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글쓰기 #1
책을 읽지 않는 삶은 우리를 잠시도 놓아주지 않는 삶이다.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들처럼 온갖 잡다한 것들의 축적으로 질식할 듯한 삶이다.
문을 밀친 순간 쓰레기가 천장까지 넘쳐나는 걸 보게 되는 집 같다고나 할까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그녀는 자신에 대해 속속들이 이야기하며 당신으로 하여금 세상을 투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중략) 그녀의 글이 당신 마음에 와닿는 건 당신이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맛보는 감동과도 흡사하다. 꾸밈없는 현존과 세상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드는 존재 방식.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당신은 머리를 식히려고 책을 찾는다.
당신은 마음 내키는 대로 책을 펼친다.
정오의 햇빛을 받으며 깊은 독서에 빠진다.
그 시커먼 불길 속으로.
가시투성이 꽃 속으로 들어간다.
<이피게네이아>를 읽는다면.. 광막한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객관적인 눈으로 차분히 행하는 독서가 완벽한 독서는 아니다. 그런 독서가 핵심에 이르는 독서는 아니다. 그런 독서는 책의 검은 광맥을 건드리지 못한다. 책에 담겨 있고 당신의 눈과 삶의 저변에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반짝이는 진실의 핵을 건드리지 못한다.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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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선 피투성이 문장.
빛이 사라진 헐벗은 심장.
신경을 두드리는 잉크의 비.
이 언어가 현기증을 일으킨다.
영혼의 우물 속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당신을 당신 자신의 어둠 속에 난데없이 데려다 놓는 한 줄기 빛처럼
이 문장들이 당신 안에 울려 퍼지자 심연이 입을 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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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란 김빠진 삶의 장이고,
열정은 분열된 삶의 장이다.
그런데 사랑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 집 문 앞에 선 채로 웃음을 터뜨린다. 이 참담한 발견에,
이 모든 한심한 정의에 경의를 표한다.
당신은 17세기와 20세기를 싸잡아 비웃고,
사랑과 세상을 함께 품을 수 없는 이 영원한 무능을 비웃는다.
망가지기 쉬운 천사들과 튼튼한 개들을 두고 너무 한탄하지 않으려고 웃는다.
- <망가지기 쉬운 천사들> 편
두 유형의 인간
- 무가 되어버린 이들
- 어느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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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맨들, 무표정한 사람들, 무나 다름없는 대량 생산된 인간, 부재하는 인간, 전산화된 세상을 두루 누비고 다니는 사람, 이미 죽어 떠도는 시신, 조급한 태도에서 공허가 배어나는 사람, 모든 것을 수면 상태로 보는 사람, 돈이라는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 차가운 물질 죽은 언어를 캐는 사람, 이성과 야성과 힘, 직업에 안주하고 애정생활도 계좌도 안전한 사람, 존재감 없는 창백한 사람, 사교적인 인간, 유용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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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멀리, 세상 끝까지 가는 사람,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복잡한 사람, 과다한 유년기와 과다한 허기에 시달리는 사람, 위로받을 길 없는 사람, 얼굴에 천 개의 하늘이 드리워져 있는 사람, 심장에 모든 목소리를 담고 있는 사람, 세상에 무엇 하나 보태지도 감하지도 않는 사람, 자신이 세상에서 물러났음을 아는 사람, 생각이라는 가축떼를 몰고 가는 사람, 온갖 언어로 꿈을 꾸는 사람, 사막의 거주자들, 푸르른 사람들, 몸은 태양빛을 가려주는 천으로 물들이고 심장은 파랗게 굳어 있는 사람들. 신기할 정도로 무용한 인간.
당신이 책을 읽는 건 바로 그 사람을 보기 위해서다. 유량의 시간을, 잉크의 장막 밑에서 어떤 문장의 산들바람을 느끼기 위해서다. 당신은 한 책에서 다른 책으로, 이 야영지에서 저 야영지로 옮겨간다. 그렇게 독서는 끝이 없다. 사랑이 그렇듯이, 희망이 그렇듯이, 실현의 가망 없이.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내 삶은 고통이에요. 낮엔 삶이 나를 죽이지만 밤이면 내가 삶을 죽여요.
나는 여왕이 될 거라 기대했는데 이제는 구걸 밖에 할 줄 모르지요.
근사한 사랑을 하며 살려 했는데 추한 상처를 입고 죽어갑니다.
그렇긴 해도 난 이곳에 무사히 존재해요.
피폐해진 내 삶 속에 온전히 존재하는 내 생명 탓에 고통스럽습니다.
나는 성근 잎사귀들 속에 넘쳐흐르는 노래로 죽어갑니다.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