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이 있는 곳으로'
아들이 살아 있을 때에는 끊임없는 감시하에 살아야 하는 공동체 생활, 공동체적 비위생, 수영장에서는 거의 의무에 가까운 노출, 화장실에 들어가면 그녀보다 먼저 사용했던 사람의 흔적, 미세하지만 당혹스러운 흔적까지도 알게 되는 악의 없는 군집 생활도 기꺼이 감수했다. 부드럽고 조용하고 비전투적이고 체념적이며 거의 평화스럽다고 할 수 있는, 조금은 조롱기도 있었지만 결코 반하지 않는 혐오감이었다. 아기가 죽지 않았다면 마지막 날까지 그녀는 이런 식으로 살았을 것이다.
너의 죽음을 통해 너는 나로부터 너와 함께 있는 즐거움을 앗아갔지만 동시에 너는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지.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이 세계를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도록 나는 자유로워졌단다. 내가 감히 이 세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네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암울한 생각이 너에게 어떤 저주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네가 나를 떠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너의 죽음이 하나의 선물, 내가 결국 받아들이고 만 끔찍한 선물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녀는 모험의 총체적 부재를 음미했다. 모험: 세계에 키스하는 방식. 그녀는 더 이상 세계에 키스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세계를 원치 않았다. 그녀는 모험도 없고 모험에 대한 욕망도 없는 상태의 행복감을 음미했다. 그녀는 자신의 메타포를 떠올렸고 고속 촬영한 영화처럼 빨리 시들어가는 장미 한 송이, 가느다랗고 시커먼 줄기만 있다가 그들이 보낸 저녁나절의 하얀 우주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린 장미 한 송이를 보았다: 백색 속으로 희석된 장미.
『정체성』 밀란 쿤데라 작품 속에서
남자들이 더 이상 날 쳐다보지 않아.
샹탈을 만나러 해안가로 간 장 마르크는 멀리서 머릿수건을 쓰고 걸어오는 여자를 샹탈이라고 착각하고 충격을 받는다. 마침내! 그의 쪽으로 돌아선 그녀가 그를 알아본 것 같았다. 그는 기쁜 표정으로 다시 한번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는 무심한 채 모래사장을 애무하는 바다의 긴 물결을 눈으로 좇으며 서 있었다. 그녀의 옆모습을 본 지금에서야 그가 틀어올린 머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머리를 감싼 머플러라는 것을 확인했다. 다가섬에 따라 그가 샹탈이라고 믿었던 여자가 늙고 추하고 우스꽝스럽게도 다른 엉뚱한 여자로 변해 갔다.
사랑하는 여자와 다른 여자의 육체적 외모를 혼동하는 것. 그는 얼마나 여러 번 그런 일을 겪었던가! 그리고 항상 똑같은 놀람. 그녀와 다른 여자들의 차이가 그렇게 미미한 것일까? 이 세상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의 실루엣을 어떻게 알아볼 수 없단 말인가.
<정체성> 작품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당신으로부터 눈길을 떼지 않을 거예요.
쉴 새 없이 당신을 바라보겠어요.
<정체성> - 샹탈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