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의 신세계

버드와이저와 한여름 밤의 정전

by 홍경

툭 하며 불이 꺼졌다. 정전이었다. 마침 S는 간단히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책을 읽고 있던 터였다. 책을 덮고 발코니 쪽을 보았다. 몇 주 전 발코니에 둥지를 튼 비둘기 부부는 알을 품고 드나들며 소란했다.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나면 더욱 시끄러워질 것이었다. 발코니는 좁은 데다 언제부터 쌓아 놓은 것인지 모를 쓰레기가 있고 먼지가 뒤덮여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지만 저렇게 침입자가 떡하니 자기 공간인양 당당한 모습은 곤란했다. 주말에 비둘기 부부와 눈이 마주칠 때도 있었는데 그들은 매번 S를 제압했다. ‘염치없는 존재를 곁에 두는 것은 성가시고도 좀 난처한 것이구나.’라고 S는 생각했다.


이곳은 시(市)에서 지은 미혼 노동자를 위한 기숙사로 한 실에 방 2개가 있고 방 하나에는 두 명이 기숙했다. 야간 입실 통제 시간이 있고 정해진 때 공동구역 새벽 청소의 의무가 있었다. 가끔 저녁에 정전이 되곤 했는데, 발코니로 통하는 불투명 창을 열면 또 한 번 가로막히는 투명창 너머 희미하게 가로등 빛이 들어오고 어둠이 눈에 익은 후 어둑하긴 해도 다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S는 발코니 문틀에 기대어 앉았고 비둘기 부부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어둡지만 그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S를 경계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S는 은근 심기가 불편해졌다. ‘여기는 내 집이거든! 사실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 했었는데 너희 가족을 여기서 쫓아낼 수도 있어. 하지만 너희 알들은 너무 약하고 소중하지. 적어도 너희가 품고 있는 알들을 내가 응원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아두라고.’


S는 날개 달린 모든 것이 두려웠다. 두렵다는 것이 막연한 공포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점유하는 공간은 좀 더 다채롭고 자유로우며 그 이동하는 방식 또한 ‘우리’와 다르다. 중력을 거스르며 오르기도 하고 우아하게 낙하한다. 예측할 수 없는 때 품으로 날아들 수 있다는 것, 혹은 그 반대의 상황이라 해도 역시 편치 않은 존재였다.


‘새와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새장에 새를 가두고 키우면 두려움이 덜 할까? 새장을 열어 두어도 날아가지 않는 새를 키운다면 그 마음은 흡족할까, 아니면 안타까울까? 새의 다리에 메모를 묶어 누군가에게 날려 보낸 사람의 마음은 또한 어떠할까? 그 새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기다림과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넘어서 잘 전달한 것인지, 회신이 있다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 따위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 성가신 상황에서 과연 느긋하게 일상을 보내는 것이 가능할까? 온통 새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배고픔 마저 잊을 것 같은데 말이지!’

S는 여기까지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역시 새와 함께 하는 생활이란 것은 그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일이었다.


S는 비둘기 부부와 함께 몇 개의 알을 염려하며 어둠 속에 있었고 머릿속엔 정전되기 직전 라디오에 흐르던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 4악장이 맴돌았다. 어둠 속에 죠스가 나타날 듯한 긴박함 뒤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펼쳐졌다. “빰~ 빰빰 빰 빠~밤, 빰~ 빰 빠빠 밤~” 낮게 익숙한 음을 뱉으며 부엌 냉장고의 버드와이저 한 병을 꺼내 들고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잠깐 불이 들어오는 듯하다 다시 툭 꺼졌다. ‘나간 것은 기다리지 않는다.’ 이것이 S의 결론이었다. S는 버드와이저를 병째 마시며 문틀에 기대고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전이 된다 해도 어느새 제 발로 돌아와 빛과 열, 바람을 내는 법이지. 사람들은 촛불을 밝히기도 하는데 기다림을 잊는 것으로써 퍽 좋은 방법이다. 기다림 만큼 곤란하고 곤욕스러운 것이 없다. 이것은 현재 내가 쥐고 있는 것과 감싸고 있는 그 모든 것을 무채색으로 만들며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까지 무채색으로 물들인다. 기다림은 현실의 사소한 그 무엇으로도 대체가 가능하다. 어렸을 때의 기다림은 말할 수 없이 처절했지. 현실적인 어떤 것에 빠져들었다가도 깜짝 놀라 다시 기다림의 허망한 심연에 작은 몸을 묻었다. 기다리지 않으면, 그 간절함이 사라지면 정말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몰랐었어. 이미 기다림에 대한 울렁거림을 알기에 오히려 더 집요하게 기다리지 않는 지금, 그것들이 별 차이가 없음을 깨닫는다. 지나치게 기다리는 것과 기다리지 않으려고 현실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인가? 나는 왜 계속해서 기다리며 실망하며 결국 외로워지는가? 일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늘 외롭다. 기다림의 대체물로서의 일상이란 이런 것이다. 결국 나는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고 또한 계속해서 외롭다. 채울 수 없을 것 같은 빈 공간을 인식하기 위해 사는 것인가? 잊지 않아야 하는 본질적이고 원론적인 사실로서의 외로움. 그 외로움으로부터의 구원이 사람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관념적인 것일까? 아직 나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으므로 사람에 의한 구원을 바라고 있다. 나 아닌 타인에 의한 구원이 가능한 것인가? “


S는 눈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 9시 반. 조금 있으면 룸메이트인 K가 귀가할 시간이었다. 이 조그만 방에 방문을 중심으로 오른편 벽면은 S가 사용했고, 왼편 벽면은 K가 사용했다. 벽면에 간단한 행거를 두고 옷을 정리했고, 이불도 한편에 쌓아두었다. 앉아서 화장할 수 있는 곳도 서로 각각 마련했다. 둘의 성향상 그리 간섭하는 편이 아니어서 각자의 취향이나 과거, 현재, 미래까지도 건조하게 공유했다. 나란히 누워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깊이 서술하고 함께 했다. 완벽한 룸메이트란 이런 것이다!


맥주는 S의 손에서 데워져서 어느덧 중년 여인처럼 매력을 잃어갔다. 여름밤, 불 꺼진 방으로 스미는 바람이 조금 시원하게 느껴졌고 홀로 덜 매력적인 버드와이저를 마시며 바라보는 이 어둠의 세계는 온전히 S의 것이었다.

“빰~ 빰빰 빰 빠~밤, 빰~ 빰 빠빠 밤~”


맘껏 외로워라! 더 깊이 외로워라! 낮게 낮게 가라앉아 더 낮아질 수 없도록 몸을 낮추어라! 아무도 들려주지 않는,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인식하라! 내버려 두어라! 구원은 없다! 끊임없이 변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외로워라! 나는 결국 빈 공간을 그 무엇으로도 메우지 않은 채 담담해지는 법을 밝혀낼 것이다!


S는 버드와이저를 완전히 비우고 그 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비둘기 부부는 평온히 밤의 어둠에서 웅크리고 있었고 방의 형광등은 한참을 파르르 떤 뒤 제 빛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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