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문장

by 홍경

라멘 가게 앞에서 이한이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지만 내키지 않아 택시를 타겠다고 한다. 이한이 카카오 T를 열어 주소를 묻는다. 나는 망설이다 주소를 말한다.

택시가 오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가로수 아래 쪼그려 앉는다. 이한의 구둣발이 나를 향해 뻗어있다. 잘 관리된 구두를 보며 이한답다고 생각한다. 복장이나 말씨가 단정한 케이였다. 케이는 왜 이한이 된 것일까, 대답을 기다리듯 그의 구두코를 뚫어져라 본다. 이한의 발 위로 솟아 오른 두 다리가 움직임 없이 가지런하다. 그는 내 정수리를 내려보고 있는가? 쪼그려 앉은 무릎 위에 두 팔을 얹고 턱을 올린다. 내 시야를 가득 채운 이한의 구둣발과 지금 막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것을 보고 앉아 있다.

이한이 나의 정수리를 쓰다듬는다. 그는 나의 정수리와 사랑에 빠졌는가? 이한이 말한다.

“심안아, 오늘 좀 늦게 들어갈래?”

“응.”

“좀 걷자, 일어나.”

일어서서 매무새를 정리하고 100미터쯤 떨어진 편의점에서 나는 딸기우유를, 그는 초콜릿우유를 고른다. 빨대를 꽂고 걸으며 먹는다. 중학교 친구는 어른이 되어도 중학생처럼 어울리게 되는 것 같다. 일상적인 평소의 모습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두 사람이 함께했던 과거의 모습을 소환한다. 다 마신 나의 우유갑을 이한이 받아 홀쭉하게 만든 후, 자신의 것도 정성껏 접어 함께 모아 쥔다. 소주병을 따던 모습만큼 특별하게 느껴져 이한의 모든 행동을 놓치지 않고 기억하려 애쓴다.

“여전히 좋아하는구나, 초콜릿우유.”

“사람이 변하나?”

“그러니까. 사람, 좀처럼 안 변하지? 바뀌긴 하는데 변하진 않아.”

“사람이 변하기 쉽다면 다 훌륭해졌겠지.”

“사람이 훌륭해지는 것에는 한 개인의, 인생당 총량이 있는 것 같아. 사람들을 지켜보면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

“흥미롭네, 그 말. 심안은 여전히 사람에게 관심이 많구나?”

“사람이 변하나?”

둘이 동시에 웃음이 터져 소리 내 웃는다.

“이한, 넌,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어?”

“나? 네가 모르는 나의 지난 삶은 장편소설 각이다.”

“흥미롭네, 그 말.”

“심안아, 내 말 자꾸 따라 할래?”

이한이 웃으며 말을 잇는다.

“내 얘기, 막상 들어보면 흥미롭다고 생각 못 할걸. 또 모르겠다, 흥미로워할지도. 듣고 싶어?”

“얘기해도 괜찮겠어?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

“하지 못할 얘기도 아니지. 내 얘긴데, 비밀도 아니고.”

“오늘 밤에 다 끝낼 수 있어?”

“오늘 밤에 끝낼 수 있어.”

“그럼, 저기 가자. 밤의 문장, 어때?”

나는 맞은 편의 무인텔을 손으로 가리킨다. ‘밤의 문장’이라 쓰인 소심한 네온사인을 이한이 바라본다. 그가 희미하게 웃는다. 그 웃음에 나는 등이 부릉하고 울린다.

자취하는 친구의 원룸을 찾아가듯 이한이 먼저 계단을 오르고 내가 뒤따라 룸으로 들어간다.

씻고 잠들 수 있는 일에 특화된, 사방과 천장이 완벽히 막힌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다.

나는 이 공간에 대한 어색함을 지우려는 듯 룸 슬리퍼에 발을 끼워 넣고 질질 끌며 걸어가 침대에 걸터앉는다. 아직 구두를 벗지 않은 이한이 묻는다.

“씻어야겠지? 씻지 않을 생각은 아니지?”

“응, 화장은 지우고 싶은데? 양말 벗고 발도 씻고.”

“그래, 그럼. 나는 나가서 마실 것 좀 사 올게.”

혼자 남아 양치를 하고 세수한 후 양말을 벗고 발을 씻는다. 오늘이 지나면 나는 드디어 꿈속에서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집에 지붕을 얹을 수 있게 되는 걸까? 포니테일 머리를 풀어 동그랗게 말아 뒤통수에 단단히 묶어 붙여둔다. 가방에서 튜브형 핸드크림을 꺼내 조금 짜고 얼굴에 바른다. 손과 발에도 공을 들여 천천히 바른다. 아카시아 향이 희미하게 내 주변을 감싼다. 장미향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생각한다.

침대 옆에 놓인 동그란 2인용 원탁에 끼워진 의자를 빼내어 앉는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재생한다. 흐르는 노래는 AI로 생성한 음악이다. 악기와 인간의 성대를 대신할 수 있는 생성기로 콘셉트를 입력해 곡을 만들 수 있는 때이다. 생성형 AI의 다른 분야에 비해 음악은 이질감 없이 인간의 창작 영역 속으로 파고든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창작물로써의 음악은 마디가 있다. 그 마디는 창작물 고유의 특성이 되고 그 마디로 인해 곡마다 독창성을 지닌다. 하지만 AI로 생성된 음악은 마디가 없다(고 생각된다). 마디가 없어 아무리 들어도 머릿속에, 마음속에 저장되지 않는다. 듣고 잊는다. 듣기 편하고 그것으로 소비된다.

소비용 음원을 틀어두고 팔짱을 끼고 앉아 방을 둘러본다. 방에 비해 다소 크다 싶은 TV가 벽에 걸려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이 방에 이질적이지 않은 게 없다. 이한이 부스럭대는 비닐봉지를 들고 이 방에 들어서면 덜할까? 재생목록 하나를 모두 소진한 후 역시 AI로 생성된 반야심경이 흐른다.

통통, 문을 두드리는 이한. 검정비닐봉지에서 음료를 꺼내 내가 앉은 테이블에 놓아준다. 그가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넥타이를 풀고, 셔츠 소매 끝의 단추를 풀어 접어 올리며 말한다.

“과자와 맥주도 있어. 맥주는 혹시 생각날까 해서 샀는데 넌 안 마셔도 돼. 나도 발 좀 씻고 올게.”

욕실 앞에서 허리 숙여 양말을 벗고 정장 바지의 단을 몇 번 접어 올린다.

“심안아, 모텔에서 불경을 듣는 건 좀 불경하지 않아?”

내가 어니언 감자칩 봉투를 뜯으며 웃는다.

“좀 그래? 그렇다면!”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OST를 찾아 재생한다. 이한이 욕실 밖으로 셔츠를 던진다. 상황이 주는 절묘함에 내가 웃자 영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욕실의 이한도 따라 웃는다. 나는 미소 지으며 감자칩을 먹는다. 부서지지 않는 감자칩 한 개를 통째로 입에 구겨 넣는다. 예전에 케이가 말했었지, 산도와 초코파이는 한 입에 먹어야 맛있어,라고. 그렇네,라고 수긍하며 부서지지 않는 감자칩 하나 더 통째로 입에 넣어 먹는다.

욕실에서 나온 이한이 발의 물기를 닦는다. 핸드크림을 건네며 바를래? 물으니, 이한이 받아서 바른다. 나는 전원이 나간 TV에 시선을 두고 감자칩을 먹는다.

아카시아 향을 두른 이한이 내 곁에 와 의자를 빼내어 앉는다. 역시 장미향이 아니어서 다행이야,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한은 하얀 반팔 티셔츠에 슬랙스를 입고 맨발이다. 그 모습이 생경한 듯 내가 묻는다.

“상의 이너로 하얀 반팔 티셔츠를 입었네?”

“왜, 흥미롭냐?”

내가 키득키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성인 남자에 대해 다른 건 궁금한 거 없고?”

“성인 남자가 아니라 너에 대해서겠지?”

그가 사 온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멀어지는 자동차의 경적을 듣는다. 어느 특정한 날의 기억을 끌어낼 때 자동차의 경적이라든가, 저녁의 붉은빛이라든가, 김치찌개 냄새라든가, 전혀 상관없는 것부터 먼저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상관이 있든 없든 그것들은 모두 하나의 기억 줄기에 저장된 후 훗날 기억의 실마리가 되어준다.

이한이 스마트폰으로 무언가 확인하며 문자를 입력한다. 이류에게 연락하는 것인가? 나는 잠자코 기다린다. 기다리며 이한의 옷 밖으로 나와 있는 신체의 말단을 본다. 고생을 모르는 얼굴과 발에 비해 손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잘 붉어지는 귓바퀴는 전원이 꺼진 듯 평온하다. 옆 가르마를 타고 넘겨진 비둘기 양 날개의 깃털 모양 머릿결, 적당한 굵기와 길이의 목선, 팔뚝이나 다리에 털이 거의 없고 단단하다. 단정하게 깎여진 손톱과 발톱에는 선명하게 흰 반달이 박혀있다. 말랐다고 생각했지만 드러나는 팔과 다리로 보아 마른 편은 아니다.

재생목록이 바뀌어 다시 반야심경이다. 불경한 불경 때문인가? 이한이 스마트폰에 시선을 둔 채 피식 웃는다.

그는 폰을 내려놓고 캔맥주를 집어 들어 캔 뚜껑을 당겨 연다.

푸슉! 딸깍!

캔 따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이한이 캔맥주 들이켜는 모습 역시 집중하며 바라본다. 이한의 펼쳐진 목이 맥주를 삼킬 때마다 위와 아래로 부드럽게 움직인다.

이한이 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나지막이 묻는다.

“안 무섭냐? 나?”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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