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관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아니 에르노를 기리며 나도 그녀처럼 거짓 없이 나를 밝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숨기고 싶은 것들이다. 내 나이도 숨기도 싶다. 마흔둘은 누구의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아직 제대로 된 글을 쓸 수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제가 되면 그녀처럼 글을 쓸 수 있을까. 죽을 때? 맙소사.
번아웃이란 걸 처음으로 겪었다. 그냥 이전처럼 일이 하기 싫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멍하게 있고 싶다는 갈망에 빠져 모든 시간을 소비하듯이 버렸다. 아니 버려졌다. 내 시간이 하등 소중하지 않고 버려졌다. 이럴 수는 없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한순간 놓쳐버렸고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지도 않았다.
이 시간도 지나리 생각하며 올해 마지막 두 달을 남겨두고 있다. 조금 쉬어가면서 일하는 동안 무엇이 문제였는지 생각했다. 내가 1년간 책을 읽지 못할 정도로 늘어진 정신 상태를 가늠하고 반복되고 지루했던 일상을 살피고 어디에도 없는 '그것'을 알아채었다. 일만 있고 나는 없는 그런 삶이라니... 일에서 완수하는 뿌듯함이 있었고, 그 사이사이 여행하고 독서하고 사랑하고를 놓치지 않았는데 어째서 모든 걸 없듯이 지루하다는 듯이 별거 아닌 것처럼 살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코로나가, 학업이, 업무가, 변명일 수 없다. 그리고 나이는 더더욱 변명일 수 없다.
마흔둘, 그 해 마지막 두 달
시간을 버리는 일은 너무 쉬웠다. 어디에서든지 나는 스마트하게 인터넷에 접속했고, 단순히 TV를 보았고, 체력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게 귀찮아. 그 말을 일삼았고 일어나기도 눈을 뜨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고서는 일하는 동안 나를 잊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유쾌한 척. 완벽한 척. 가끔 동병상련인 듯 위로하는 척. 어디에도 사실 내가 없는 것만 같은데... 맙소사.
이것만 끝내면 쉴 거야
이것만 끝내면 정말 쉴 수 있어?
이것만 끝내면
이것만 끝내면...
언제까지 그 말만 되풀이할래?
어쩌다 기분을 끌어올려 탕진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거 병이야? 안 고쳐지는 거야? 이제는 될 대로 되라지. 아 모르겠다.로 끝마친 내게... 그렇게 마흔둘, 그 해 마지막 두 달이 남았다.
마흔둘, 그 해 마지막 두 달
마흔둘에 정감을 가지기도 전에 나는 곧 마흔셋이 될 테다. 마흔셋은 달라질 수 있을까? 아마 지금 내가 회복되지 않으면 이 병이 낫지 않으면 아마도 달라지기는 힘들 것이다. 아무튼 달라지고 싶어서 나는 생각하고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얼마 전에 깨닫는 것은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다시 펼치면서 다시 글을 곰곰이 읽고 리뷰를 몇 줄 남기면서 나는 이 진입벽이 높다는 그 너머를 넘는 그 숨차고 벅찬 그것을 느끼는 시간 속에서 아주 긴 긴 시간 속을 유영한다는 것을 거기에 나를 새기고 뿌듯해한다는 것도 그런 시간 속에서는 이런 번아웃은 없었다는 것도 다시금 알았다.
모든 걸 끝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것은 좀 어처구니가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계속 밀려드는 일을 끝내야 하고 그 사이사이 나를 살리는 것을 끼워 넣어야 할 테고 그 에너지는 내가 다시 만들어 내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나 체력. 그렇지 체력이다. 체력. 내 체력은 점점 나를 이탈하고 있다. 이탈하는 체력을 끌어올리려면 나는 일어서야 하고 걸어야 하고 근력을 키워야 한다. 먹어서 뱃살만 늘리지 말라는 말이었다.
한순간 늘어나는 살덩이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것은 내가 키우던 게 아닌데 어쩌다가 여기에 붙어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5월에 나는 다짐했었고 출퇴근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르막 길은 어느덧 가을의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만 포기해야 할까를 매일 생각한다. 그래도 눈바람 부는 겨울까지도 걷고 싶어 진다. 내 옆구리에 기생하던 그것은 조금 사라졌고, 저녁마다 나는 자세교정을 하며 스쿼트를 시작했다. 걷는 것 만으로는 근력을 키울 수 없다는 말에... 나에게는 내가 키울 수 있는 만큼의 근력이 필요하다. 무리하고 싶지 않고 조금씩 시도하는 것이 전부다.
마흔둘, 그 해 마지막 두 달
베르 숄렌, 독일어로 실종자를 뜻한다. 2020년 09월 30일에 선물 받은 책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 책의 제목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보내왔다.
베르 숄렌은 너야. 너라고.
카알의 트렁크는 결국 배에 두고 떠나왔더군.
그렇게 찾으려고 애쓰더니..
그래서 이 책의 끝은 어떻게 될 것 같아?
마의 100페이지는 넘지 못했어.
분발하라고!
너는 이제 44페이지에 섰어.
아직 고지가 멀었다고.
한 눈 팔지 말고 다시 여기로 돌아와.
널 기다릴게.
책과 나의 이런 아옹다옹은 다시 시작되었다. 내 주변은 모두 멈추고, 나와 책만 남았다는 생각 그리고 내 시간의 소중함을 느낀다. 나를 의식하고 내 존재를 느끼며, 주변을 더욱 관심 어리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게 한다. 소홀하지 않도록 한번 더 눈 마주침을, 사랑을 속삭이고, 온기를 나누며, 나의 긴 긴 시간에 감사함을 느끼도록... 당신과
마흔둘, 그 해 마지막 두 달
1년을 그렇게 번아웃이었다면 그 병이 빨리 나아서 돌아가고 싶다. 아직 그 과정에 있고, 노력 중이다.
베르 숄렌이여.
답하라.
무슨 말이든 해야지.
너는 알기라도 하지.
알면 다행인 것도 같으니깐.
베르 숄렌이여.
당신은 나의 친구
나의 배신자
무슨 말이든 해야지.
너는 알기라도 하지.
알면 다행인 것도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