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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승희 Nov 03. 2022

기계는 잘못이 없고.

아, 일상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일상이 퀘스트인 노가지의 기록


기계는 잘못이 없고.



독일 여행이 어느새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대학생들을 위한 도시라는 하이델베르크를 둘러보기로 한 날. 뮌헨이 복잡하고 거대한 대도시라는 인상이었다면, 이곳 하이델베르크는 옛스러움과 아기자기한 감성이 녹아있는 곳이었다. 거리에 줄지어 있는 상점들을 둘러보다가 입구 너머로 진열된 민트색의 백팩 하나를 발견했다. 홀리듯 상점에 들어가 걸려있는 가방을 집어 들었는데 가격표를 보니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할인 중이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나는 계산대로 갔다. 텍스 리펀을 묻는 직원에게 괜찮다고 거절을 했지만 실은 당시엔 텍스 리펀이 뭔지 몰랐다.


할인된 가격표대로 유로를 지불하고는 쇼핑백에 담아주신 가방을 가지고 가게를 나올 때였다. 상점 입구에 설치되어있는 보안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어리둥절 뒤를 돌아보는 내게 점원은 오작동이라고, 괜찮다며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들어가는 가게마다 보안 벨이 울렸다면 이상함을 바로 눈치챘을 텐데 간헐적으로 한 번씩 울리는 보안 벨에 기계들이 다 왜 이러냐며 어리둥절해했다. 


"도둑속이려고 괜히 한 번씩 소리 내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무시하고 들어와."


한 가게의 점원이 벙져 있는 우리에게 위트 있는 농담을 건넸다. 알겠다며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따금씩 또 보안 벨이 울릴 땐 쇼핑백 안에 들은 가방을 꺼내 이리저리 훑어보기도 했지만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날이었다며 숙소에 들어 새로 산 가방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왔다.


"아… 보안 텍이 그대로 붙어있네. 이래서 울렸던 거네"


힘으로도 뜯기지 않, 이대로 한국에 가져가도 잘라내지 못할 거 같았다. 집 근처 대형마트에 들고 면 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한국에서 보던 보안 텍과는 모양이 많이 달랐다. 내일은 하이델베르크와는 정반대 방향에 위치한 곳으로 기차를 타고 3시간을 이동해야 했다. 당장 이걸 어떻게 끊어버릴 것인가를 고민하던 내게 그녀는 단순한 해결책을 내어줬다. 


"내일 그 가게에 영수증이랑 가져가서 떼어달라 그러면 되는 거 아냐?"


"그럼 우리 내일 일정 다 포기해야 해"


"뭐 어때. 하이델베르크 예쁘던데 간 김에 거기 한 바퀴 더 돌면 되지"



(중략)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을 철칙으로 여기던 나란 사람. 복잡하게 뒤섞여 버렸다고 느낀 암울한 상황 속에서 그녀는 쉽게 생각하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님을, 굳이 계획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완벽한 하나의 원고가 된 줄 알았던 본 에피소드는 

에세이 신간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노승희(미다스북스)>에 수록된 내용의 초고가 되었습니다.  

책으로 탄생하기 위해 이 일기글은 적절한 옷을 갖춰 입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지지해 주는 일상 기록의 힘!


"일상을 특별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에도 부담을 덜어주거나 무언가를 바라는 그 마음에 제목을 달아보면 그만이다.”


전체 내용은 일상 에세이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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