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 출근하는 길 네이버 가살 가죽님의 <애도하는 사람> 북리뷰를 보았습니다.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고 슬펐습니다. 텐도 아리타 장편소설 <애도하는 사람>은 오늘날 이 사회에 넘쳐나는 무차별 살상, 학대 등 다양한 종류의 사건과 사고, 폭력과 상처를 마주했을 때,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질문과 답을 주인공 카쓰키 시즈토가 고인들을 애도하려 전국을 돌아다니는 이야기로 대신했습니다.
<애도하는 사람> 북리뷰를 통한 저의 리뷰이고, 지금 우리에 대한 리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순간에 놓여있는 것일까요? 생각이란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할 때입니다.
시즈토의 행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 정신병, 모종의 사주 등이 아닐까 하고 의혹을 받습니다. 한마디로 좋은 의도의 애도인가? 아무런 이득 없이 너는 지금 애도하고 있는지 모두가 소리 없이 의심만 키웁니다. 누군가의 죽음(희생자/가해자)에 따른 우리는 (애도/안도)를 하게 마련이고 그리해도 되는 감정인지 의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공 시즈토는 영웅과 성인의 죽음을 악당의 죽음과 똑같이 취급할 수 없고, 용서가 안된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여기서 작가는 무슨 기준으로 고인의 선과 악을 판단하느냐고 다시 한번 묻습니다.
가살 가죽님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를 안겨준 소설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에게 왜 애도하는 감정이 생겨났는지 왜 애도하느냐 묻는다면 그 말이 모호했을 텐데, 책의 '특별한 사람입니다....... 평범한 주부란 없답니다. 일반시민일 뿐인 사람도 없답니다....... 특별한 사람이 죽었답니다. /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이 구절에서 그 애도의 표현이 명확해졌다고 합니다.
저는 <애도하는 사람>이란 제목에서 많은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애도의 기간 동안 우리는 애도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통에 젖은 가족들을 위로하고 출상을 연이어 보게 되고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찾으려 많은 사람을 단두대 위에 차례로 올려놓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근조 화한조차 그들에게는 무거운 짐처럼 느껴진다는 한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 죄에 대한 처벌을 받는 심정일지도 모릅니다.
그 세월호 참사 아직 1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우리는 숨 막히는 참사를 또 목격하고야 말았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그런 참사는 겪지 않게 하겠다고 그 아이들 앞에서 다짐 또 다짐하였는데 어떻게 이런 지경이 되었을까요? 사회 시스템 매뉴얼이 휴지 조각되는 건 한 순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의 책임을 다하고 그 자리에서 그 문제만 해결하고자 했다면 이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걸 우리는 압니다. 제 위치에서 제 일만 잘하면 되는데 왜 무시하고 등한시할까요? 모든 화살은 결국 한 사람에게 갈 수도 우리 모두에게 갈 수도 있습니다.
저는 사망자 숫자가 거짓말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절망했습니다. 무슨 말을 더 덧붙일까 그런 자괴감만 남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런 자괴감을 갖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국가의 부채감을 우리는 스스로 지려고 하니 말입니다. 뉴스 보도를 맨눈으로 보기 어려워 피하고만 싶었습니다. 그중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았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안심될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이다. 그 사람들이 살 수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화 광부 2명이 매몰된 지 10일이 다되어 갑니다.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살리려 뛰어갈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는 일과 투표하는 일뿐이겠지요. 어느 작가님은 조금 더 일 잘하는 사람으로 잘 살펴보고 찍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때 그 말 진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희생이 커지고 나서야 우리는 그 실체를 보게 됩니다. 어디에서부터 썩어 들어갔는지 알게 됩니다. 그런데 또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득을 따지거나, 좋고 싫은 감정을 내세워 잘못된 답인지 알면서 또 같은 실수를 해버리고 마는 듯 보입니다.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건가'하는 그런 피 토하는 심정이랄까요. 저도 인생을 많이 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다. 하는 심정으로 항상 투표를 합니다. 그런데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 맞기도 합니다. 후퇴해서 다시 원점 되고 진전이 느려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애도 기간이 끝나고 마주해야 할 것입니다. 참사의 원인, 원인의 주체를 보고 한탄하기만 해서는 안 되겠지요. 세월호에서 겪었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가족들이 겪었던 모욕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들이 무슨 죄가 있었을까. 우리는 잊자고 그들에게 더 한 고통을 떠 안겼던 것 잊지 않습니다. 혼자 걷던 그 길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미안함이 있습니다. 또 이런 참사 앞에 이태원 희생자 가족들이 가장 큰 걱정입니다.
저는 책임 회피하고 연민을 모르는 공직자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책임을 다하고 할 바를 다하지 못하겠으면 그 자리에서 내려오십시오. 연민과 공감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공직에 있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네 일이 내 일이 아닐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