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앙칼진 여자의 성난 목소리가 들린다. 외부 세계의 밤은 온통 그녀가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적어도 나와 너는 성난 외부 세계의 지배자로부터 안전하다. 꼭 닫힌 창문과 두툼한 암막 커튼을 바라보다 너에게 묻는다.
“안 무섭냐는, 그 질문은 무슨 뜻이지?”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무섭지 않아, 전혀. 너는?”
“이 시간에, 너는 겁도 없이, 이런 곳엘 오자고 하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나는 남자도 아닌 건가 싶기도 하고.”
“이 시간은 속 얘기를 하기에 적당하고, 나는 원래 겁이 많은 편이지만 예외를 두는 편이고, 너는 누가 봐도 남자야.”
“무서움에 예외가 있다?”
“물론! 나의 호기심은 무서움을 넘어서지.”
“호기심 때문에 겁나지 않는다?”
“맞아.”
“좀 위험해 보이는군. 나에게만 그랬으면 좋겠다.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내가 대답 없이 생각에 잠긴 사이 네가 이어 말한다.
“호기심 때문에 다른 누군가와 이렇게 네가 앉아 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불쾌하고 두렵다.”
“걱정해 주니 고맙긴 한데 네가 왜 불쾌해?”
“질투 나.”
나는 너의 찡그리는 얼굴을 보며 웃는다.
질투 난다,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둘 중 하나겠다. 자신감이 넘치거나 사랑 빠지지 않았거나(빠졌더라도 거의 헤엄쳐 나왔거나). 사랑에 절여져 애 닳는 사람은 절대, 질투 난다는 말을 뱉지 못하는 법이다. 질투는 말이 아닌 행동이나 표정으로 자신도 모르게 표현되는 감정이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므로 상대 역시 당시에는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네가 표현하는 질투라는 단어의 어감에 기분이 좋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네가 맥주를 몇 모금 들이켠다. 내가 감자칩을 내밀고 너는 그것을 한입에 받아먹는다. 나는 이 미묘한 시공간의 감각을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이려 애쓴다. 너는 어느새 귓바퀴가 붉어져 있고 하얀 맨발을 떨기 시작한다. 나는 또 본능적으로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지그시 누른다. 네가 말을 잇는다.
“이렇게 함께 있다는 게 정말 놀랍다. 이런 날이 오는구나. 나는 맥주를 마시고 네가 감자칩을 입에 넣어주고. 완벽해.”
“야! 아~ 해. 또 넣어줄게.”
싱글벙글해진 네가 나를 향해 목젖이 보이도록 입을 크게 벌린다. 감자칩 두 개를 집어 단정하게 포갠 후 너의 입에 넣어준다. 손을 뻗어 빨갛게 달아오르는 너의 귓바퀴를 만지며 말없이 밤새 함께 있고 싶어진다. 너의 얘기를 궁금해하며 침실을 대실 한 것은 핑계였을까? 맥주와 감자칩을 번갈아 삼킨 후 네가 말한다.
“나는 아직 먼 미래나 예측되는 상황에 대해서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 예상되는 문제에 대응하는 방편도 염두에 두지.”
“큰 도움은 되지 않을 텐데.”
“물론 그렇기도 한 것 같아. 하지만 성급함이나 충동은 막을 수 있지.”
“나는 지난 일에 대해서 반추하는 편이긴 하지만, 일어날 일에 대해 시간을 들이지 않아. 예측이란 것이 사실에 비해 증폭되기 마련이어서 의식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다시 말하자면 과거를 교훈 삼아 좀 더 현재에 집중하자는 거지. 과거와 현재가 미래의 씨앗이다,라고 생각해. 무엇보다 성급함과 충동이 없었다면 지금 너와 내가 이렇게 같이 있을 수도 없었을 텐데?”
“나도 너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너의 충동은 아무래도 주의가 필요해.”
“알겠어. 네가 걱정하는 게 뭔지 알겠다고.”
식어가는 아메리카노를 목이 타는 듯 무의식적으로 한 모금 마신 후 내가 이어 말한다.
“한아, 너에게 케이는 어떤 의미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응.”
“대답이 응, 이라니 참, 너답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너의 눈이 갑자기 무척 피곤한 듯 무겁게 내려앉는다. 너는 억지로 이마의 근육을 사용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있다. 쌍꺼풀이 조금 짙어지고 얼마간 눈이 깊어진다. 마치 긴 터널을 지나는 자동차의 라이트처럼.
“안이 네가 곁에 없었으니까, 그게 고생이었지.”
너는 쓸쓸하게 웃는다. 곁에 누가 없어서 고생인 것은 나도 잘 안다. 나는, 하루가 너무 무겁고 차가워서 늘 외롭던 날들이 떠올랐다. 네가 그런 시간을 보냈다는 말에 공평한 외로움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내가 이쪽의 외로움의 추에 무게를 높일 때, 너도 맞은편에서 외로움의 무게를 맞추고 있는 쓸쓸한 모습을 상상한다. 너는 어느 결에 너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갑자기 제주로 이사하고 나는 그곳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어. 뭐랄까, 섬에 갇혀 사는 사람들은 특유의 결계가 있는 듯 보였어. 별로 뚫고 싶지 않았고 그들도 뚫리고 싶지 않아 보였어. 어디서나 애새끼들이란 똑같지. 하지만 전학하며 만나게 되는 애새끼들은 좀 더 비열하게 건들거려. 서로의 낯선 흙냄새를 맡고 서로 경계하되 나를 상대하는 그들의 무리 성향은 돌멩이처럼 단단해지는 거야. 그렇다고 전학으로 인해 내가 힘들었다, 망가졌다, 그런 뜻은 아니야. 무척 자유로워졌어. 나를 모르는 어느 집단에 던져진다는 것은 나를 특정하는 유형이 없다는 의미고 다시 말해 내가 원하는 모든 유형으로의 변신이 가능함을 의미해. 내가 어떤 유형의 인간이건 그들은 너, 원래 안 그랬잖아,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거든. 그것이 자유롭고 좋았어. 선을 넘는 놈이 있으면 죽인다, 그런 생각도 했었는데 애초에 녀석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어. 그때는 그것이 참 자유롭고 좋았어. 다만 좀 외로울 때, 그것 때문에 곤란하거나 힘들 때는 내가 기억하는 너의 모습을 그렸어.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너로 가득 찬 드로잉 노트를 너에게 줄게. 일기 같은 드로잉 노트여서 어쩌면 너에게 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어릴 때 일기에 적는 생각들은 창문 밖 새의 지저귐 같은 거니까 유치해도 어쩔 수 없지. 뭐? 아, 그림? 당연하지. 나는 지금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모든 상에 입혀진 색을 빛의 쪼개짐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지. 빛을 쪼개 물감의 농도와 색으로 표현하며 집착에 가까운 희열을 느껴. 시간과 장소, 날씨, 계절에 따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단 한 번도 같은 색을 띠지 않거든. 사람의 경우 기분에 따라 표정이 미묘히 변하며 그 작은 변화로도 색이 바뀌지. 사람의 마음은 어떨 것 같아? 웃기는 소리 같지만, 사람들은 본디 저마다 색이 있고 그 색에 마음의 색을 얹는 거야. 융의 집단 무의식에 관한 연구로부터 시작된 색채심리학이 학문으로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해. 인간에게 색을 덧댄다는 것은 본디의 색을 잃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어 달라진다는 의미거든. 파도처럼 분명한 형태는 가지지만, 실제로는 계속 변하는 흐름이 인간이니까. 나같이 외로움에 지져진 인간은 곁의 그 무엇으로도 놈을 따돌리지 못해. 상흔이 되어 몸에 붙어 있거든. 외로움에 붙들려 살다 보면 또 그마저도 나쁘지 않아. 외로움 따위는 가끔 느끼는 보통 사람들이 모여 살 때, 나 같은 인간은 조금 떨어져 적당히 지내면 그만이니까. 아, 그래? 자학 아닌데? 자학하는 것 같아? 그럴 리가. 나는 나의 생을 가볍게 보지 않아. 내가 그래 보여? 참 나, 다 아는 듯 말하네? 섬의 외로움을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살아온 네가 어떻게 알겠어? 어쨌든, 결국 우리는 모두 혼자야. 이 말이 오해하기 쉬운 말인데, 모두 혼자라는 말이 혼자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야. 우리는 모두 안팎의 모든 것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공유하고 있고, 함께 연주하며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 단원이며 겹겹이 칠해진 물감의 색감이야. 우리의 생은 개별성에 의해 과업을 이루고 그것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인데 오히려 그 완성은 개별성을 지우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계속 이렇게 맴도는 생각을 너무 오래 해 왔어. 누가 들어주지도 않는 이런 생각들을 한심하게도. 그래도 난 이런 내가 좋아.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다 생각난 건데, 페소아의 시, 너 읽어 봤어? 사랑의 목동이야. 나는 외울 수도 있어. 내가 좋아하는 몇 개의 시는, 정말이야, 하도 많이 읽어서, 외운다고. 진짜라니까? 들어볼래?
네가 없었을 때 나는
평온한 수도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듯
자연을 사랑했지
지금도 나는 자연을 사랑해
평온한 수도사가 성모 마리아를 사랑하듯
종교적으로, 내 식대로, 예전처럼,
하지만 더 진실하고 친근한 다른 방식으로.
들판을 따라 강변까지
너와 함께 거닐면
강들을 더 잘 볼 수 있지,
너의 곁에 앉아
구름들을 보면서
조금 더 잘 보면서
너는 내게서 자연을 가져가지 않았어
너는 내게서 자연을 바꾸지 않았어
자연을 바로 내 앞으로 가져왔어
네가 존재하기에
나는 그것을 더 잘 보지, 하지만 똑같이,
네가 나를 사랑하기에
나는 그것을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하지,
하지만 더, 네가 너를 가지고
사랑하도록 나를 선택했기에,
내 두 눈은 더 오래 머물지
모든 것들 위에.
나는 옛날의 나를
후회하지는 않아
여전히 그게 나이기에.
단지 옛날에 널 사랑하지 않은 것만
후회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