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은 자신과 비슷한 영혼을 가진 그녀에게 점점 끌리는데....
샬롯 브론테 <교수>The Professor
#1
나는 젊었고 몸도 건강했다. 나는 행복을 만난 적이 없었다. 아무리 행복에 탐닉해도 나의 타고난 자질은 무력해지거나 물리지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자유를 내 팔 안에 품게 되었으며, 자유의 여신이 지닌 미소와 포옹의 영향력은 태양과 서풍처럼 내 인생을 되살려 놓았다. 그랬다, 그 당시 나는 자신이 올라가고 있는 언덕으로부터 영광스러운 일출을 보게 되리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아침의 여행자 같은 심정이었다.
길이 좁건 가파르건 돌투성이건 무슨 상관인가? 그는 길을 보지 않는다. 그의 눈은 이미 붉게 빛나고 있는, 붉게 빛을 내고 금빛을 발하는 정상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상에 오른 뒤 보게 될 그 너머의 광경을 확신하고 있다. 그는 태양을 맞이할 것이며, 태양의 전차가 지금 동쪽의 지평선을 오르고 있고, 자신의 뺨으로 느낄 수 있는 미풍의 전령이, 신의 여정을 위해 진주처럼 부드럽고 불꽃처럼 따뜻한 구름 가운데에서 선명하고 광활한 창공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고난과 수고가 나의 운명이지만, 활기로 지탱이 되며 모호한 만큼이나 밝기도 한 희망에 이끌려 나는 그런 운명을 고난으로 생각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늘진 언덕을 올라갔다. 내가 걷는 길에는 자갈과 불평등과 가시덤불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눈은 그 위에 있는 진홍빛 정상에 고정되어 있었고, 나의 상상은 그 너머 찬란히 빛나는 창공과 함께 있었기에 발 아래 밟히는 돌이나 얼굴과 손을 긁어 대는 가시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2
내손에 자기 손을 맡기는 그 동작을 나는 사랑했다. 무일푼이고 부모도 없이 거기 서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사랑했다. 호색가에게는 매력 없을 지언정 내게는 보물과도 같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최선의 대상,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느꼈다.
내 사랑의 보고를 봉인해 둘 이상적인 지정소. 분별과 신중함, 근면함과 인내, 자제와 극기의 화신. 내가 그녀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 내모든 애정이라는 선물을 충실하게 지킬 수호자, 믿음직한 문지기. 진실과 명예의 표본이며, 독립심과 양심의 표본이고, 삶을 정직하게 닦아 나가고 지켜 나갈 사람.
관대 함이라는 우물을 품고 있고, 차분한 만큼 상냥하고 억누를 수 없을 만큼 순수한 열기를 소유하고 있으며, 가정이라는 지성소에 휴식과 편안함의 원천이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과 자연스러운 열정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 나는 그녀의 가슴속에서 그 우물이 얼마나 고요하고 깊게 보글보글 솟아오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위험한 불꽃이 이성이라는 눈 밑에서 얼마나 안전하게 타오르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불길이 언제 한순간 높고 강렬하게 치솟는지, 가열된 열기가 언제 인생의 물살을 그 수로에서 괴롭히는지도 나는 보았다. 나는 이성이 저항을 완화시키고 섬광을 잔불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보았다.
샬롯 브론테의 첫 번째 소설이다. 사후에 출판이 되었다고 한다. 브론테의 자매들을 나는 좋아한다. '워더링 하이츠'를 쓴 에밀리도 '애그니스 그래이'를 쓴 앤도 좋아한다. 자매들이 한결같이 글을 잘 쓰다니!!!
제인 에어로 더 유명한 샬롯 브론테이지만... 나는 '교수'라는 소설도 마음에 든다.
제목에서도 보았듯이 '교수'라고 해서 무슨 내용인지 나름 간파하려 했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고 그렇다고 아예 틀리지도 않았다. 읽다가 보니 주인공 윌리엄이라는 남자는 내적인 면에서 작가 샬롯인 것만은 분명했다.
소설 <교수>에서 주인공 윌리엄 크림즈워스는 프랜시스 에번스를 믿었고 그녀를 존경했다.... 나도 이런 이상적인 여성상이 참으로 좋다.. 작가는 제인 에어에서도 그렇지만 누구나 봐도 잘생기고 매력적인 주인공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점이다. 내실을 중요시하는 건 알겠지만... 좀 그런면으로 상상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지만 읽다 보면 저절로 주인공이 멋져져 버리니 뭐 할 수 없다.ㅎㅎ
by 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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