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이 기억해 낸 페소아의 시 마지막 행이 채 끝나기 전에 잘 갈린 송곳처럼 뾰족한 폰의 벨 소리가 울린다. 테이블에 놓인 내 스마트폰을 힐끗 바라보았지만 꺼진 채 잠들어 있다. 내가 설정한 스마트폰의 벨 소리가 아니다.
그는 복잡하고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몸을 비틀어 나를 등진다. 스마트폰을 집어 든 이한이 짧은 시간에 말을 많이 한 탓에 동굴 소리가 조금 섞인 음색으로 수신에 응한다.
“응, 말해.”
무엇을 갖다 대어도 다 베어버릴 듯 날이 선 목소리가 이한의 귀를 통해 희미하게 내 귀에도 닿는다.
“아니, 이……”
이한이 다급히 스마트폰의 사이드 버튼을 눌러 통화 음량을 줄인다. 통화를 엿듣는 것 같아 불편해진 나는 자리를 피하고 싶지만 마땅치 않아 망설인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유리문을 닫고 변기 뚜껑을 내려 그 위에 앉는다. 침대가 놓인 곳과 욕실은 유리로 분리되어 있으며 변기는 벽을 등지고 침대를 향해 열려있다. 은밀함이 상식인 욕실 변기가 불투명 유리창에 의해 여리여리한 실루엣으로 공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뭉개진 이한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용은 전혀 알 수 없다. 불투명 유리 벽을 통해 이한의 움직임을 지켜본다. 그가 통화를 마치고 일어나 셔츠를 집어 들어 나비 날개 짓하듯 몸에 걸친 후 손목 단추를 채우고, 앞섶의 단추마저 위에서 아래로 잠근다. 나는 계속 변기에 앉아 있을 것인지 나갈 것인지 순간 결정하지 못한다. 그가 벗어놓았던 양말을 발에 끼우며 화장실을 힐끗 바라보는 실루엣을 보고서야 나가야만 하는 상황임을 깨닫는다. 변기의 물을 내려야 할지, 손을 씻어야 할지 순간 고민한다. 누구를 위한 고민인지, 나를 지키기 위한 건지 그를 배려하기 위한 건지조차 알 수 없는 복잡한 마음으로 변기의 물을 내리고, 손을 씻는다.
이한은 이미 재킷까지 입고 서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정면이 아닌 45도 정도의 측면에서 그의 체형과 헤어스타일을 훑어본다. 군더더기 없고 완벽히 정돈된 이한의 모습을 보며 내가 묻는다.
“가려고?”
“가야 할 것 같아. 여기 너만 두고 가기는 좀 그런데, 같이 나가자.”
순간 나는 이한의 뜻을 따라주기가 내키지 않아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나는 괜찮으니 가봐.”
감정의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내 말이 방바닥에 얼음조각처럼 뿌려진다.
“심안아, 여기 혼자 있으면 위험해. 같이 나가자.”
이한이 출입문 가까이 걸어가 나를 향해 손을 내민다. 나는 이한에게 두었던 시선을 거두며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켜고 무언갈 확인하는 척한다. 나 역시 그를 따라나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이미 확언한, 괜찮다는 한마디를 지키려 애쓴다.
불안히 서 있는 출구 쪽의 이한에게 내가 밀어내는 손짓을 한다.
“괜찮아, 이한. 동이 트려면 얼마 안 남았어. 나도 몇 시간 후면 출근해. 여기서 그냥 조금 쉬다가 알아서 나갈게. 나, 애 아니야.”
그가 시간을 확인하고 침통한 표정으로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펼쳐 머리를 넘기듯 이마를 짚는다.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 무겁게 입을 연다.
“급한 일이 생겨서….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이한이 슈 혼으로 구두를 신고 문밖으로 나간 뒤, 몇 칸의 계단을 밟고 내려서는 구두 소리를 들으며 나는 출입문을 잠근다.
조도가 낮은 방 안의 공기가 순간 바뀐다. 뜯어진 감자칩 봉지, 이한의 맥주 캔, 내가 마시던 아메리카노 캔이 아직 원형 테이블에 놓여 있다. 시간은 두 시에 가깝다.
한동안 이 상황이 몸에 익도록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는다. 세 시가 다 되어서 갑자기 생각난 듯 옷을 입은 채 이불을 덮고 눕는다. 누우면 보이는 천장의 거대한 거울을 발견한다. 화장실의 유리 벽처럼 상식을 넘어서는 소재의 향연이다. 사면의 벽에는 의외로 회색의 담담한 실크 벽지가 발라져 있다. 적어도 벽만은 무던하게 가겠다는 건물주의 결단인 듯. 너무 크고 화려한 꽃이나, 쾌활한 여자 모습, 혹은 조악한 패턴이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방에 비해 다소 크다 싶은 TV와 다시 눈이 마주친다.
‘여기 몇 시간 더 있다가 나가야겠다’ 방의 주인인 TV에게 양해를 구하듯 혼잣말을 뱉는다. 잠은 오지 않겠지만 눈을 감는다. 생각이 끼어들 틈을 비집고 다른 방의 소리가 희미게 내 감각을 압도한다. 코골이의 소리인지 신음인지 정체를 알 수 없다. 사람이 내는 소리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보랏빛 간접 등 빛 속에서 눈을 감고 잠시 있는다. 나는 홀린 듯 출입구에 신경을 가져다 둔다. 침입자를 경계하는 긴장인지 이한을 기다리는 미련인지 구분할 수 없다. 다만 누가 올까, 계속해서 출입구의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신경을 집중할수록 머릿속에 안개가 자욱하게 들어차 시야를 흐리다가 서서히 용림의 모습을 떠올린다.
대학 시절 나는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 용림의 자취방에 자주 드나들었다. 어른 없는 집이 주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과음을 한 어떤 날, 용림의 바스락거리는 구스다운 이불에 토한 적이 있었는데 용림은 나를 깨끗한 요 위에 누이고, 다음 날 내가 보는 앞에서 맨손으로 애벌빨래를 했다. 용림이 쪼그려 앉아 빨래판 위에 이불을 얹고 몸을 방아깨비처럼 움직이며 빨래하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마음 변함없이 그녀는 독립한 나의 아파트에 김치를 담가 보내주고 있다.
마음 밭이 엄마인 용림을 바스락거리는 무인텔의 하얀 침구에 묻혀 그리워한다.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사이 이불 밖의 공기가 제법 차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이불 벙커를 만든 후 용림에게 전화를 건다. 통화 연결음이 세 번쯤 울렸을 때 용림이 전화를 받는다.
“안아, 무슨 일이야?”
목소리가 잠겨 쇳소리를 내는 용림이다.
“용림아 미안해. 잠이 안 와. 잠이 안 와서.”
잠이 안 와, 말끝에 코가 뜨겁고 시야가 흐려지더니 내 목소리에 물기가 서린다.
“어이구, 안아, 너 또 이상한 꿈 꾼 거여? 요즘 너 괜찮아진 듯해서 내가 맘 놓이더니, 어쩌냐? 안아, 안아, 너 울어? 아니, 무슨 일이래? 너 집이야? 내가 지금 갈게!”
“아니, 용림아, 나 집 아니야. 오지 마.”
“집 아니여? 어딘데? 아니, 그럼, 통화는 할 수 있고?”
“응, 응, 할 수 있어.”
“안아, 괜찮아지면 말해. 말할 수 있으면 말해. 알았지? 아무 말도 안 해도 내가 기다려 줄 거니깐. 알았지?”
용림은 제 말처럼 이불 벙커 안의 말 없는 나를 기다려준다.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나와 용림의 숨소리를 서로 듣고 들려준다. 용림의 숨소리는 점차 잠든 사람의 그것처럼 규칙적으로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더니 고로롱 고로롱 코 고는 소리로 바뀐다.
용림은 반듯한 남자를 만나 대학을 졸업하고 곧 결혼했다. 사내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어려서 영재 판정을 받았다. 용림의 아이는 중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단기간에 끝낼 것을 권유받았으나 고등학교까지 정규 과정을 마치겠다고 거절했다. 비범한 아이가 평범하게 자랄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용림은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세상의 빈틈을 사랑으로 메우는 이들은 실리나 합리를 넘어선 결정을 하곤 한다.
용림의 잠든 채 끊어지지 않는 통화 연결을 벗 삼아 새벽을 맞는다. 밖이 뿌옇게 밝아짐을 느낀 나는 용림이 깨지 않게 속삭이듯 말한다.
“용림아, 그 사람이 마침내 돌아왔어. 만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나? 아니었을까? 용림아, 이제 집에 가서 출근 준비해야 해. 고마워, 용림아. 너는 좀 더 자!”
스마트폰의 화면을 끄고 일어나 이한이 양말 신던 그 자리에 앉아 양말을 신는다. 감색 아우터를 입고 밖으로 나온다. 이한을 따라 오르던 계단을 내려서 무인텔 ‘밤의 문장’을 벗어난다.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 눈을 감고 밖의 소음을 듣는다. 택시 기사의 유연한 운전 솜씨 덕에 공중에 날아오른 양탄자에 올라탄 듯하다. 택시의 차창을 조금 내려 바람이 들어오게 한 후 다시 눈을 감는다. 양탄자에 올라탄 나는 감은 눈으로 세상을 굽어보며 목적지로 이동한다. '밤의 문장'이라는 알리바바의 동굴에 잠시 다녀왔을 뿐이다. 다녀왔다는 사실로 변한 것은 없다. 아니, 변할 것이 없다.
택시 기사가 점잖게 내게 말을 건넨다.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나는 대답대신 조용히 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열려라, 참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