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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Dec 16. 2022

가볍고 하찮은 마흔둘, 제주 자유여행기 4

제주 한라산 1100 고지, 산지천

아무 생각하지 않기

지금 순간만 생각하고

걸었으면


다음날이면 제주를 떠나야 하는 여행 4일 차였다. 제주에서 바랐던 점은 내 정신과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아무 생각하지 않기 지금 순간만 생각하고 걸었으면 했다. 아침은 간단히 샌드위치를 먹고 2, 3일 차 보다 여유 있게 출발했다. 여행 와서 크게 아프지 않고 내 몸이 잘 지내줘서 고마웠다. 소화가 안 되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그런 일없이 근육통만 있어서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다.


마흔이 되고부터 건강에 대해 부쩍 신경 쓰게 되었다. 부모님들의 건강도 예전 같지 않으시고 왜 나이가 들면 건강에 신경을 쓰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우선적으로 30십대 후반부터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고, 만성 피곤증에 시달리는 기분이었다. 이 정도면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지? 그런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아무리 해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을까? 정말 심각해질 뻔했다. 운동도 하지 않고 일상을 반복하던 어느 날 몸상태는 최악으로 치닫는 듯했다.


지금은 다시 운동 시작하고 기본적인 영양제나 여성호르몬 등을 보충하고, 식단 조절, 스트레스받지 않으려 노력하고, 회사에서 시간마다 스트레칭을 하고, 매일 충분한 물을 마시고, 수면을 취하려고 하고 있다. 건강 지키는 일은 꾸준한 연속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나아지는 삶이라면 좋겠지만, 이렇게 하는 데도 불과하고 피곤하다는 생각을 매일 하게 된다. 이건 나만의 문제일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내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말 가볍고 탄력 있고 건강한 몸을 갖는 꿈이다. 유쾌하고 쾌활하게 살아보고 싶다. 내년에는 운동량을 늘려보리라..


우리는 제주 1100 고지 휴게소까지 갔다가 돌아와 제주 도심 동문시장 옆 산지천을 둘러보기로 했다. 1100 고지는 드라이브 코스로 많이 추천받는 곳이기도 하고, 설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한라산 둘렛 길을 가본다는 취지였고, 여유 있게 다녀올만한 곳으로 선정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산간도로 1100로를 타고 1100 고지에 도착하면 람사르 습지(람사르 습지는 1975년에 발효된 유네스코에 의해 1971년에 설립된 정부 간 환경 조약인 "습지에 관한 협약"으로도 알려진 람사르 협약에 따라 국제적으로 중요하게 지정된 습지입니다.)로 지정된 1100 고지 습지를 볼 수 있다. 나무 테크로 산책로가 작게 구성되어있다.





1100고지 습지




천백고지라니깐!


천백고지를 자꾸만 백십고지라고 말하는 통에 한참을 웃어제꼈다. 천백고지라니깐! 갈 때까지도 그게 참 안 고쳐지더란 사실... 사람 이름 잘 잊어버리게 되는 때가 오고야 말았다. TV 보면서 이름 맞추기를 한다. 알겠는데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이럴 때 손쉽게 폰으로 검색하면 나의 뇌신경 뉴런은 끊겨 죽는다고 한다. 스무고개 하듯이 기억이 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어둠 속에 숨었다 반짝하고 나타날 그 순간이 있다. 요즘은 그 스무고개를 자주 한다.


낮 기온이 15도까지 오른다고 일기예보를 보고는 왔지만 여기에 오니 서늘하니 찬기운이 감돌기만 했다. 추웠다. 오전 10시쯤에 도착한 1100 고지 습지다. 고요하고 서늘하게 한라산을 올려다보았다. 습지도 잠든 것처럼 멈춰져 있었다. 큰 까마귀 떼가 무리 지어 있었다. 화산암이 제주를 말하는 듯했고, 습지 내 웅덩이 끝이 얼어있었다. 우리는 오래 있지 않고 짧게 둘러보고 떠났다.


한라산으로 가는 길 5군데인데 다음에 우리가 갈 만한 산행길을 정해보았다. 아마도 영실휴게소에서 하차해서 한라산 산행하는 길을 택하자고 했다. 그런 날이 어서 오길 바라며 차에 몸을 싣었다. 동문시장에 가서 소내장탕으로 해장을 하기로 했다. 근방에 산지천은 제주 온 첫날에도 보았지만 밤이라 물이 다 빠져나가고 바닥이 드러나있었다. 늦어서 제대로 둘러보지 못하고 서둘러 떠났기 때문에 낮에 꼭 와보고 싶었다.


산지천의 맑은 물은 한라산에서 제주시 도심을 관통하여 제주항까지 도달한다. 산지천 근방에는 동문재래시장도 있고, 제주 올레 18코스의 시작점도 있어 늘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린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온 날은 평온하기만 했다. 매년 ‘산지천 축제’를 개최해 맛있는 먹거리와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때 와보고도 싶다. 여기에는 옛 건물들을 개조해서 독특한 현대 미술 전시 공간인 ‘아라리오 뮤지엄’이 두 군데가 있고, 과거 제주인들에게 본인의 모든 것을 내놓고 나눔과 봉사를 몸소 실천하신 김만덕 할머니를 기리는 ‘김만덕 기념관’ 박물관이 있다.




산지천




이제 제주와 헤어져야 할 시간


점심을 든든하게 먹은 게 언제였는지.. 탄수화물이 정말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행으로 고단했으니 탄수화물 든든하게 배를 채워줬다. 소내장탕은 솔직히 나에게는 좀 어려웠다. 마늘 너무 많이 넣어서 입안에 쎄하게 매웠다. 나올 때 마신 커피믹스는 정말 여느 라떼만큼 맛있었다. 소화도 시킬 겸 산지천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낮에 보는 산지천에 놀라웠던 건 물이 가득 차 있어서였다. 밤에는 바닥이 드러나 있었는데 이렇게 물이 그득 채워져 있으니 아름답게 느껴졌다. 투명한 물이 속까지 들여다 보이는 듯했다.


바람 한 점 없이 낮 기온 15도에 감사하며 낮게 깔린 구름을 보았다. 이제 제주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이 날을 잊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제주를 떠나며 기억도 거기에 두고 오는 건 아닌지 싶었다. 여기오니 거기에 갔던 일은 거짓말같이 사라진 상태가 되어버렸다. 다시 가야 기억도 되살아 날런지 싶었다. 내 마음이 그만큼 서운하다고 하는 말 같다. 제주에 더 지내고 싶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계절에 그래 보길 바란다.


기념품을 고르면서 드디어 동문시장을 제대로 파헤쳐보았다. '어디가 어디인지 당쵀알수가 없다니깐'라고 말하길 수십 번 안내책자도 있고, 어플도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우리는 감으로 길을 찾는 걸 반복했다. 동문시장은 기성 공장 제품만 팔기 때문에 다양한 소재의 기념품을 구하고자 할 때는 해변가 상점이나 공방 디자이너들이 모인 곳을 찾아가는 것을 권하고 있다. 사람들이 시장에 올 때는 저렴한 값으로 사기 딱 좋은 것만 고르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런 공방제품들이 잘 팔리지 않아 문을 닫았다고 한다.


우리는 제주 공방 디자인 수상했다는 물 잔을 2개 구입했다. 한라산이 빛나게 솟아나 있었다. 그리고 겨울철에 따뜻하게 타 먹기 좋은 레드한 청을 몇 개 사고, 과자 등을 샀다. 그리고 진아 떡집에서 오메기떡을 샀는데 오메기떡은 딱 내 스타일이었다. 이런 팥이든 쑥떡을 너무 좋아한다. 주문도 가능하다고 해서 다음에 정말 주문해 보고 싶다. 그리고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저녁은 방어로 끝을 냈다. 제주 방어 안녕.


참고로 오메기떡 유래는 '오메기라는 어원은 제주도의 차조, 좁쌀을 뜻한다고도 하지만 물 부족인 제주도 환경에서 왔다는 유래가 더 유력하다. 물을 끓이는 동안 일부가 증발되는 것조차 아까웠던 제주도는 떡도 빨리 익으라고 가운데를 오목하게 눌러 빚었다. 육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목한 떡이라는 의미다.








1) (참고) 2022년 12월 6일~10일(4박 5일), 제주 낮 기온 13~15도.

2) 제목은 마흔둘과 여행을 동일시하여 생각하여 봄. '여행(마흔둘)을 가볍고 하찮게 여겼으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그 쉬운 '괜찮아'란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 가볍고 하찮은 마흔둘, 제주 여행기 1 중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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