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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Mar 31. 2022

글귀 하나, 봄 하나

3월에 핀 목련과 벚꽃

네 엄마가 내 삶이란다.
난 그녀를 사랑해.
그녀의 습관들, 시간들, 냄새들

- 파스칼 키냐르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











오래된 사랑이 있다.
오래된 사랑은 사랑의 맨 밑바닥에 있다.
첫사랑이 아니다.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들에게로 와서
오래된 사랑이 되었다.

- 파스칼 키냐르 <사랑의 탐구> -









나는 내 운명이 읽고 꿈꾸는 것임을 알았어요.
어쩌면 글을 쓰는 것도 포함되겠지만, 글쓰기는 본질적인 게 아니에요.
그리고 나는 늘 낙원을 정원이 아니라 도서관으로 생각했어요.
그건 내가 늘 꿈을 꾸고 있었다는 뜻이지요.

- 문학적 운명, 보르헤스 -










포르투게스 Poutugues
'오'는 '우'처럼 들렸고,
올리면서 기묘하게 누른 '에'는 밝은 소리를 냈다.
'스'는 실제보다 더 길게 울려 멜로디처럼 들렸다.

- 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









내 심장을 살라다오,
욕망에 병들고
죽어가는 짐승에 단단히 들러붙어 있어
이 심장은 자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니.
-
모두 그 관능의 음악에 사로잡혀

: W.B.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 가는 배에 올라)에 나오는 구절
- 필립 로스 <죽어가는 짐승> -








같은 자리 그 나무가 목련인 줄 10년 만에 알았을 때의 기분이란...

저렇게 큰 목련나무는 처음 봤다는 것이었다. 아직은 바람이 찬 때라 산책을 미루기만 했었는데 3월 27일 드디어 늦은 오후 청소와 빨래를 해치우고 단장하고 나선 길이었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동네 한 바퀴 산책이었다. 그 앞을 지나는 모든 이의 발걸음을 느리게 했다. 활짝 핀 목련을 눈에 한 번이라도 더 담기 위해서 천천히 지나쳤고 나 또한 그러했다. 오늘 나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고, 이 자리 이 나무는 목련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또 인식했다. 너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큼지막한 하얀 꽃 목련, 벚꽃보다 빨리는지는 꽃, 지고 나면 갈색빛 찧니 긴 채 길바닥에 버려지는 꽃, 내 기억엔 목련은 화려하지만 언제나 빨리 잊혀서 안타까운 그런 꽃이었다. 한 번을 제대로 못 보고, 봐도 모두 다 고만 고만한 나무 크기의 목련일 뿐 크게 감흥한 적 없었다. 이렇게 큰 목련 나무는 그것도 꽃이 만개한 목련은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도 시기를 놓치지 않고 너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람이 다소 쌀쌀하여도 산책을 미루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벚꽃은 그 옆에서 곧 자신도 만개할 것이라고 꽃망울을 먹음 채 꽃잎을 틔울 준비를 착착 진행 중이었다. 그 사이사이 목련과 어우러져 핀 벚꽃은 새초롬하니 보였다. 두 꽃 모두 소박한 들꽃과는 거리가 멀었다. 화려하면서 순백의 고상함을 가지고 있어서 눈부시고 따뜻하게 여겨졌다. 꽃향기까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온 사방이 새싹을 틔우고 공기 청정해져 숲 냄새 은은하게 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목련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한 부분은 이미 지고 갈색으로 쪼그라든 잎 몇 장이 붙어있었다. 이 한 주를 지나 봤다면 나는 너를 목련인 줄 모르고 또 한 해를 보냈을 테다. 오미크론 코로나 바이러스의 마지막 기승이라 믿고 바라보며 어서 이 시간이 지나길 바랐다. 3월은 봄이 올 듯 말 듯 그렇게 찬기운이 여전했다. 내 마음에도 봄이 올 듯 말 듯... 너를 보니 이미 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은 언제나 이렇게 마중 나와 나를 기다렸나 보다.


그 어느 때보다 기쁘게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다음 주엔 만개한 벚꽃도 놓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사진 몇 장과 여기에 글을 남겨보려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또 담아 잊진 않았나 되새김질했다. 나는 여전히 책상 위 한켠 <실종자>를 세워두었다. 카프카가 찾고 있는 자 바로 나일 거라 여기면서...  3월의 마지막 날이다. 3월 나에게는 고단했던 기억만 가득하지만, 목련과 벚꽃과 책이 있어서 그리고 당신이 있어서 살아난 듯 기쁘다. 또 이렇게 잘 마무리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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