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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Oct 26. 2022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산문집

독서와 글쓰기 #1


책을 읽지 않는 삶은 우리를 잠시도 놓아주지 않는 삶이다.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들처럼 온갖 잡다한 것들의 축적으로 질식할 듯한 삶이다.
문을 밀친 순간 쓰레기가 천장까지 넘쳐나는 걸 보게 되는 집 같다고나 할까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작은 파티 드레스저자크리스티앙 보뱅출판1984BOOKS발매2021.03.25.





오랜만에 책을 읽겠다는 생각으로 집어 든 책이다. 얼마 전에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크리스티앙 보뱅의 <가벼운 마음> 을 적었었다. 그의 다른 책이지만 우선 읽어봐도 좋을 책이란 생각을 했다. 검색했을 때 '독서'라고 했고, 읽고 싶던 책의 작가이기도 하니 분명 마음에 들겠지 싶었다.


"책을 읽지 않는 삶은 우리를 잠시도 놓아주지 않는 삶이다.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들처럼 온갖 잡다한 것들의 축적으로 질식할 듯한 삶이다. 문을 밀친 순간 쓰레기가 천장까지 넘쳐나는 걸 보게 되는 집 같다고나 할까" 이 구절에서 나는 전자 형광펜으로 긋고 전자 책갈피를 꽂아 두었다. 왜냐면 내가 꼭 그러했기 때문이다. '머릿속이 어떻게 이렇게 엉망진창일 수 있는지 정말 책을 읽을 수가 없어'라고 1년간 핑계를 대며 독서를 미뤘기 때문이다.





마흔둘 그 해 마지막 두 달_브런치_ by 훌리아

https://brunch.co.kr/@roh222/430





나는 브런치에 글도 하나 남겼다. 이렇게 하고 또 독서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병이 낫지 않아서 일 테다. 이제는 독서를 미루고 싶지도 않고, 정신이 엉망진창이고 싶지도 않다.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은 세상의 본성과 사랑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발작 상태에서 되도록 멀어지고 차분한 마음으로 사랑을 기다려야 한다나...





그녀는 자신에 대해 속속들이 이야기하며 당신으로 하여금 세상을 투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중략) 그녀의 글이 당신 마음에 와닿는 건 당신이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맛보는 감동과도 흡사하다. 꾸밈없는 현존과 세상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드는 존재 방식.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피와 시간을 잃는 시간, 무얼 찾는지도 모르는 채 찾는다. 피로는 질투 같고, 거짓말 같고, 두려움 같다. 피로에 절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쉴 새 없이 하는 사람들이다. 휴식과 침묵, 사랑이 내면으로 파고들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삶이 부족한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 사이에 유리벽이 존재한다. - <그를 가만 내버려 두오> 편





당신은 머리를 식히려고 책을 찾는다.
당신은 마음 내키는 대로 책을 펼친다.
정오의 햇빛을 받으며 깊은 독서에 빠진다.
그 시커먼 불길 속으로.
가시투성이 꽃 속으로 들어간다.

<이피게네이아>를 읽는다면.. 광막한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프란츠 카프카 <실종자>에서 카알은 배에서 트렁크를 두고 나온다. 사실 그 트렁크를 갖고 내리는지 마는지 알게 되기까지 내 시간은 몇 년이 지나버렸다. 독서는 제자리걸음이고 카알의 고민은 나에게도 고민이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글쓰기를 상상하며... by 훌리아. '위대한 책은 그 책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시작된다. 그 책에서 점차 드러나 보이는 절망의 위대함을 의미한다. 책 위에 무겁게 드리워져 책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한참을 가로막는 그 모든 어둠을 의미한다. 책은 그렇게 시작된다.' - <망가지기 쉬운 천사들> 편





객관적인 눈으로 차분히 행하는 독서가 완벽한 독서는 아니다. 그런 독서가 핵심에 이르는 독서는 아니다. 그런 독서는 책의 검은 광맥을 건드리지 못한다. 책에 담겨 있고 당신의 눈과 삶의 저변에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반짝이는 진실의 핵을 건드리지 못한다.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
날이 선 피투성이 문장.
빛이 사라진 헐벗은 심장.
신경을 두드리는 잉크의 비.
이 언어가 현기증을 일으킨다.
영혼의 우물 속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당신을 당신 자신의 어둠 속에 난데없이 데려다 놓는 한 줄기 빛처럼
이 문장들이 당신 안에 울려 퍼지자 심연이 입을 벌린다.

**
부부란 김빠진 삶의 장이고,
열정은 분열된 삶의 장이다.
그런데 사랑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 집 문 앞에 선 채로 웃음을 터뜨린다. 이 참담한 발견에,
이 모든 한심한 정의에 경의를 표한다.
당신은 17세기와 20세기를 싸잡아 비웃고,
사랑과 세상을 함께 품을 수 없는 이 영원한 무능을 비웃는다.
망가지기 쉬운 천사들과 튼튼한 개들을 두고 너무 한탄하지 않으려고 웃는다.

- <망가지기 쉬운 천사들> 편





한 달 매일 글쓰기 챌린지_브런치_ by 훌리아

https://brunch.co.kr/@roh222/428






2022년 여름, 한 달 매일 글쓰기 챌린지를 했었다. "매일 조금씩 글을 쓴 나는 나를 조금씩 새기는 수작업을 하듯이 엮어내었다. 사라지지 않도록 여기에 건져내어 살아남게 했다. 나는 사라질 뻔, 아니 줄곤 사라지고 있었는데 멈출 수 있었다. 여기에도 공기가 있고 물이 있고 밥이 있다. 살아가는 곳이다. 가상이라고 할 수 있나? 실제 주인공인 내가 한 일이고 내 생각이고 나의 바람인데... 여기는 어디인가? 궁금해 말자. 카프카의 실종자를 어서 읽으러 가자!"라고 끝맺음을 했었다. 거기에서 내 목소리는 조금은 신명 나게도 들렸다._by 훌리아 황홀한 빛은 그대로다. 빛은 그 목소리로부터 온다. 온전한 결핍으로 환히 빛나는 목소리. 날 봐요. 날 좀 봐요. 광기에 들린 작은 말이 이 헐벗은 못소리를 밟고 하얀 마음속을 질주한다.-<날 봐요. 날 좀 봐요> 편






두 유형의 인간
- 무가 되어버린 이들
- 어느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 이들

**
비즈니스맨들, 무표정한 사람들, 무나 다름없는 대량 생산된 인간, 부재하는 인간, 전산화된 세상을 두루 누비고 다니는 사람, 이미 죽어 떠도는 시신, 조급한 태도에서 공허가 배어나는 사람, 모든 것을 수면 상태로 보는 사람, 돈이라는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 차가운 물질 죽은 언어를 캐는 사람, 이성과 야성과 힘, 직업에 안주하고 애정생활도 계좌도 안전한 사람, 존재감 없는 창백한 사람, 사교적인 인간, 유용한 인간.

**
훨씬 멀리, 세상 끝까지 가는 사람,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복잡한 사람, 과다한 유년기와 과다한 허기에 시달리는 사람, 위로받을 길 없는 사람, 얼굴에 천 개의 하늘이 드리워져 있는 사람, 심장에 모든 목소리를 담고 있는 사람, 세상에 무엇 하나 보태지도 감하지도 않는 사람, 자신이 세상에서 물러났음을 아는 사람, 생각이라는 가축떼를 몰고 가는 사람, 온갖 언어로 꿈을 꾸는 사람, 사막의 거주자들, 푸르른 사람들, 몸은 태양빛을 가려주는 천으로 물들이고 심장은 파랗게 굳어 있는 사람들. 신기할 정도로 무용한 인간.






당신이 책을 읽는 건 바로 그 사람을 보기 위해서다. 유량의 시간을, 잉크의 장막 밑에서 어떤 문장의 산들바람을 느끼기 위해서다. 당신은 한 책에서 다른 책으로, 이 야영지에서 저 야영지로 옮겨간다. 그렇게 독서는 끝이 없다. 사랑이 그렇듯이, 희망이 그렇듯이, 실현의 가망 없이.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지금 가장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었다. 숨겨진 삶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는 듯이 여겨졌다. 알면서도 계속 미루게 되는 일 중에 하나가 독서였다. 가장 좋아하면서도 가장 멀어져 버린 친구였다.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한데 만나기가 곤혹스러웠다. 우리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다고 그랬는지 나는 알면서도 외면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로 생각했다. 하지만 더 늦어지면 완전한 이별도 곧 닥치리란 예감이 들었다. 왜 어른들은 독서하지 않는지 생각했던 적이 있다. 너무 삶에 지쳐서 책이 장식품이 되어버린 사람들. 독서하는 사람은 일부다. 그들은 그 곱이 곱이를 넘겨온 사람들이다. _by 훌리아 그건 기도와도 같다. 책은 검은 잉크로 만들어진 묵주여서, 한 단어 한 단어가 손가락 사이에서 알알이 구른다. 기도는 침묵이다. 자신에게서 물러나 침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무용한 독서에서 유용한 거짓으로 건너가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책들은 당신이 먹는 빵과 뒤섞인다. 독서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전혀 혹은 거의 쓸모가 없다. 그래도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을 휩싼 흥분은 남는다. 기분 좋은 무력감이다. 피로감이랄 수도 있지만 특별한 피로함, 휴식이 되는 피로감이다. _<약속의 땅> 편





내 삶은 고통이에요. 낮엔 삶이 나를 죽이지만 밤이면 내가 삶을 죽여요.
나는 여왕이 될 거라 기대했는데 이제는 구걸 밖에 할 줄 모르지요.
근사한 사랑을 하며 살려 했는데 추한 상처를 입고 죽어갑니다.
그렇긴 해도 난 이곳에 무사히 존재해요.
피폐해진 내 삶 속에 온전히 존재하는 내 생명 탓에 고통스럽습니다.
나는 성근 잎사귀들 속에 넘쳐흐르는 노래로 죽어갑니다.

<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혼자 노래하듯이, 꿈을 꾸듯이, 절망과 웃음이 함께하고, 그녀의 사랑이 자신을 죽이고야 말 것이며, 아이도, 남편도, 그녀 자기 자신조차도 가지지 못하는 단 하나뿐인 그런 삶. 그녀가 글을 쓰는 것은 그 삶을 가지기 위해서이다. 독서와 글쓰기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의 없다. 부재 속, 결핍 속에서만 제대로 말할 수 있다. _<숨겨진 삶> 편


     


Christian Bobin



크리스티앙 보뱅

프랑스 시인이자 작가, 1951년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크뢰조에서 태어났다. 1977년 <주홍 글씨>를 출간, 아시시의 성인 프란체스카의 삶을 쓴 <가난한 사람들>로 이름을 알렸다. 유서 깊은 프랑스 문학상 되마고상 및 가톨릭문학대상, 조제프 델타이상을 수상했다.










<작은 파티 드레스>는 아홉 편의 이야기를 묶은 산문집이다. 특이한 점은 저자가 '당신'이라 부르는 한 사람의 생각의 동선을 따라가도록 되어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새 작중 저자가 가리키는 대상인지, 독자인 '나'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게 들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읽어나가다 보면 '나'로 생각하게 되고 말았다.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명상 같은 책이었다. 책에 대한 나의 생각과 같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의 고단함을 이해해 주는 책 같았고, 그 해결점을 찾아내어주는 책 같았다. 독서보다 더 앞서서 시간을 빼앗아 가는 것들에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다 끝내야만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했었는데 끝나는 건 없었다. 끝은 정말 죽음밖에 없는 것이고... 매 순간 돌아오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독서는 미룰 수 없는 일이다. 독서하는 일은 실현되지 않는 무용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침묵하는 것, 그것과 동시에 기분 좋은 무력감, 흥분, 특별한 피로감이 무엇인지 맛보았다면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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