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일상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1998년, 할아버지는 그런 내게 '초등학교 입학 선물을 해주고 싶다'라고 하셨다. …… 어렴풋하게 생각나는 건 피아노나 컴퓨터나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가 오가는 장면이다. 어쩌다가 두 개의 선택지가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조금만 고민을 해보겠다고 하다가 결국 할아버지가 사주신 컴퓨터를 거실에 두었다.
방학식 날이면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짐을 싸는 것이었다. 방학숙제로 있는 EBS 교재와 그림일기를 위한 색칠 도구, 좋아하는 옷가지들을 챙겨 놓으면 아빠는 나를 태워 30분 정도 걸리는 시골 할아버지 댁에 데려다주었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봄이건. 개학을 하는 전날까지 모든 방학시간을 보냈던 나의 시골집.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도심보다 할아버지와 멍멍이, 그리고 따라다니는 재미가 있는 할머니의 일상을 공유하며 나는 누구보다도 특별한 방학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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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졸 물이 흘러 내려오는 작은 개울에서 물장난을 치기도 했고, 빨개진 토마토를 따먹거나 푸른 잎사귀 사이에 숨은 호박이나 노각을 찾아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고구마를 캐느냐고 호미를 손에 쥔 날이면 ‘땅을 파야지 자꾸 고구마를 찍으면 어떡하냐’고 혼나기도 했고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지렁이가 신기해 만지며 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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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면 특히 마당에 핀 알록달록한 봉숭아 꽃을 따다가 손톱에 물을 들이는 일을 잊지 않았다.
“나 이따가 꽃물 들일래!”
그 한 마디면 할아버지는 스쿠터를 타고 슬쩍 밭에 올라가 칡덩굴에서 쓸만하고 넓은 잎사귀 10장을 따 오셨고, 자개 서랍에서 명주실을 꺼내 10가닥을 잘래 내셨다. 할아버지가 모든 준비를 끝내면, 할머니는 내게 ‘가서 꽃 따와’라고 하시며 랩과 백반을 꺼내드셨다. ……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나. 아무도 모르게 우리 셋만 공유하고 있는 그때 그 시절의 기억. 영원할 거라 생각했던 여름날의 추억이 다신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그걸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완벽한 하나의 원고가 된 줄 알았던 본 에피소드는
에세이 신간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노승희(미다스북스)>에 수록된 내용의 초고가 되었습니다.
책으로 탄생하기 위해 이 일기글은 적절한 옷을 갖춰 입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지지해 주는 일상 기록의 힘!
"일상을 특별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에도 부담을 덜어주거나 무언가를 바라는 그 마음에 제목을 달아보면 그만이다.”
전체 내용은 일상 에세이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