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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승희 Dec 06. 2022

사람 그리고 사람

아, 일상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일상이 퀘스트인 노가지의 기록


사람 그리고 사람.  






…… 어두워진 창 밖, 야근이 주는 피로감을 느끼며 멍하니 창 밖을 보던 내게 옆 자리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시작은 자신이 이 버스가 처음인데 내리는 정류장까지 몇 개나 남았는지 알 수 있겠냐는 거였다. 이후 방송으로 안내가 되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아저씨는 오랜만에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얼마 전에 아내를 먼저 보내고 내내 집에만 있었거든. 그러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술 한 잔을 했는데 처음 타는 버스로 집엘 가려니 어렵네" 


대뜸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가던 아저씨는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 '와이프와 두 아들'이라며 사진을 한 장씩 넘겨나갔다. ……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친절하게 대화해줘서 너무 고마운데, 어디까지가? 내가 너무 고마워서 그런데 저녁 사줄게. 먹고 가"


재차 거절을 해도 아니라고, 내가 미안해서 그런다며 끈질기게 이야기하던 옆자리 아저씨. ……  이건 명백한 추행이었다. 내내 괜찮다고, 정중하게 거절을 하니 상대가 만만하다고 느낀 건지 손을 잡고 늘어지던 아저씨는 이내 내 허벅지를 주무르며 제발 술 한 잔만 하고 가라는 좀 더 강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중략)



어차피 내려야 하는 정류장 바로 뒤에 지구대가 있기에 '일단 신고를 해야겠다' 싶은 찰나였다. 실랑이를 듣자마자 눈이 마주쳤던 앞자리의 한 남자 승객이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추행남을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밀어 넣고는 욕을 하기 시작했다. …… 


끝까지 나를 따라 내리겠다는 추행남에게 경찰서 가고 싶냐고, 따라 내리면 가만 안 두겠다고 엄포를 놓은 승객. 괜히 나 때문에 타고 가야 할 버스에서 내린 건 아닌가 싶었는데 정류장에서 보이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웃주민이었다. …… 괜찮냐며, 여기서 집까지는 어떻게 가냐며, 걸어갈 수 있겠냐며, 저 새끼 다음 정류장에 내려서 돌아오는 거 아니냐며, 경찰을 불러서 집을 가는 게 어떻겠냐며 진심으로 걱정을 건네던 승객. 

 

"감사합니다. 금방이니까 걸어가도 괜찮아요. 따라 내리면 멱살 잡고 앞에 지구대로 끌고 가려고 했어요"

"앞으로는 그럴 땐 그냥 소리를 질러버려요. 누구라도 도와줄 수 있게" 


…… 살면서 이따금씩 겪게 되는 불쾌한 기억. 

사람이라 위로했고, 사람에게 화가 났지만, 결국 사람으로 털어낼 수 있던 그런 이상한 날이었다.

  






완벽한 하나의 원고가 된 줄 알았던 본 에피소드는 

에세이 신간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노승희(미다스북스)>에 수록된 내용의 초고가 되었습니다.  

책으로 탄생하기 위해 이 일기글은 적절한 옷을 갖춰 입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지지해 주는 일상 기록의 힘!


"일상을 특별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에도 부담을 덜어주거나 무언가를 바라는 그 마음에 제목을 달아보면 그만이다.”


전체 내용은 일상 에세이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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