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기울기 23.5도

시어머니

by 홍경

시어른들은 신혼 때부터 자주 전화하셨고, 나 역시 그것에 대해 불편함은 없었다. 주말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시댁에 들렀다. 결혼 3년이 지나 아이를 낳았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시어머니가 깔끔하신 분이신데 어린아이를 데리고 시댁에 가면 불편해하시기 시작했다. 평소 주말에 시댁에 가도 자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아이가 생긴 이후 주말에 갈 때마다 "잘 생각 말고 너희 집에 가서 자라"고 이르시는 것이었다. 아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고, 차츰 잡고 일어설 때가 되었을 때는 "힘든데 자주 오지 않아도 된다"라고 하셨다. 아이를 데리고 시댁에 가면 아이를 위해 요를 깔아주시는데 눈처럼 새하얗고 바스락했다. 오후 네시가 되면 그 새하얀 요를 정리해서 이불장에 넣으시며 가라고 하셨다. 이제는 시어머니의 목소리도 싫고 쓸고 닦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어졌다.


시어머니에 관한 뒷담화를 들으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참 한결같이 한 곳으로 흐르는 그 마음이다. 마음에 기울기가 23.5도쯤 기울어 그곳으로 흐르고 마는 물처럼 한 곳에 고인다.

보통 며느리들의 흔한 고충으로 보자면 시댁에서 자고 오는 것이다. 자고 오지 않으려고 항상 고민하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게 남편을 통해 의지를 관철시키고 만다. 남편은 중간에서 난처해하고 모름지기 힘든 점도 많겠지만 대체로 아내를 위한 삶의 방향을 잡는 시대여서 그리 크게 문제없는 것으로 보인다.

며느리들은 자고 가라고 해도 싫고, 자지 말고 가라고 해도 싫은 거구나 생각하기에 이른다. 앉으라 해도 싫고 서라 해도 싫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쇼핑을 좋아하시는 어느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곁들여본다. 백화점에 자주 가시며 가실 때마다 아이 양말이라도 사 오시고, 아이뿐만 아니라 아들 내외를 위한 아주 많은 것들을 사다 놓고 가신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는 물건의 크기가 커져서 상의 없이 소파를 사서 보낸 적도 있다고. 이 시어머니의 며느리는 무엇이 고충인가? 시어머니의 생활비와 용돈을 아들 내외가 전적으로 지원한다는 점이다. 이 뒷담화(花)를 들은 어느 며느리는 몹시 부러워하며 자신의 시어머니는 손주가 셋이나 되는데 양말 한 번 사주신 적이 없다고 했다. 물론 시어머니의 생활비와 용돈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고. 사주는 시어머니와 사주지 않는 시어머니에 관한 고충은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팽팽히 맞서다 결국, '아무튼 곤란하다'로 막을 내렸다.

깔끔한 시어머니와 털털한 시어머니, 젊은 시어머니와 연세가 많으신 시어머니, 말 수가 적은 시어머니와 수다스러운 시어머니, 부엌일을 알려주는 시어머니와 알려주지 않는 시어머니 모두 논란의 대상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시어머니의 수많은 모습 중 무엇이 특별히 곤란하다고 특정되어 있지는 않으며 공통점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이 어느 순간, 부지불식간에 견디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여자의 적

여자의 적은 여자라 하지 않았던가. 언제, 어디서건 여자를 힘들게 하는 존재들은 대개 여자다. 양끝에 서서 줄을 잡아당기는 형국의 모습을 특징으로 하며 한쪽으로 가해지는 완벽한 상처나 완벽한 승리는 없다. 며느리들의 뒷담화를 미루어 보건대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는 며느리들도 뭐 그리 신통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시어머니들의 뒷담화를 직접 들어보아도 그렇게 볼 것만도 아닌 것인데 그녀들에게도 마음의 기울기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서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가능하면 기분 나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처럼 각도가 미묘하게 틀어져 있다.


꼭 그렇게 완전히 나쁘지도 않은 것이므로

주제 뒷담화로 돌아가 "다른 시어머니와는 다르게 집에 일찍 보내주시네, 좋다" 이건 어떨까? 이 세상만사는 좋은 점과 곤란한 점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믿어보자. 사실이 그렇고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완벽히 곤란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완벽에 가까운 곤란함이라 느껴질 때는? 바로 그 순간이 대화가 필요한 순간이다. 발화점이 된 그 시점으로부터 가능하면 가까운 날에 자신이 느낀 부당함이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리고, 오해가 있다면 푸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어른들의 문제 해결 방식이고 먼저 시도하는 사람이 한결 유리한 것도 사실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 관계의 지위가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대화의 기회를 열고 대화하면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대게 이렇게 성공적인 대화를 나누고 나면 적당한 마음의 거리가 생기고, 그 미묘한 마음의 거리에 의해 존중이 가능하다. 몹쓸 마음의 기울기가 본능적으로 생겨나는 사람들 간에 '약간의 불편함'은 간혹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시'가 붙여져 있다 해도 가족은 가족이다

어느 유튜버의 경우 나를 괴롭게 하는 가족은 그들이 나이 들어 '힘이 떨어지면' 복수하라는 지침을 주기도 했다. 묘수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런 식이라면 정말 곤란하다. 나이 들어 힘이 떨어지는 가족은 복수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되어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곤란한 가족은 거리를 두거나, 의사표시를 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갈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배려하며 지내거나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곤란한 점을 알리고 거리를 두는 편이 낫다. 함께 하든, 거리를 두든 결국, 갈등을 표면화해야 한다. 복합적이고 긴 시간 동안 생성된 곤란함은 일시에, 단번에 알리기도 어렵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대체로 그렇게 괴로운 상태로 진행되게 된다. 이런 경우는 과거 있었던 모든 일은 소급 적용하지 않고 현안에 집중한 후 그것에 대해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새로 발생되거나 과거의 것이 다시 재현되는 갈등에 대해서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대화를 해야 한다. 가족 간의 갈등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부드럽게 해결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극단적 단절이나 일부 단절을 선택했을 경우 단절을 결정하고 거리를 둔 사람은 오히려 좀 마음이 가벼워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나친 죄책감이나 자격지심으로 자신을 괴롭히거나 거리를 둔 후 상대를 더 밀쳐내면 곤란하다. 내가 편안해져야 상대에 대한 마음의 틈이 생기며 그 틈에 의해 건강한 유대감을 되찾을 수 있다. 가족이란 그런 존재 아닌가, 또 다른 나. 떼어내려 하면 떼어낸 곳에 생채기가 나고, 묻어두면 그 언저리가 먹먹하게 숨이 닿고, 시원스레 무엇도 잘 안 되는 그런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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