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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승희 Jul 11. 2022

마르지 않는 물감.

아, 일상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일상이 퀘스트인 노가지의 기록


마르지 않는 물감.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보낸 12년이란 시간 가운데 지금까지도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게 해 주시는 은사님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을 마치 고등학교 3학년처럼 열정 다해 가르치시던 김선생님은 유화를 전공하신 미술선생님이셨다. …… 선생님은 월요일 수업이 끝난 뒤 우리가 써놓은 회의록을 읽어보시며 필요한 부분에 답글을 달아주셨고 다음날 아침이면 우리는 책장 앞에 모여 앉아 선생님의 답글을 읽어보기 바빴다.


……


"쉬는 시간 틈틈이 가지고 있는 노트에 선 미리 다 그어 놓으세요. 그냥 찍 긋지 말고 반듯하게 자 대고 그으세요."


"교과서에 단원 번호 보이죠? 학습주제 보이죠? 똑같이 따라 적어요. 큰 칸 아니고 작은 칸에 적는 겁니다"


선생님은 교육에 있어서는 엄격하셨다. 집중력 낮은 10살 아이들이 몇 번 해보고 '못해요', '못하겠어요' 라고 말해도 단호하게 '아직 안 해봤잖아요. 일단 해보세요.', '따라 써보세요' 하며 연습, 또 연습을 시키시는 분이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선생님의 교육방식과 수준은 입소문이 날 정도였다. 어떻게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을 상대로 그렇게 수준 높은 교육을 하셨을까? 



(중략)



뭉개진 그림에도 화 한 번을 내지 않으셨던 선생님은 어느 날 교실에 남아 캔버스를 구경하던 우리에게 그림을 배우고 싶은지를 물어보셨다. …… 열명 남짓의 아이들은 선 긋기 연습을 시작으로 도형을 그리고 사물에 음영을 넣고, 두세 가지 겹쳐진 사물을 그리며 모양을 완성해 나가는데 이르렀는데 그렇게 배워나가다 보니 4학년, 선생님과의 이별의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 10살의 기억은 언제 떠올려도 그 공간의 분위기, 느낌, 햇살까지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당시 손날에 항시 묻어있던 연필심만큼이나 진하게 남아있다. 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감사하고 귀한 날로 남아있는 나의 기억. 살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 이따금씩 교육청 사이트에서 선생님의 존함을 검색해 보았지만 선생님을 찾을 순 없었다.


치맛바람 강한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들의 등살에도 '교사를 믿지 못해서 하지 마라, 시키지 마라 이야기하실 거면 데려가셔서 집에서 직접 교육하시면 됩니다' 하시던 선생님의 카리스마. 우리 엄마를 포함해 당시 치맛바람을 휘두르던 학부모들 사이에서 김선생님은 '교육자 집 안이라 아쉬울 거 없고, 그래서 할 말은 하는 기 센 여자 선생'이었지만, 1년이란 시간 동안 함께 한 우리가 느끼기엔 늘 뒤처지는 아이가 없도록,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서로 돕고 도움받으며 전체가 나아갈 수 있게 무심한 듯 챙겨주는 따뜻한 스승이셨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사투리 섞인 선생님의 목소리와 눈빛이 생생하게 들려온다.


…… 









완벽한 하나의 원고가 된 줄 알았던 본 에피소드는 

에세이 신간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노승희(미다스북스)>에 수록된 내용의 초고가 되었습니다.  

책으로 탄생하기 위해 이 일기글은 적절한 옷을 갖춰 입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지지해 주는 일상 기록의 힘!


"일상을 특별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에도 부담을 덜어주거나 무언가를 바라는 그 마음에 제목을 달아보면 그만이다.”


전체 내용은 일상 에세이 <아, 일상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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