알바를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은 지지부진하게 이어갔다. 안정된 일자리는 더 이상 구하기 어려워졌다. 군 제대 후 복학한 다른 친구들은 비대면 수업에 불만을 토로하다 이번 학기에 다시 휴학을 했다.




태오는 BBC TV 채널에서 멈추고 화면을 보았다. “[특파원, 영어] 지난 5월, 한국의 코로나19에 감염된 OO학원 A강사가 이태원 클럽을 방문했던 사실을 숨기고, 직업까지 거짓말해 초기 대응이 늦어지면서 관련 확진자가 80명이 넘게 나왔습니다.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A강사는 평생 사죄하면서 살겠다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실형을 선고했으며... [뉴스 앵커] 이를 계기로 한국의 성소수자 혐오가 깊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태원 사태 이후 어떤 조치가 있었습니까? [특파원] 아직 한국에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없습니다. 처음으로 도입된 익명검사 실시하고,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긴급 대책본부’를 신속히 꾸려 대응했습니다. [뉴스 앵커] 방역 차원의 사회적인 거리두기는 사회적 전염병으로 낙인찍어 성소수자들 혐오만 키운 것 같군요. [특파원] 네 그렇습니다... (중략) 언론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만 BBC 코리아 프레디 머큐리였습니다.”

태오는 현빈이 가족과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노출이 꺼려 허위진술을 했다. 모자이크 된 황토색 수의 입고 법정에 출석한 현빈을 보았다. 태오 자신의 계획도 현빈의 계획도 클럽에서 성실히 일하던 희철에게도 모든 일이 어그러졌다. 태오는 어제 본 뉴스 속 현빈을 떠올렸다. 지금 태오는 어머니 집에 도착해 있다.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서울을 떠나왔다. 마당에 작게 핀 노란 민들레를 보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by 훌리아


p.s 신문기사에서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문제적 사건을 인용한 후, 이를 가공한 짧은 이야기입니다. (픽션, 가공의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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