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귀 기울이고 그 메타포를 이해하는 거야...
시나 노래 같은 걸 지으려면 마음속으로 저절로 우러나는 울림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
세면대 거울 속의 내 얼굴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 거기에는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사실은 어머니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유전으로 물려받은 얼굴이 있다. 아무리 거울 속의 표정을 무덤덤하게 바꾸고, 아무리 눈을 가늘게 떠서 표정을 바꾸어 본다 해도, 아무리 근육을 몸에 붙인다 해도, 얼굴 모습을 바꿀 수는 없다. 또 아무리 간절하게 원해도, 아버지한테 물려받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길고 짙은 두 눈썹과, 그 사이에 깊게 파인 주름살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 그렇게 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아버지를 죽일 수도 있다. (그건 현재의 내 힘으로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머니를 기억에서 말살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그들의 유전자를 쫓아낼 수는 없다. 만일 그것을 쫓아내고 싶다면, 나 자신을 내 안에서 추방하는 수밖에 없다.......[다무라]
만일 나카타가 보통 인간이었다면, 나카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나카타는 보통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나카타로 살아왔습니다. 다시 시작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비록 아주 짧은 동안만이라도 좋으니까, 나카타는 보통 사람인 나카타가 되고 싶습니다. 나카타는 분명히 보통 나카타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의미를 가진 나카타가 되고 싶습니다........[나카타]
너는 귀 기울이고 그 메타포를 이해하는 거야.
나는 보다시피 이런 인간이다 보니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여러 의미에서 차별받아 왔어. 차별당하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인지, 그것은 차별당해 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지. 아픔이라는 것은 개별적인 것이어서, 그 뒤에는 개별적인 상처 자국이 남아, 그렇기 때문에 공평함이나 공정함을 추구하는 데에는 나도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다만 내가 그것보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들 때문이야. T.S. 엘리엇이 말하는 '공허한 인간들'이지. 상상력이 결여된 부분을, 공허한 부분을, 무감각한 지푸라기로 메운 주제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바깥을 돌아다니는 인간이지. 그리고 그 무감각함을, 공허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타인에게 억지로 강요하려는 인간들이지.........[오시마]
어렸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됐었는데 그냥 살아가면 되었다. 살아 있는 날까지. 나는 어떤 존재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자연히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렇지 않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점점 나는 아무 존재도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살아가면 갈수록 나는 알맹이를 잃어간다. 그저 텅 빈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게다가 앞으로 살아가면 갈수록 나는 더욱더 텅 비고 무가치한 인간이 되어갈지도 모른다........[호시노]
추억이란 당신의 몸을 안쪽에서부터 따뜻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당신의 몸을 안쪽으로부터 심하게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끌어안고 사는 것이 아무리 괴로워도 살아 있는 한 저는 그 기억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요. 그것이 제가 살아왔다는 유일한 의미이고 증거니까요......[사에키]
말로 설명해도 올바로 전달되지 않는 건 아예 말하지 않는 게 제일 좋지.
모두가 상실에 허우적대고 지켜할 것들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던 여러 캐릭터로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소리가 전해졌다. 이 소설 속에 우리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듯이 이 소설 자체가 메타포이며 우리는 나는 아주 깊은 심연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꿈꾸듯이 세상을 마주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카타 할배에 흠뻑빠져 읽게 되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애니메이션과 흡사하다고도 느꼈다... 처음으로 무라카미 소설은 진지하게 읽었다. 이어서 다른 작품이 읽지 못해 아쉽다.
by 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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