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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Apr 04. 2023

시골의사 - 프란츠 카프카

나는 매우 난처한 처지였다. 곧 급히 여행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중환자가 10마일이나 떨어진 마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찬 눈보라가 그 마을과 나 사이의 공간을 채웠다. 하기야 나에겐 마차가 한 대 있었다. 가볍고 바퀴가 크고 우리가 사는 시골길에 아주 안성맞춤인 마차였다. 털외투에 몸을 감싸고 손에는 의료기구가 든 가방을 들고, 나는 벌써 여행 준비를 갖춘 채 뜰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러나 말이 없었다. 그놈의 말이! 
내 말은 지난밤에 이 추운 겨울동안 너무 부려먹은 탓으로 죽고만 것이다. 




나의 하녀가 지금 말을 한 필 빌리려고 마을을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다. 그런데도 갈수록 은 더욱더 내려 쌓였고 나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하릴없이 서 있었다. 그때 대문께에 하녀가 나타났다. 혼자서 등불을 흔들고 있다. 보나마다인 것이, 누가 지금 이런 길에 말을 내주겠는가? 나는 다시 한번 뜰 가장자리를 따라 거닐어보았다. 아무런 가능성도 발견할 수 없었다. 머리가 산란하고 마음이 번잡해져서 이미 여러 해 동안 쓰지 않은다 쓰러져가는 돼지 우리의 문을 발길로 찼다. 


문은 돌쩌뀌에 걸린 채 타당타당 소리를 내며 여닫혔다. 말에서 나는 것 같은 습한 냄새가 물큰 코를 찔렀다. 침침한 우리 속에는 등불 하나가 끝에 매달린 채 이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나지막한 칸막이 속에 웅크리고 앉은 사나이가 커다랗고 푸른 눈을 반짝이며 얼굴을 드러냈다.


"말을 달아드릴깝쇼?"


네 발로 기어나오면서 그가 물었다.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우리 속에 그저 또 무엇이 있는가 보려고 몸을 굽혔을 뿐이다. 하녀는 내 옆에 서 있었다.


"이려 쩌쩌. 이려 쩌쩌!"


이렇게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러자 힘차고 옆구리가 억센 두 마리의 말이 다리를 몸에 바짝 부이고, 말쑥하게 생긴 머리는 낙타처럼 푹 숙인 채 빠듯한 문틈을 통해 몸통을 억지로 비틀며 빠져나왔다. 그러고 나서 그 말들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몸을 똑바로 세웠다. 늘씬한 발로 서 있는 몸매는 껑충해 보였다.


"저 사람을 도와줘."



나는 하녀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고분고분한 하녀는 마부에게 마구를 갖다주려고 바삐 움직였다. 그러나 하녀가 그 사나이 옆에 가자마자 마부는 하녀를 덥썩 끌어안고 제 얼굴을 그 얼굴에 갖다댔다. 하녀는 비명을 지르고 내게로 도망쳐왔다. 하녀의 볼에 두 줄의 이빨 자국이 붉게 새겨져 있었다. 


"야, 이 개 같은 놈."



나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너 이놈, 매를 맞고 싶으냐?"



그러나 나는 이내 그가 낯선 자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도움을 주기를 거절하는데 그 자만이 자발적으로 나를 도와주려 함을 깨달았다. 녀석은 내 생각을 알아챈 양, 나의 위협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말에 매달려 열심히 일했다. 그저 나를 한번 돌아다보았을 뿐이다.


"타십시오."


그 녀석이 나에게 말했다. 어늘 틈에 만반의 준비를 다해놓았던 것이다. 이렇듯 곱게 장식된 마차를 타본 적은 한 번도 없었음을 나도 인정하는 터였으므로 기꺼이 올라탔다. 내가 말했다.


"물론입죠"

녀석은 다시 말을 이었다.



"전 같이 가지 않겠습니다. 로자 옆에 남겠습니다."


"그건 안 돼요."



그놈의 말에 로자는 이렇게 소리치고는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정확하게 예감하면서 집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나는 하녀가 지르는 문빗장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자물쇠를 잠그는 소리도 들었다. 그리고 더욱이 하녀가 복도와 방마다 샅샅이 돌아다니며, 자기를 찾지 못하도록 등불이란 등불은 모조리 꺼버리는 것을 보았다.


"자넨 나하고 가야겠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긴급하다 하더라도 출발하지 않겠네. 내가 가는 대가로 하녀를 헐갋에 넘겨주고 싶은 생각은 없네."




내가 이렇게 말을 했으나 녀석은 "이려" 하고 소리치며 손뼉까지 쳤다.  그 순간 마차는 마치 물살에 휩쓸린 나무 조각처럼 저절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등뒤에서 내 집 문이 마부의 습격으로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나의 귀와 눈은 오관을 자극하는 소음으로 금세 가득 차버렸다. 그러나 그런 소음은 눈 깜빡할 사이에 끝났다. 왜냐하면 뜰의 문이 열리자마자 직접 환자 집의 마당이 열리기라도 한 듯이 벌써 나는 환자의 집 문 앞에 와 있었기 때문이다. 눈은 어느덧 그쳤고 사방에서는 달빛이 고요했다.






마무리.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시골 의사>이다. 10마일 떨어져있는 마을에 순식간에 도착하는 것을 보면 꿈이었을지 모를 이야기이다. 늙은 시골 의사는 환자의 집앞에 도착하게 되고 환자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환자의 가족들과 의사 소통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들이 보이는 신뢰에 거부감이 갖게 된다. 하녀 로자를 두고 온 것을 걱정하고 분노를 이 가족들에게 퍼붓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건강한 듯 보이던 환자에게서 앓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오른편 허리 언저리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상처가 입을 떡 벌리고 있었던 것이다. 장밋빛, 수없는 명암에 싸여 밑바닥은 어둡지만 가장자리로 갈수록 점점 밝아지고 부드러운 곡식의 알처럼 도돌도돌하고 여기저기 피가 맺혀있으며 대낮의 광산처럼 그것은 열려있었다.



의사는 청년을 구할 수 없음을 직시한다. 청년은 처음과 다르게 살려주시겠냐고 의사에게 묻는다. 의사는 자신에게 불가능한것을 바란다고 한탄한다. 자신의 하녀까지 약탈당하고 그들이 온다고 여긴다. 선생과 합창단이 집앞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자신의 옷이 벗겨지고 그들은 자신을 청년의 상처 옆에 바싹 눕히고 문이 닫힌다. 


저는 당신을 별로 신뢰하지 않아요. 당신 또한 그 어느 곳엔가 내던져 진 데 불과하죠. 제 발로 온 게 아니구요. 도와주는 대신 당신은 나의 죽음의 자리를 좁게 해주고 있군요. 당신 두 눈을 뽑아버렸으면 제일 좋겠어요.



늙은 의사는 다시 말을 타고 눈밭을 걸으며 생각한다. 여전히 그 어떤 놈만을 탓하면서.. 



이 단편에 낯선 누군가와 마부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말을 제발로 가져다 준다. 제발로 오지도 않았던 의사를 신뢰하지 않았던 청년, 카프카 자신이 결국은 의사처럼 자신의 무능함을 탓했을까. 그들로 인해 자신은 문이 부서지고 이 말을 타고 이 세계로 돌아가지 않게 되니 다행이지만 하녀 로자도 지키지 못하고 청년에게는 적당한 말로 안심시키고 남탓만 하고 있는 것으로 끝마치고 있다. 그 여운은 작가에게로 향하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에게도 (문을 부술) 그들이 필요하고 스스로 그 누군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랄까.


카프카의 단편소설들을 하나씩 읽어볼 생각이다. 우선 그 <시골의사> 읽어보았다. 카프카 다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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