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사랑해야 한다.
결핍을 사랑해야지, 결핍에서 벗어나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
(#초안)
바닥에 떨어진 온전한 낙엽을 보면 밟아서 형태를 없애버린다. 밟아서 사라지게 만든다. 그게 낙엽인지 나인지 모르겠다. 가을의 끝무렵 바람이 쌀쌀하다. 외로움이다. Jack 삼촌은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으셨지만 분명 Daddy는 위험한 일을 하셨을 거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살던 곳을 정리하고 더 추운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낯설고 적응이 되지 않는다. 전학수속을 정리하고 와서 첫 등교하는 날 아침에 Jack은 말했다.
"여기서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단다."
알겠다는 대답 대신 Jack을 꼭 안아드렸다. 교실에 담임과 들어섰다. 스무 명 남짓의 아이들이 제 자리에서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바닥만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나를 인사시켰다.
교실을 한번 쭈욱 훑어보곤 간단히 인사를 했다.
"반가워.. Jane이야"
나는 말하고선 얼굴이 붉어지려고 했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여기는 지금 내 방이고 지금 아주 무서운 책을 읽고 있다는 상상을 했다. 그랬더니 붉어지려는 얼굴이 차츰 가라 앉았다. 선생님이 가리킨 창문가 맨 뒷자리로 걸어갔다. 운동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뭇잎들은 메말랐지만 볕에 반사되어 따뜻한 빛이 감돌았다. 오늘은 별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옆자리에 앉은 남자 아이가 자꾸만 내쪽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쳐다만 보고 말은 걸지 않았다. 차라리 그게 더 났다고 생각했다.
1교시 수업이 끝나고 내 자리 주변으로 여자 아이들이 몰려왔다. 그중에 한눈에 봐도 내 친구가 될 것 같은 느낌의 친구도 있었다. 이름은 Rachel 다른 아이들보다 성숙하게 보였다. Rachel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주변이 무척 시끌벅적해졌다. 생김새가 딱 봐도 개구쟁이다!라고 쓰여있는 남자 아이가 책상을 이리저리 피해 달려가며 말했다.
"애들아 Louis가 Jane이 맘에 들었대! 니들 어떻게 생각해?
그 남자 아이가 말한 Louis라는 애는 내가 여기 앉을 때부터 거슬리던 시선을 주던 내 옆자리 아이였다. 아이들이 모두 웃기다고 큰소리로 웃었고 뛰어가던 그 아이는 Louis에게 뒷덜미를 잡혀서 끌려갔다.
"Ban!, 내가 너 때문에 못 살아! 따라와 손 좀 봐줄 테니깐!"
Louis는 Ban을 끌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Rachel은 내 옆으로 와서 귓속말을 했다.
"저 녀석들은 맨날 저래 신경 쓰지 마. 장난이 심해서 그렇지 나쁜 애들은 아니야. 네가 이해해줘."
Rachel이 씽긋 웃어 보였다. 나도 웃어 보이려고 했지만 오늘 아무 일도 없게 해달라는 건 물거품이 돼버렸다. 벌써 반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돼 버린 걸 보면... 살짝 얼굴이 붉어졌지만 무서운 상상을 이어서 해버렸더니 얼굴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하루 수업이 끝나고 책가방을 정리하는데 Louis가 말을 걸어왔다.
"아침에 네가 집에서 나오는 걸 봤어. 어제도 사실 널 봤어. 난 옆집에 살아. 넌 몰랐겠지만.. 이제는 알았으니깐 사이좋게 지내자! 아까 일은 잊어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나만 얘기하고 있어.. 알아? 흠흠.. 그러니깐 내일 보자 안녕"
Louis는 자기 할 말이 끝나자마자 후다닥 교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멍한 얼굴로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Louis가 한 말을 다시 곰곰이 되새겼다. 오늘 그렇게 쳐다본 시선의 뜻을 알았고 우리 집 옆집에 살고, 어제도 날 보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왠지 내가 오해를 많이 한듯해서 미안하기 조차 했다. 더 이상의 생각을 그만두고 Tom이 기다리고 있을 거란 생각에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Tom은 내년부터 학교에 갈거라 아직 혼자 집에 남아있다. 내년이면 함께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나는 기뻤다.
"다녔왔어요. Tom은 어딨어요?"
나는 오자마자 Tom을 찾았다. Jack 삼촌은 손짓으로 거실을 가리키셨다. Tom은 퐁고와 포디에게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Tom! 퐁고와 퍼디는 우리가 키워도 될까? 야생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Tom에게서 퍼디를 받아 까만 앞발을 잡고 놀아주었다. 그런 나를 Tom이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오늘 큰 거리에 있는 동물병원 하고 애완샵에도 다녀왔어. 접종도 하고 페렛 목욕비누랑 집이랑 먹이랑 또 또... 아무튼 여러 가지를 삼촌이 사주셨어. 이제 3개월째 큰 거래 앞으로 더 3개월을 키우면 완전히 다 큰 거래. 새끼 때부터 키운 거라 잘 교육시키면 키워도 된데.. 여기 목줄도 있어. 놀아달라다가 깨물면 이렇게 목줄을 당기고 콧등을 세게 떼려 주래 웃기지?"
Tom은 오늘 있었던 하루 일과를 내게 즐겁게 설명해 주었다. 나도 몰랐던 사실을 Tom은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워와 알려주니 갑자기 무척 기특하게 여겨졌다.
학교생활은 대체적으로 편안했고 반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오랜만에 즐거웠다. 주말이 돼서 Tom과 난 집 밖으로 나와 퐁고와 퍼디에게 목줄을 매단 채 놀고 있었다. 얼마 후 멀리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보았는데 Louis였다. 심부름을 다녀왔는지 자전거에는 여러 가지 식료품이 들어있었다. Louis는 내 앞에 자전거를 세우더니 인사했다.
"뭐해? 동생이니? 손에 든 그건 뭐야? 족제비? 와~ 실제로 키우는 건 첨보는걸!"
"어... 동생 Tom이고 페렛 두 마리는 퐁고와 퍼디 꼬리가 까만 쪽이 퐁고, 앤 퍼디 귀엽지?"
Louis는 집을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 말했다.
"내 동생이 애들을 보면 참 좋아할 텐데...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놀지 않을래?"
나는 눈을 더 크게 뜨고 Louis를 한번 쳐다보고 Tom을 쳐다봤다. Tom은 자기는 괜찮다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나도 얼떨결에 따라 Louis의 집으로 갔다. 현관에 들어서면서 맛있는 스파게티 냄새가 났다. Louis의 어머니가 우릴 보더니 깜짝 놀란 표정으로 우리와 Louis를 번갈아 쳐다보셨다.
"어머나~ 이런~ 아이구~ 요 녀석들~ 아주 귀엽구나!"
퐁고와 퍼디를 보시고는 우릴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리도 옆집에 살고 나는 같은 반 친구라고 인사를 드렸다. Louis의 여동생이 어머니 뒤에서 우릴 아무 말없이 빼꼼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Tom이 나서서 먼저 말을 꺼냈다.
"난 Tom이야 안녕, 퐁고와 퍼디가 만나서 반갑데..."
Louis의 여동생은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내 이름은 Ann이야."
Louis의 어머니는 우리 지켜보고 있으셨다.
"인사는 다했고! 우리 스파게티를 먹자꾸나~"
편안한 미소에 긴장감은 사라지고 루이스의 가족들과 스파게티를 먹게 되었다. 무척 맛있어서 아침을 늦게 먹은 것 조차 잊었다. Tom과 Ann이 거실에서 퐁고와 퍼디와 놀아주고 있고 난 Louis를 따라 방을 구경하게 됐다. 방은 파란 빛깔이었다. 침대도 커튼도 책상도 푸른 빛이었다. 그와 잘 어울렸다. 멋쩍게 자기 방을 둘러보고 설명할 것이 마땅찮았던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다. 우린 마주 보고 멀찍이 앉긴 했는데 사실 그 상황이 퍽 어색했다. 사소한 얘기 몇 마디 주고받았다. 그러다 좋아하는 책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루이스는 책장으로 책 하나를 꺼내곤 내게 와서 보여줬다.
"내가 얼마 전에 읽은 책이야. 아주 오래된 책인데 옛날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었데.. 제목은 '파이 이야기' 인도 소년이 혼자서 벵갈 타이거와 바다에 표류돼서 227일이 간 바다에서 살아남은 이야기야.. 난 이 책이 정말 재밌었어. 나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거든. 넌 어떤 책을 좋아해?"
난 머뭇거리다가 얼마 전에 읽기 시작한 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난 빨강머리 앤을 읽고 있어 고전을 좋아하거든 네 동생 이름도 그러고 보니 앤 이구나!"
우리는 함께 웃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했다. Louis 어머니가 올라오셔서 간식을 먹자고 하지 않으셨으면 더 오래도록 얘기했을 지도 모른다. Tom과 난 우리 가족 이야기에 대해 짧게 전달했다. Daddy가 또 한번 떠올라 슬퍼졌지만 이내 누그러졌다. 늦은 오후 시간 지나 Tom과 난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그 곳으로 전학을 오고 다음해에 Tom과 Ann은 입학을 했다. 함께 학교를 다니고 때때로 Louis의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가을이면 가을 겨울이면 겨울 어느 계절 빠지지 않고
우리는 들로 숲으로 강으로 놀러 다녔다. 함께 하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무슨 일인지 아직까지 확실한 것도 확신하는 것도 없이 갑작스럽게 전학을 가게 됐다. 떠나 올 때 Louis의 가족과 이별하는 것이 가장 아쉬웠다. Louis와도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뜸해졌고 간간이 주고받던 연락도 끊기게 되었다. 그냥 이렇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을 뿐이다... 어떤 기대 그런 건 없다. 그런 생각은 없어진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