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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승희 Sep 28. 2022

설마? 설마!

아, 일상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일상이 퀘스트인 노가지의 기록


설마? 설마!






독일 남부지역인 바이에른으로 떠나기 전날 밤, 여행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어보고자 뮌헨을 검색했다가 이상한 제목 하나를 발견했다.  


‘뮌헨 캐논 할아버지를 조심하세요.'


캐논 할아버지가 뭔가 싶어 최신 글부터 검색 결과를 하나씩 읽어 내려가니 '한국 여성들에게 껄떡거리는 변태 할아버지'라는 이야기가 줄을 이었다. …… 얼굴을 모르니 뮌헨에선 한국말을 하는 할아버지랑은 말을 섞지 말자는 단순한 다짐을 했다. 



(중략)



간간히 ‘부산’, ‘김치’, ‘대전’ 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한국어 단어를 한 글자씩 말하는 독일 노인의 열정에 나는 박수를 보냈다. 넥타이핀을 한 세미 정장 차림의 노인은 바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맥주 받침을 하나 꺼내 자신의 이름은 'sigi'라며 연락처를 함께 적어 건넸다. …… 그제야 ‘캐논이다!’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내리 꽂혔고, 서늘한 소름이 온몸을 뒤덮고 있음을 느껴지고 있었다. …… 


"설마 캐논?"

"캐논." 


‘조심하자’, ‘한국말하는 노인은 피하고 보자’ 싶었는데 정말 어안이 벙벙했다. 모든 상황이 후기에 쓰여 있는 그대로였고, 나는 이를 미리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어떠한 의심도 없었다는  사실에 속이 부글부글했다. …… 침대에 누워 오늘의 일정을 돌이켜보는데 내가 어디를 갔는지, 무엇을 봤는지보다 끌어안고 얼굴을 들이밀던 변태 노인의 행동이 더 강렬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 나처럼 알면서도 당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커뮤니티에 오늘 겪은 일과 함께 캐논 할아버지의 사진을 올려두었다. 다들 그간 이런 마음으로 후기를 남겼나 보다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 부디 뮌헨을 찾은 다른 여행자들은 이와 같은 일을 겪지 않기를, 나쁜 기억 때문에 여행의 즐거움이 퇴색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중략)


 

그로부터 4년 뒤, 당시 내가 올렸던 글에 새로운 댓글이 달렸다는 알람이 울렸다. 자신이 오늘 이 캐논 할아버지를 만났다는 이야기였다. ……댓글이 달렸던 2018년 시기의 몇몇 후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의 행적은 나오지 않았다. 이쯤 되면 뮌헨 랜드마크 중 하나가 아니냐는 여행자들의 농담 섞인 걱정과 분노도 과거의 기억 속으로 묻혀졌다. 돌아보니 나는 그의 비이상적인 태도에 화를 냈다기 보단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내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것 같다. 


알면서도 당했다는 것에서 초점을 맞춰 부주의했던 스스로를 꾸짖었던 것이다. 지나서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완벽한 하나의 원고가 된 줄 알았던 본 에피소드는 

에세이 신간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노승희(미다스북스)>에 수록된 내용의 초고가 되었습니다.  

책으로 탄생하기 위해 이 일기글은 적절한 옷을 갖춰 입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지지해 주는 일상 기록의 힘!


"일상을 특별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에도 부담을 덜어주거나 무언가를 바라는 그 마음에 제목을 달아보면 그만이다.”


전체 내용은 일상 에세이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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