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훌리아 Oct 22. 2015

습작#03.그림자 상상_기억은 우리의 전부다.

이별 그리고...

잃어버린 것과 그 안에 있는 옛날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초안)

기억은 나의 전부다. 기억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 것이다. 나이 듦이란 사라지지 않는 젊음을 간직한 채 앞으로 앞으로 쉼 없이 전진하는 것만 같다. 내 일생에 가장 창조적인 일 중에 하나는 Paul의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 보호하는 것, 사랑하는 것이다. 가장 큰 기쁨이자 축복이다. 


처음 그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솔직히 미안한일이지만 거부감이 컸다. Paul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우회적으로 거절 의사를 분명하게 했으나 Paul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결국 나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어려운 상황을 떠올리면 지금의 나로선 정말 대단하지 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진맥진이 딱 들어맞는 말이다. 그치지 않는 울음, 이해할 수 없는 울음이 대부분이었다.


여자아이라 순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나중에 Tom을 만나고선 Jane은 정말 심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이다. Jane은 정말 고집쟁이에다. 말 수가 없는 아이다. 작은 소녀로 크면서 아이는 신비스럽고 정중하고 순수함이 살아났다. Tom은 그야말로 순수하고..이 두 아이와 난 즐거운 일들 뿐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함께 여행을 가고 노래를 불렀고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다함께 들판에 누워 감상했다.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소중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곤한다. Paul과 난 자기 일에 충분히 만족하며 남은 일생을 보내기로 했다. 특별히 나눈 말은 없었지만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갑작스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분명 Paul이었지만 나 또한 변화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 친구에게 말했어야 했는데... 진심이 되어버렸다고 말했어야 하는데...


슬프게도 영원히 떠나버렸다. 망망대해에 깊이 가라앉는 중이다. 목이 메이고 숨이 막힌다.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 것만 같다. 


똑똑똑...

똑똑똑...


"Jack, 들어가도 돼요? 잠이 안 와서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대답하고 말았다.


"들어오렴. 괜찮단다..."


Tom의 뒤로 Jane의 모습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둘은 내 양옆으로 기대 누우며 양볼에 한쪽씩 입맞춤을 해주었다. 더없이 사랑스럽고 보고 있기가 아까울 지경이다. 나는 이런 사랑스럽고 고귀하고 소중한 내보물들에게 이젠 비밀을 숨길 수가 없다. 모조리 털어놓고 싶다!


"미안하구나 걱정하게 해서... 이젠 괜찮단다. 내일이면 씩씩해질 수 있단다.. 걱정하지 말거라..."

두 아이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어 주었다.


"우리는 다만... 아니에요. 빨리 기운 내세요..."

Jane은 무엇인가 말하려다 말고 내 어깨에 더욱 무게를 실어 기대어 왔다. 갑자기 Tom이 몸을 일으키고서는 방 밖으로 뛰어가선 족제비 두 마리를 담은 종이상자를 품에 안고 들어왔다.


"Jack, 퐁고와 퍼디예요. 꼬리 끝이 까만 쪽이 퐁고고 옌 앞발이 까만 퍼디예요. 잊지 않을 수 있겠죠?"

"그래 퐁고와 퍼디... 귀엽구나 꼭 너희 같아" 

하얀 족제비 두 마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Tom이 무심코 던진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말았다.


"Daddy는 어딨어요?"

나는 이제는 진실을 말해야만 할 건지 그대로 묻어둬야 할지 고민했다. Paul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길 원하는지... 쉽게 결정지을 수가 없었다. 진실이란 잔인하기도 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내가 이 아이들에게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진실을 털어놓는다는건 잔인한 짓이다. 난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다짐했다. 진실이란 굳이 알려고 들지 않는다면 다치는 일도 없다고...


"너희들에게 미안하구나..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해주지 못해서... Paul이 아주 먼 곳으로 갔다고만 해서 말이야... 어렵지만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해주마.. 우리는 기억으로 기록으로 언어로 시간을 가늠하고...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정한단다. 그 기억이란 게 사라지고 나면 산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생각해 보았니?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알던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단다.. "


Jack은 우리를 더 끌어안아주었다.


"우리가 알던 Paul은 여전히 우리에게 존재하고 있단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잖니...  우리 기억 속엔 영원히 Paul이 있단다. 우리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Paul도 사라지지 않아... 우리가 Paul을 소중히 기억 속에 두고 함께 살아가면 되는 거란다. 아마 더 진실한 것을  궁금해할 거란 걸 알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야기 나누자꾸나..."


Tom은 퐁고와 퍼디를 계속 쓰다듬으면서 귀여워해 주다가 Jack의 이야기가 끝나감을 느끼곤 Jane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의 마음을 가늠했다.확실히 알겠다는 눈빛을 그에게 보냈고 Jack을 안심시켰다.


"Jack, 우리는 알겠어요. 우리는 알아요. Daddy는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거죠. 그런 거죠. 그럼 됐어요. 퐁고와 퍼디도 졸린가 봐요. 우리도 이제 자러가는 게 좋겠어요."


Tom은 침대 밑으로 내려가 퐁고와 퍼디를 적당한 자리에 놓아두고 다시 뛰어 올라왔다. 서로에게  굿 나이트 인사를 하곤 아이들은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분명 잠에 들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을 떴다. 이건 꿈속인 걸까.... 저기 Paul이 보인다. 


"Paul.....!"

나는 말문이 막혀 더 이상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푸른 풀밭 위에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거기에 앉았던 Paul은 일어나서 내쪽으로 걸어왔다.


"Jack, 잘 와줬어. 잘 찾아왔는걸 고마워. 그리고..... 그냥 여러 가지로 미안하네....."

우리는 함께 걸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로 걷고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졌고.. 나는 말문 이 조금 트이는 것을 느꼈다.


"보고 싶었어. Tom과 Jane도 무척 보고 싶어 해"

나는 슬퍼서 소리 내 울어버릴 것 같았지만 참았다. 하지만 흐르는 눈물은 닦을 수가 없었다.


"나도 무척 보고 싶었어. 이렇게 인사도 못하고 올 줄은 몰랐거든"

Paul은 내 뒤에 멈춰 서서 내게 계속 말을 했다.


"나의 오랜 친구 Jack.... 고맙네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난 뒤돌아 보지 않고 대답했다.


"난 자네가 그걸 원하는걸 알았다네... 내가 어떤 결정도 할 수 없게 만든 거라고... 나도 자네처럼 되겠지 언젠가는...."

뒤돌아 보았다. Paul은 사라지고 나는 눈물을 머금고 눈을 떴을 뿐이다. 어떤 꿈도 꾸지 않고 다시 깊은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떳을 때 빛은 벽을 타고 기둥을 세웠다. 빛의 기둥은 점점 사방을 채워갔다. 공기조차 따스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습작#02.그림자 상상_아이의 하얀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