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 슈타인의 사랑...
루이제 린저_생의 한가운데 Mitte des lebens
루이제 린저는 뮌헨대학에서 심리학과 교육학을 전공, 나치 정부의 박해를 받고 투옥당한다. 소설을 통해 신, 죽음, 인간, 세계, 사랑, 결혼, 예술,... '생'에 관한 신념이 한 개의 총체를 이루고 얽힌 구성물을 이루었음을 말하려 한다. '생(生)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끝을 갖고 있지 않다. 결혼도 끝이 아니고, 죽음도 다만 가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생은 계속해서 흐른다. 모든 것은 그처럼 복잡하고 무질서하다. 생은 아무런 논리도 없이 이 모든 것을 즉흥 한다. 그중에서 우리는 한 조각을 끌어내서 뚜렷한 조그마한 계획하에 설계를 한다. 포즈를 취한 사진이다. 극장에서처럼 차례로 진행한다. 모두가 그렇게 쓰이고 있다. 나는 그렇게 모든 것을 간단하게 해버리는 인간이 싫다. 모든 것은 이처럼 무섭게 갈피를 잡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생의 한 가운데'는 독일의 가장 우수한 산문이라는 평을 들으며 린저의 대작품이다.
니나.
나는 늙어가는 것이 기뻐. 웃지 말아, 누구든지 의욕을 갖기를 그치면 늙기 시작하는 거야. 얼마 전까지도 나는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침마다 일어났어. 나는 마치 아침마다 문간에 서서 코를 바람 속에서 벌름거리면서 사냥에의 욕망으로 떠는 사냥개와도 같았어. 그런데 지금은 나는 이미 나 자신에게 있어서 조금도 의외의 무엇을 갖고 있지 않아. 그리고 인생은 끝없는 풀밭이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네 개의 벽이 있는 공간이야.
슈타인.
기차가 떠나기 직전에 니나가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그 여자가 나중에 많은 경험을 겪은 뒤에 갖게 될 얼굴을 보았다. 용서할 준비가 돼 있는, 관대함에 넘친 얼굴, 고향이 없는 사람의 방황하는 눈과 많은 것을 알고도 생을 경멸하지 않는 사람의 우수에 넘친 고요함을 지닌 얼굴이다. 나는 니나를 전보다 더 사랑한다. 그러나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처럼 어두운 해안에 있었고 니나는 다리 없는 강의 저편 밝은 대안(對岸)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다른 편에서 외치는 소리를 서로 힘들이지 않고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어두컴컴하고도 출구 없어 보이는 복도를 무한히 걸어갈 때면 너는 언제나 문을 열어주었고, 나에게 와서 햇빛이 찬란한 넓은 평야의 광경을 보여주었다. 비록 그 평야에 내가 발을 들여놓을 수는 없었으나 그 광경만이라도 나를 최후의 절망에서 구제했다. 나는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았다. 그건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1933년 10월 28일
우리의 짧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나는 너무나 아름다운, 완전한 날들을 겪었기 때문에 숨을 쉴 수도 없을 정도다. 나는 이러한 날들에 반복이나 지속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경험과 생의 원칙에 위반되는 생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전율을 느낀다. 나는 감히 미래는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나든지 간에 이것만은 확실하다. 이날들이 존재했다는 것만은 어떤 것도 이날들을 내 기억에서 지우지는 못할 것이다.
니나는 종종 늙은 여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듣고 있고 흥미는 갖고 있으나,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더 중요한 나라를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표정을 하고 내 말을 들었다.
「 밤새워 다 써야 될 글이 있거나 다른 일이 언제나 나로부터 요구되고 내가 언제 이 모든 것을 끝낼 것인지는 막막했어. 그러면서도 결코 한 번도 완전한 것을 행할 수 없고 언제나 뛰어오르려는 자세뿐이라는 생각_마치 담벼락에 올라 가려고 애쓰다가는 미끄러져 발톱이 꺾이고 발에 상처를 입은 가엾은 개와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해. 그리고 언제나 내가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으며 내가 해야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잠시도 나를 떠나지 않아. 그리고 성공에 대한 불만감! 한순간 손 안에 쥐고 좀 기뻐했는가 하면 곧 해체되어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마는 거야. 의문스럽고 무상한 것을 놓고 기뻐할 수가 없는 데다 또 새로운 착상이 나를 괴롭히는 까닭에! 」
1937년 1월 13일
당신은 나와 함께 죽지 못하고 대신 나를 살리신 것을 후회하시는 것이에요. 당신도 나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 계세요. 우리는 생의 의미를 물었지요? 그래서는 안 되었는데! 인간은 생의 의미를 물으면 결코 알지 못하게 되지요. 오히려 그걸 묻지 않는 사람만이 생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이에요.
1938년 4월 1일
슈타인
너무 많은 모험을 하는 여자는 누구나 손해 보는 법이야.
니나
나보고 사는 것을 그만두란 말이에요? 내가 여태까지 살아보았던가요? 나는 살고 싶어요. 생의 전부를 사랑해요. 그렇지만 나의 이런 마음을 당신은 이해 못하실 거예요. 당신은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당신은 생을 피해 갔어요. 당신은 한 번도 위험을 무릅쓴 일이 없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잃기만 했어요. 당신이 그럼 행복하시나요? 당신은 행복하지 않아요. 행복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르세요. 그러나 나는 알아요. 그리고 나는 당신이 내생을 당신 것과 꼭 같은 것으로 일요일을 망쳐버리는 딱딱하고 힘든 숙제 같은 걸로 만드는 것을 용서하지 않겠어요. 나를 얼마든지 경박하다고 생각하세요. 생에 대한 당신의 공포가 어쩌면 생을 사랑하는 나의 태도보다도 경박할지 몰라요.
왜 당신은 '할 수 있다' '이다' '원한다' 대신에 '할 수 있었다' '했다' '원했다'고 말하시는 거죠?
「지금 나는 잃어버린 무엇을 한탄하는 편이 한 번도 갖지 않았던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처음으로 나는 고통도 또한 재산임을 알았다.」
내 생에서 처음으로 나 자신에 대해서, 또 마치 젖은 잿빛의 촘촘한 그물과 같이 얽힌 나 자신과 모든 인간의 숙명에 대해서 울었다. 누가 과연 이 그물을 찢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비록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그물은 여전히 발에 걸려 있어서 사람들은 그것을 끌고 다닐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보기에는 아무리 얇은 것 같아 보여도 감당하기에 어려운 무거운 짐이다
2012년 <생의 한가운데>작품으로 루이제 린저와 번역가 전혜린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후 여러 정보를 접하면서 그녀들의 이념, 사상, 국가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 들어... 한동안 이별만을 생각했다. 지금도 그 경계선에 있다. 니나와 슈타인의 사랑과 기억, 추억... 생의 의미 따윈 묻지 않는 걸로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by 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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