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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Apr 04. 2023

『정체성』 밀란 쿤데라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이 있는 곳으로'

아들이 살아 있을 때에는 끊임없는 감시하에 살아야 하는 공동체 생활, 공동체적 비위생, 수영장에서는 거의 의무에 가까운 노출, 화장실에 들어가면 그녀보다 먼저 사용했던 사람의 흔적, 미세하지만 당혹스러운 흔적까지도 알게 되는 악의 없는 군집 생활도 기꺼이 감수했다. 부드럽고 조용하고 비전투적이고 체념적이며 거의 평화스럽다고 할 수 있는, 조금은 조롱기도 있었지만 결코 반하지 않는 혐오감이었다. 아기가 죽지 않았다면 마지막 날까지 그녀는 이런 식으로 살았을 것이다.

너의 죽음을 통해 너는 나로부터 너와 함께 있는 즐거움을 앗아갔지만 동시에 너는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지.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이 세계를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도록 나는 자유로워졌단다. 내가 감히 이 세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네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암울한 생각이 너에게 어떤 저주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네가 나를 떠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너의 죽음이 하나의 선물, 내가 결국 받아들이고 만 끔찍한 선물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녀는 모험의 총체적 부재를 음미했다. 모험: 세계에 키스하는 방식. 그녀는 더 이상 세계에 키스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세계를 원치 않았다. 그녀는 모험도 없고 모험에 대한 욕망도 없는 상태의 행복감을 음미했다. 그녀는 자신의 메타포를 떠올렸고 고속 촬영한 영화처럼 빨리 시들어가는 장미 한 송이, 가느다랗고 시커먼 줄기만 있다가 그들이 보낸 저녁나절의 하얀 우주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린 장미 한 송이를 보았다: 백색 속으로 희석된 장미.

『정체성』 밀란 쿤데라 작품 속에서



샹탈은 미래에 대한 장밋빛 메타포의 변형과 상실 속에 놓여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판가름하지 못한다. 어떤 삶,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본질적인 것인가. 질문에 대한 답을 향해가고 있다. 이런 여정의 한편에 장-마르크가 있다.



장 마르크 오직 샹탈을 위한 걱정,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그녀를 위한 두려움만 느낄 뿐이었다. 이 세상에서,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그녀를 도울 사람은 오직 그뿐이었고 나뭇가지의 속삭이는 듯한 음악을 그녀에게 들려주고자 원했던 사람은 바로 장 마르크였다.



이것은 철학소설인가 연애소설인가 하는 부분에는 동감한다. 어린 아들이 죽은 후 샹탈은 남편과 이혼하고 연하의 연인 장 마르크와 살고 있다. 자신이 늙어 간다는 사실에 서글퍼하던 샹탈은 어느 날 장 마르크에게 “남자들이 더 이상 날 쳐다보지 않아.”라는 말을 던지고, 장 마르크는 샹탈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익명으로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남자들이 더 이상 날 쳐다보지 않아.”라는 그 말 자체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지만 그 뒤에 따르는 상기된 표정 때문에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그는 그들 사랑의 언어였던 색채의 언어, 노화의 서글픔을 말하는 듯한 언어에 둔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낯선 사람의 가면을 쓰고 이렇게 썼던 것이다: <나는 당신을 스파이처럼 따라다닙니다. 당신은 아주 아름답습니다.>



그 익명의 남자가 ‘시라노’라고 이름을 밝히고 서서히 자신의 구체적 욕망을 드러낼수록 샹탈은 묘한 즐거움과 설렘을 느끼고, 장 마르크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고, 자신이지만 자신이 아닌 이 남자에게 질투를 느낀다. 




남자들이 더 이상 날 쳐다보지 않아.




샹탈은 어린 시절 얼굴을 자주 붉혔다. 신체적으로 여자가 되는 과정에 진입했고 육체는 그녀에게 수치심을 불러일키는 뭔가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었었다. 성인이 되자 그녀는 얼굴 붉히는 것을 잊었다. 다시 정념의 뜨거운 입김이 성인화 과정의 끝을 예고하자 그녀의 육체는 다시금 그녀에게 수치심을 일으켰다. 수줍음이 되살아나자 그녀는 다시 얼굴을 붉히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아무리 해주어도 소용없고 사랑에 가득한 시선도 그녀에겐 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의 시선 개체화된 시선이기 때문이다. 장 마르크는 서로에게 투명하게 변한 두 늙은이의 사랑스런 고독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죽음을 예고하는 슬픈 고독이다.



아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의 시선이 아니라 천박하고 음탕한 익명의 시선, 호감이나 취사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고 사랑도 예의도 없이 필연적으로, 숙명적으로 그녀 육체로 쏟아지는 시선이다. 이런 시선들이 그녀를 인간 사회 속에 머무르게 하고 사랑의 시선은 그녀를 사회로부터 유리시킨다. 



샹탈이 익명의 연애편지를 받고 처음 느낀 감정은 ‘불쾌함’이었다. 구애가 아닌 조롱이라 느꼈다. 하지만 편지가 거듭될수록 그녀는 자신 안에 숨어 있던, 잊혔던 열정과 순수한 설렘을 되찾는다. 하지만 샹탈이 편지를 보낸 사람의 정체, 혹은 그 정체성에 의혹을 품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 관계에는 급격한 변화가 찾아온다.




샹탈과 장 마르크, 두 주인공을 비롯한 『정체성』 속 등장인물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무심한 듯 스쳐 지나간 타인의 ‘진짜 모습’에 대해 혼란을 겪는다는 점이다.



샹탈을 만나러 해안가로 간 장 마르크는 멀리서 머릿수건을 쓰고 걸어오는 여자를 샹탈이라고 착각하고 충격을 받는다. 마침내! 그의 쪽으로 돌아선 그녀가 그를 알아본 것 같았다. 그는 기쁜 표정으로 다시 한번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는 무심한 채 모래사장을 애무하는 바다의 긴 물결을 눈으로 좇으며 서 있었다. 그녀의 옆모습을 본 지금에서야 그가 틀어올린 머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머리를 감싼 머플러라는 것을 확인했다. 다가섬에 따라 그가 샹탈이라고 믿었던 여자가 늙고 추하고 우스꽝스럽게도 다른 엉뚱한 여자로 변해 갔다.

사랑하는 여자와 다른 여자의 육체적 외모를 혼동하는 것. 그는 얼마나 여러 번 그런 일을 겪었던가! 그리고 항상 똑같은 놀람. 그녀와 다른 여자들의 차이가 그렇게 미미한 것일까? 이 세상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의 실루엣을 어떻게 알아볼 수 없단 말인가.

<정체성> 작품 속에서



샹탈은 한때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남자라 의심했던 동네 이웃, 카페에서 마주치는 남자, 세탁소 주인, 회사 동료 등, 흔히 ‘이럴 것이다.’라고 믿었던 것과는 다른 면모들이 그들에게서 발견되고, 급기야 샹탈은 자신이 정말 잘 안다고 여긴 장 마르크의 마음까지 믿지 못하게 된다. 이에 따라 샹탈은 점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과거의 자신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그녀는 누구인지 혼란에 빠진다.



불특정 남성으로부터 관심과 욕망의 시선을 받는 것, 거기에서 자신의 매력과 자신감을 되돌아보는 보통 여자들의 심리를 간파해 낸 쿤데라의 솜씨는 세련되었으며 설득력 있었다. 가볍고 흥미진진한 연애편지 소동으로 시작된 이 소설, 『정체성』은 밀란 쿤데라가 언제나 던져 온 화두를 담은 작품이다. 불확실한 이 세상에서 불확실한 자아를 보듬고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 대한 성찰을, 짧지만 넓은 행간? 담고 있는 철학 소설이자 동시에 오늘날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흥미진진한 연애 소설인 것이다.- 출판사 서평 -




나는 더 이상 당신으로부터 눈길을 떼지 않을 거예요.
쉴 새 없이 당신을 바라보겠어요.
<정체성> - 샹탈이 말했다.



1929년 체코의 브륀에서 야나체크 음악원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밀란 쿤데라는 그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프라하의 예술아카데미 AMU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다. 1963년 이래 ‘프라하의 봄’이 외부의 억압으로 좌절될 때까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운동’을 주도했으며, 1968년 모든 공직에서 해직당하고 저서가 압수되는 수모를 겪었다. 『농담』과 『우스운 사랑』 두 권만 고국 체코에서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쿤데라는 『농담(La Plaisanterie)』이 불역되는 즉시 프랑스에서도 명작가가 되었다. 그 불역판 서문에서 아라공은 “금세기 최대의 소설가들 중 한 사람으로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해 주는 소설가”라고 격찬했다. 2차 대전 후 그는 대학생, 노동자, 바의 피아니스트(그의 아버지는 이미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를 거쳐 문학과 영화에 몰두했다. 그는 시와 극작품들을 썼고 프라하의 고등 영화연구원에서 가르쳤다. 밀로스 포만(Milos Forman), 그리고 장차 체코의 누벨 바그계 영화인들이 될 사람들은 두루 그의 제자들이었다.



소련 침공과 ‘프라하의 봄’ 무렵의 숙청으로 인해 그의 처지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의 책들은 도서관에서 사라졌고 그 자신은 글을 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금지되는 역경을 만났다. 1975년 그가 체코를 떠나 프랑스로 왔을 때 “프라하에서 서양은 그들 스스로가 파괴되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1975년 쿤데라는 프랑스로 이주한 후 르네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하다가 1980년에 파리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작품으로 『농담』, 『생은 다른 곳에』, 『불멸』,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 『이별』, 『느림』, 『정체성』, 『향수』 등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 모두가 탁월한 문학적 깊이를 인정받아서 메디치 상, 클레멘트 루케 상, 유로파 상, 체코 작가 상, 컴먼웰스 상, LA 타임스 소설상 등을 받았다. 미국 미시건 대학은 그의 문학적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시인, 소설가, 희곡작가, 평론가, 번역가 등의 거의 모든 문학 장르에서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정체성저자밀란 쿤데라출판민음사발매2012.05.18.



마무리.


우스운 말이지만 샹탈은 경단녀이지만 당당하게 예전보다 보수가 3배나 많은 직장을 얻었다. 현실하고 너무 다른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제2의 생의 살아있는 표본이 될 남자가 필요했고 장 마르크를 얻었다. 표현이 이상하지만 시간이 좀 걸려서 아무튼 얻었다! 이혼하고 삼 개월 후 그녀는 아파트를 샀고 결혼 생각은 내팽개치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현재에 치열하게 집착하고 있었다. 꿈은 현재를 무시해 그녀는 꿈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무엇과도 현재와는 맞바꾸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녀는 어느 날 장 마르크를 잃는다는 상상을 하곤 끓임 없는 공포 속에 빠지기도 한다. 그녀의 여정은 진행 중이다. 매일 밤마다 밤새도록 스탠드를 켜놓고서는 장 마르크를 눈길을 떼지 않고, 쉴 새 없이 바라보겠다고 말한다. 이것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하겠냐는 반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내가 가졌던 생각들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조금은 홀가분은 정신 상태가 되었다. 내가 샹탈 같지 않다고 완전히 부정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사랑의 시선 말고 연속성을 띤 시선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무언지 생각했다. 다른 모든 것들에 내 정신이 사용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을 잊을 때가 많다. 내가 오늘 얼마나 오래도록 (그 사람을) 못 보았는지에 대해서...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군중 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조금도 맞출 수 없는 게 '나'인데도 그것만을 무시하고 살아가고 그게 정답이 되고 다른 사람들의 정체성마저도 무시하기에 이른다. 정말로 나로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모두가 바란다고 생각하지만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더 많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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