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금, 첫 다이아, 첫 맞춤 반지
난 물욕, 특히 반짝이는 것에 소망이 없다.
가질 수 없었던 것이었기에 아예 기대나 미련을 안 가진 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디자인을 해서 인지 그림을 그려서 인지
나는 브랜드에 눈이 밝았다.
남들의 옷을 봐도 쓱 지나가면서도 그 브랜드를 잘 캐치한다. 디자이너의 센스라 해두자.
아마도 이건 나는 어릴 때부터 남포동 구제시장을 디비며 쇼핑을 해서 길러진 습관?? 이 아닐까 싶다.
지나고 커서 보니 집에서 구제를 못 사게 하는 어머님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어른이 되어 엄마에게 내가 구제를 사는 걸 왜 허락했냐라고 물으니 "옷을 사면서 나의 취향을 찾는 중이라 생각했다"하셨다. 물론 덧붙여 백화점이나 시장에서 함께 못하니 나 하고 싶은데로 하길 바랬단다. 감동받았다. 엄마의 그런 무언의 오케이는 나를 어떤 방식으로든 분명 크게 발전한 거 같다(어느 방면인지 아직 모르겠지만)
엄마는 미술학원 선생님, 한복집, 옷가게, 화장품 방판 보험회사 등 여러 직업을 가지면서 시장에 영업하러 많이 가셔서 시장가는 걸 싫어하셨다.
나는 어린 시절 엄마랑 주말에 새로 생긴 홈플러스에 가는 건 그녀에겐 말하지 못하는 나의 꿈이었다.
아무튼 나는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물욕 관련 꿈이 많았다. 아주 잔잔한 꿈.
방금 말한
"가족끼리 주말에 마트 가서 카트 끌고 쇼핑하기"
또는 "중학교 때 진짜 가지고 싶었던 아가타 시계야"
"고등학교 때 위시리스트 레스포색 가방!"
"내 친구가 산 나이키 포스, 나도 진짜 사고 싶었어."
"박시한 남녀공용 검은색 그 아디다스 패딩"
"고등학교 땐 갈색 할머니 신발 같은 클락스"
아웃렛 한 바퀴를 돌면 한 10가지 이상의 과거 희망사항에 나올 정도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나는 보석은 (아 티파니 티파니는 가지고 싶었다) 그거 말곤 없었다.
아마
서론이 길었는데 나도 보석을 좋아하지 않고 우리 어머니도 잘 모른다. 그러나 예랑의 어머니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나의 귀걸이가 좋은 게 아니라 아쉬워하며 금은방 앞까지 나를 데리고 가시는 그런 분이다.
나는 그 요청을 간곡하게 거절했었던 경험 있다.
그러나 결혼에선 그녀의 바람대로 하기로 했다. 몇 번이나 통화로 금이 어쩌고 다이아가 어쩌고 말씀을 전달해 들었음에도 어렵다.
워낙 그 분야가 생경해 그런 듯하다.
그리하여 그녀와 손잡고 예랑과 함께 셋이서 금방을 갔다. 백화점 안에 있는 금 집을 갔다. 남포동 구제거리에서 만원 들고 가 10벌 사 오던 내가 말이다. 괜히 출세한 거 같고 부자가 된 기분이다.
이 반지 저 반지 요리조리 껴보고 며칠 전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왔을 때 본 가장 마음에 드는 반지를 골랐다. 아니 근데 아무리 봐도 이 반지 낯이 있다.
내 거라 그런 거 우린 운명인가 라고 생각하다 기억이 났다.
이놈의 추억, 너무 좋아
19살 3번째로 선택한 학교, 내 성적보단 높았고 난 그림에 자신 있었다. 그래서 도전했다. 그러다 보니 시각디자인과 보단 성적이 낮은 금속공예과로 지원했다. 시험을 치고 서울에서 놀다가 기차 타러 가기 전에(?) 명동에 있는 백화점 명품관을 잘못 들어갔다. 안에 들어갈 간은 못되고 책자만 몇 개 주워오고 유리창 너머 보석과 액세서리를 구경했다. 나 이제 금속공예 가면 이런 작품 만드는 디자이너가 될 테니깐!
그때 받은 책자에 이 반지 하나 분명히 기억한다.
다행스럽게도 대학은 합격했지만 부산에 남기로 한 덕에 나는 그 반지를 13년 만에 껴본다. 결혼을 앞두고 어느 색을 살지 고민 중이라니! 기억의 왜곡일지라도 너무나 감동적이다.
나의 첫 반지 첫 금 첫 다이아
다 설레고 감동적이다
결혼반지 언제부터 껴야 하는지 궁금하고
장롱에 보관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거같아 덜덜 떨린다. 그러나 결론은 좋다!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