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내가 살아*

by 홍경

*이번 회차 연재는 제 때 업로드했지만 길 잃고 있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같은 꼭지를 주머니만 달리해 연달아 샴쌍둥이처럼 두겠습니다. 길 잃은 꼭지에도 마음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정신 놓지 않겠습니다.



용림에게 이한의 동생 이류가 결석한 일과 그것으로 이한과 통화한 사실을 말해준다. 용림은 내 얘기를 듣고 다 알겠다는 듯 단호하게 말한다.

“너 아무래도 류의 병문안을 가보는 게 좋겠다. 가서 이한이 함께 있다면 그와 얘기를 나눠. 재지 말고 정직하게, 난 그게 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넌 이한에게 하고 싶거나 묻고 싶은 게 있어. 맞지? 머리를 차갑게 만든 후 네가 확인해야 할 것과 알려줘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을 말해야 하지 싶다. 재고, 감추고, 담고 있으면 이한과 너, 중학생 시절 그 답답함이 또 시작될 테니. 이한이 너와 같은 생각인지 그게 가장 중요하니까, 그걸 꼭 확인하고 와. “


다음날, 퇴근 후 편의점에서 병 과일 주스 한 상자와 젤리를 종류대로 세 개를 산다. 젤리는 설탕이 발라진 것과 아닌 것, 벌레 모양인 것과 과일 모양인 것으로 다섯 개를 골랐었으나 두 개를 무른다.

병원은 지하철역에서 걸어 십 분 거리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이, 연극 무대 위의 배우가 된 듯 어색하게 걷고 있다, 내가. 병원 문을 밀고 병원에 들어서자 병원 특유의 환자 고름 냄새가 미적지근하게 데워진 공기에 엷게 배어 코를 파고든다.

어렸을 때 경사진 아스팔트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다 넘어져 무릎을 심하게 쓸려 다친 적이 있었다. 여름에 잘 낫지 않아 고생했는데 깊게 긁힌 상처 부분에 농이 찼었다. 아빠는 소독한 손으로 환부를 꼭꼭 눌러 노란 고름을 짜냈다. 그 부분에 농이 차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특유의 고름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 후로 특유의 고름 냄새가 꼭 상처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엄마나 아빠가 심한 감기를 앓고 회복기가 되면 안방 문을 열었을 때 고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병을 이겨낼 때 인간의 몸에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일 것이다.

안내 데스크에서 이류의 병실을 묻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4층, 401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간호사의 데스크를 지나 병실이 늘어선 복도에 다다른다. 401호의 병실 문이 반쯤 열려 있다. 몇 번이나 NG를 낸 여배우처럼 잔뜩 긴장한 채 어색하지 않길 바라지만 불쌍할 정도로 어색하게 병실로 걸어간다. 병실 안에서 목소리가 먼저 들린다.

“엄마, 마취 풀리면 엄청 아플 거라 했는데 진짜 안 아파요. 진짜. “

“그러니까 전동 킥보드 타고 다니지 말랬지! 죽을 뻔했어, 너!” 아마도 전화로 들었던, 류의 엄마라던 그 여자의 목소리.

“버스도 끊기고, 형이, 아니, 택시는 비싸고 어쩔 수 없었어요. 죄송해요.”

“친구랑 같이 타는 거, 인도에서 타는 거, 차도에서 타는 거, 아무튼 전동 킥보드는 절대 안 돼!”

가까이 다가가자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병실이 보인다. 침대 머리를 올려 상체를 반쯤 세워 앉은 류, 그 옆에 앉은 여자, 이한은 보호자용 간이 베드를 넘어서서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보고 있다.

엄마.

류가 그 여자를 엄마라고 불렀다. 세 사람이 만드는 가족 특유의 단란함이 병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회복기 환자에게서의 고름냄새가 아니고 소독냄새가 섞인 채. 가족, 하지만 뭔가 어긋나 있다. 어리광이 묻어나는 아들과 감정보다 사실에 무게중심을 둔 엄마가 옥신각신하는 동안 이한은 창밖을 보고 있다. 그의 한쪽 귀에 무선 이어폰이 하나 끼워져 있다. 자리를 피하는 것도 아니고 끼어드는 것도 아닌, 그 자리를 피하지 못해 함께 있을 뿐인 사람으로. 여자와 류가 대화를 나누다 웃으며 무엇인가 이한에게 물으며 동의를 구하는 듯 이한을 바라보지만 이한은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

내가 열린 문에 노크한다. 세 사람은 일제히 문쪽을 본다.

“쌤?“ 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엄마라는 여자의 눈치를 살핀다.

“안녕하세요, 류의 담임입니다.”

류 옆의 여자가 일어선다. 내 또래의 여자, 연분홍 니트에 아이보리 미디스커트를 입었다. 묽고 여린 메이크업이 잘 어울리는, 작은 얼굴의 시원한 이목구비. 이목구비가 류와 닮았다. 아니다. 정확히는 류가 이 여자를 닮은 것이다. 그리고 이한의 눈매도 닮았다. 그러므로 셋의 눈매가 같은 데서 왔다.

”바쁘실 텐데 담임선생님이 병문안까지 오시고, 감사합니다. “ 여자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이어 말한다.

“전화 통화로 먼저 인사드린 적 있죠? 김라은이에요.”

관리가 잘 된 하얀 손을 내밀며 여자가 이름을 말한다. 그러면서 나를 보는 눈이 잠깐, 아주 잠깐 멈춘다. 무언가 확인하는 눈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 띠는 호기심의 눈이 아니다. 나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실물을 처음 대면하는 눈이다. 확실히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보다 나에 대해 그녀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 눈빛을 알아채지만 동요하지 않는다. 내 오른손을 내밀어 여자의 손을 가볍게 쥐어 악수를 나눈다.

“류의 수술은 잘 되었나요?” 나는 내 이름 대신 류의 안부를 묻는다.

이한이 창가에서 나와 내 쪽으로 온다. 한쪽 귀에 꽂혀있던 무선 이어폰은 빼내었는지 없다. 주스 상자와 젤리를 보호자용 간이 베드 위에 올려두는 내 손 옆으로 그의 손이 지나친다.

“좀, 앉으세요.” 이한이 자리를 권했지만 표정으로 사양하는 내게 그가 이어 말한다.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철심 몇 개를 박긴 했지만 어려서 회복이 빠를 겁니다.“

내가 류에게 몇 마디 건넨다. 공부 걱정 말 것, 아프면 아프다고 할 것을 당부한다. 나의 얘기를 듣는 중에 류는 여자의 눈치를 살피곤 한다. 류가 여자의 마음에 맺히는 마디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을 느낀다. 공연히 내 마음이 아프다. 내가 말을 마치자 류가 픽 웃으며 말한다.

“쌤은 항상 그러시더라.”

“응?”

“아프면 아프다고 할 것! 조회 때마다 그러시잖아요.“

내가 당황하며 웃는다. 그때 류가 이한을 바라보면 말한다.

“형, 나 물 좀.”

이한이 생수병을 집어 류에게 말없이 건넨다. 류가 한 손으로 받아 들어 들이킨다. 류가 물을 마시는 동안 여자가 이한 쪽으로 눈짓을 한다. 이한이 미세하게 고개를 젓는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눈짓과 고갯짓이 긴 시간을 건너온 것이라는 건 안다.

나는 류가 덮고 있는 이불을 매만져 주며 속히 나으라, 인사한다. 여자에게도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온다. 이한이 나를 따라 나온다.

병실에서 보이지 않을 만큼 걸어 나와 복도에서 우리는 나란히 선다. 서로 말이 없다. 저편에서 간호사가 카트를 밀고 지나간다. 바퀴 소리가 기적처럼 조금씩 멀어진다.

“류가 네 아들이니?” 목소리를 낮추어 작게 내가 묻는다.

이한이 나를 본다. 계속 나를 보고 있었지만 무언갈 헤집어 찾는 시선으로 바뀐다. 나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는다. 내 눈에 의미 있는 단서가 어려있지 않을 것이다. 이한이 먼저 시선을 거두어 복도 쪽을 바라본다.

“그래서 개명한 거니?” 내가 다시 묻는다.

이한이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이다. 나는 더 묻지 않는다. 지금 이한의 얼굴은 복도 끝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빛처럼 낮고 납작하다.

“잠깐 얘기 좀 할까?” 이한이 묻는다.

병원 1층에 위치한 카페로 이동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테이블 아래, 길게 기역자로 꺾인 이한의 다리가 덜덜거린다. 나는 그 모양을 슬금 지켜보며 자세를 고쳐 앉는다.

“고2 때.” 이한이 입을 연다.

“류가 태어난 게. 고2 때였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 생긴 아이가 다음 해에 태어났지. 우리는 어렸고 아버지가 어머니의 사망신고를 미루는 사이 태어난 류를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올리셨지. 짧은 기간 류와 라은이가 우리 집에 들어와 함께 지내다가 얼마 되지 않아 라은이는 집으로 돌아갔고, 류는 아버지와 내가 키웠어.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 도로 공사 현장이나 아파트 시공 현장에서 막일을 하는 동안 아버지는 류를 돌보았지.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류가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 서울로 돌아왔어. 그때 개명도 했어. 제주의 기억을 지우고 싶었거든.“

“류도 알고 있어? 한이가 아빠라는 거?”

이한이 잠시 말이 없다.

“응. 모습을 나타내지 않던 라은이가, 우리가 서울로 이사하고 얼마 안 돼서 찾아왔었어. 그때 자연스럽게 내가 아빠인 것을 알게 됐지. 그런데 류는 워낙 덤덤한 애라서.”

이한이 쓴웃음을 짓는다.

“그 후로 나는 류에게 어떻게 부르라고 요구한 적 없어. 류가 계속 형이라 부르고 있지. 제 엄마에게는 엄마라고 부르면서도. 라은이가 류를 혼내는 것 같은데 눈치를 많이 보면서도 그냥 형이라고 부르더라고.“

류의 덤덤한 평소 얼굴이 떠오른다. 아프면 아프다고 해, 참지 말고,라는 말에 늘 픽 웃던 얼굴. 이렇게 자란 애가 덤덤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감당할 수 없는 큰 파도를 뒤집어쓴 아이들은 어른보다도 더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지키는 법이다. 자신이 나서서 바꿀 수 없는 한 견디는 수밖에 없음을 본능적으로 안다.

“류의 엄마와는 가까이 지내?” 내 물음이 높은 곳에서 별안간 떨어진 바윗덩이처럼 바닥에 쿵 하고 큰 소리를 내며 내려 찍힌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테이블에 놓이고 밑의 얼음이 녹아 덜그럭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앉는 모양을 지켜보며 이한의 대답을 기다린다.

“아니, 류가 보고 싶을 때 단둘이 만나는 게 대부분인데 이런 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그런 거지. “

이한이 얼굴을 돌려 창밖을 보더니 다시 제 잔에 떠있는 얼음에 눈을 둔다. 나는 이한의 옆얼굴에 이어 살짝 숙여진 얼굴을 본다. 나는 그가 시선을 어디에다 둘지 몰라 애쓰는 이유를 미루어 짐작한다. 여자와 이한의 거리가 가깝지 않음이 사실이라 해도, 밝혀 말하기가 스스로 구차하고 싫은 것이다. 하지만 이한의 목소리가 말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다. 자신의 과거를 오랫동안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거듭해서 복기한 사람의 목소리.

“라은이에게는 다른 남자가 있어. 자신의 인생을 위해 아이를 맡기고 떠나는 게, 쉽지 않았을 거야. 어려서 엄마가 됐지만, 엄마는 엄마니까.”

라은을 두둔하는 말투다. 하지만 원망도 없고 미화나 미련 따윈 없다.

“한이, 너는?“

“나?”

“쉬웠어, 그동안?”

“아니. 하나도.”

이한이 짧게 웃는다. 아까와는 다른 힘이 빠진 웃음이다. 이한은 여러 가지의 감정을 웃음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너는?” 이한이 묻는다.

“나?”

“쉬웠어, 그동안?“

“아니, 하나도.”

이한이 안심한 듯 작게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병원 카페에서 우리는 마주 앉아 웃는다. 웃기는 것도 없는데, 오래전에 헤어진 사람들이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만나, 한도 끝도 없는 사연 보따리 중 하나도 다 펼치지 않은 채, 서로의 고생담을 하나도,라는 세 글자로 줄여서 주고받는 것이 어이없이 슬퍼서 웃기다.

갑자기 피곤함이 밀려옴을 느끼는 사이 유리문 밖으로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를 찾으러 나선 길이겠지.

“이제 가야겠다.” 내가 가방을 챙기며 일어선다.

“고맙다, 여러모로. 그리고 밤의 문장에서는 정말 미안했다.”

여러모로, 그 말의 무게를 나는 가늠하지 않기로 한다. 말의 무게를 가늠하려 들다간 이한이 짊어지고 있는 보따리를 내가 대신 짊어질 것인지에 대해 답해야 할 것만 같다.

“연락, 할 게. 괜찮지?” 이한이 내 뒤에서 묻는다.

“응, 당연하지.”

일단 문을 조금 열어두자, 그래야 내가 살아.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며 오늘 밤은 쉽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월요일 연재
이전 18화오코노미야키와 간바레 오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