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하고 차가운

희석식 소주

by 홍경

그는 눈을 감고 온 세계를 둘러보았다. 지금 눈에서 멀어진 볼 수 없는 장소와 시간의 세계는 암흑이었다. 그는 암흑의 세계를 믿지 않았다. 원래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했다. 그 세계의 누군가를 소환하는 것은 큰 에너지의 소모가 있었다. 에너지를 소모하는 만큼 얻는 안정감이나 확실성은 그다지 큰 가치가 없다 생각되었고, 자연스럽게 암흑의 세계는 그대로 멈춰있었다. 멈춰진 그 세계의 누군가가 그를 소환할 때는 철저하게 통제하며 응했다. 대체로 응답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그는 두 곳에 완벽하게 존재하는 법을 고민해 왔다. 의식의 스위치를 달리 켜거나 끄는 것, 혹은 동시에 켜거나 끌 수 있는 것 과는 다르게 육체는 한 세계를 장악하며 동시에 존재할 수 없었다. 감각을 지닌 육체는 언제나 한계의 그림자를 커다랗게 드리우며 두 개 혹은 세 개 이상의 세계에 의식을 확장할 수 없도록 피로감이나 통증으로 눌렀다. 그의 노력이 수많은 한계와 비관으로 형태를 바꾸고 결국은 이제 그만 이쯤에서 물러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보이지 않는 물성의 세계에 의식을 흐르게 두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그해 겨울, 내렸던 눈이 녹지 않고 쌓인 논둑을 걸어 그는 학교를 향했다. 마을 인가에서 점차 멀어지며 듬성듬성 배치된 낮은 산을 피해 펼쳐진 많은 논과 논의 사잇길을 걸었다. 그가 등교하는 방향과 같이 시냇물이 조롱조롱 흐르고 있었고, 몇 걸음 떼면 다 건널 수 있는 작은 다리 어귀에서 한 여인이 냇가에 하얀 옷을 입고 엎어진 채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냇가로 내려가면서 잠시 고민했다. 그냥 등교할 것인지 아니면 동네 인가로 돌아갈 것인지, 선택을 해야만 했다. 여기는 인가와 학교를 정확히 반으로 가르는 지점이었다. 다시 마을로 돌아가면 지각이고 학교 주변에는 이렇다 할 인가가 없었다. 그는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의 어깨에 손을 대고 흔들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여인의 검고 긴 머리칼이 안타깝게 냇물에 흘러내리며 찰랑거리고 있었다. 너무나 차갑게 얼어붙은, 사람도 물건도, 지구 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물상의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단단한 차가움이 손에 느껴졌다. 죽어 있었다. 그는 마을까지 쉬지 않고 단숨에 뛰었다.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여인의 집으로 뛰어가 비보를 알린 후 황망해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다시 학교까지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계속해서 뛰었다. 수업시간 내내 그 단단한 차가움이 그의 오른손에 끈질기게 붙어 있었고, 볼펜을 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아침의 그 다리 어귀에서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뛰었다. 마을은 초상을 치르기 시작했다. 초상집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였고 그의 어머니는 마당 한편에서 다른 여인들과 함께 바지런히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에겐 한 살 위, 마을 친구 hY가 있었다. 학년도 한 학년 위였지만 서로 이름을 불렀다. 이사한 후 마을의 또래 아이들과 친분이 전혀 없었던 그의 유일한 친구였다.

참으로 시무룩하게 걷는 뒷모습, 교복이 심하게 어울리지 않는 hY와 처음 대화를 한 것은 지난봄, 그가 먼저였다. 그날 그는 청소 당번이었고, 종례 후 교무실로 오라는 담임의 지시가 있었다. 교무실에 찾아간 그, 담임은 그를 힐끗 쳐다본 후 책상 위 교무수첩을 지시봉으로 톡톡 내리치기 시작했다.

"너와 2학년 hY는 가막골 아이들이지? 못 사는 동네에 아까운 아이들이 태어났구나. 전교생 중 너의 둘은 유난히 IQ가 높아. hY는 공부라도 곧잘 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 IQ가 아깝다. 혹시 모르니 노력이라도 해봐, 노력이라도."

그는 교무실을 나와 중앙 계단을 오르며 생각했다.

‘이것은 비난인가 칭찬인가? 나는 가막골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마을에 대한 애착도 없을뿐더러 어른들과 마주치면 인사만 하는 정도다. 3년 전 이사한 첫해, 마을 사람들의 텃세로 농사를 망쳤으며 이제야 간신히 우리 부모님만 마을 사람 행색이 날 뿐이다. 마을 아이들에게 나는 아직 흰 피부의 서울 말씨, 이방인이다. 게다가 IQ와 성적이 무슨 상관이지? 성적이란 것은 담임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나에게 충고하려는 의도였다면 hY와의 비교 따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담임은 그저 나를 비난하고 싶었던 것이다. 항상 전교 1등을 도맡아 하고 있는 3반 Z가 담임의 아이인데 그 아이 IQ가 나보다 낮은 가보다. 그래, 그걸 참을 수 없는 걸 거야. 그동안 가막골 아이네 뭐네 하며 특별히 날 다르게 대하진 않았었잖아. 오늘 그 시선, 표정, 다른 때와는 달랐어. 분명히 달랐어.’

그는 일순간 불쾌감이 밀려들어 몹시 기분이 나빠졌고, 청소도 마치지 않은 채 책가방을 챙겨 학교를 빠져나왔다.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를 턱턱 차내며 걷다 마침 저만치 앞에 걷고 있는 hY가 눈에 들어왔다. 부리나케 달려가 hY를 불렀다.

"야! 너 담임이 너보고 뭐라 안 하던?"

"하던데."

"그래? 나도."

가막골에 산다는 것과 전교생 중 IQ가 특별히 높다는 그런 사실보다 눈에 띄지 않던 두 사람이 담임에게 불려 가 비난을 받았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오는 묘한 동질감과 함께 자연스레 따라붙는 우울감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그 이후 친구가 되었다.

hY의 집은 가막골에서도 몇 채 남지 않은 초가집이었다. 제법 넓은 흙마당을 지나 높은 턱 위에 왼쪽으로 장작을 보관하는 허름한 헛간이 있고, 가운데 문이 없는 부엌, 오른쪽으로 좁은 마루 뒤로 방 두 칸이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간 적도 있었는데 두툼한 흙벽돌이 느껴지는 흙이 칠해진 벽, 바닥은 기름종이가 깔려있었다. 이렇다 할 가구보다 선반 위에 이불을 쌓아두고 별로 눈에 띄는 것이 없던 걸로 보아 다락에 옷을 넣어 둔 듯했다. 어느 날 그는 해가 지도록 hY의 집에서 머물다 hY의 할머니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간 적이 있었다. hY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왔다는 그의 말에 어머니는 크게 화를 내셨고 다음 날 반찬을 만들어 저녁 무렵 그를 앞세워 hY의 할머니를 찾아갔다.

"아이가 철이 없어 폐를 끼쳤어요. 밑반찬 만들어 왔는데 아이들과 맛있게 드세요."

"쟈가 친굴 데리고 온 긋이 츰이라 믄 일인가 했쥬. 므 이른 걸 다 챙겨유, 잘 먹을게유."

가파른 길을 오르느라 가쁜 숨을 쉬며 그의 어머니는 새삼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어머니에게 '밥 먹을 때가 되면 집에 돌아와야 한다, 남의 집에서 밥을 먹는 폐를 끼쳐선 안된다.'는 어릴 적 들었던 그런 말을 다시 들을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hY는 아버지가 몇 해 전 돌아가셨어. 어머니는 혼자되셔서 읍내 장에서 일을 하시느라 거의 집을 비운대. 나이 차이 나는 동생이 둘이잖아. 정부에서 쌀이 나온다고는 하는데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도 계시고, 할머니도 함께 저 집에서 사는 게 힘들 거야. 네가 철이 없어도 그렇지 저기서 저녁을 먹고 오면 어떡하니?"

그는 말없이 앞서 걷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서른아홉, 짧은 파마머리, 희고 단단한 체격, 확신에 찬 앞이 막힌 파랗고 투명한 슬리퍼의 발걸음.

이 마을은 소수의 유지와 다수의 머슴 관계로 대를 이어온 외부인의 유입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유지의 집은 크고 견고하며 아름드리 살구나무 정도는 마당에 품고 있었고, 다다르는 길이 넗고 평평했다. 유지의 밭이나 논을 일구는 일꾼, 머슴들의 집은 대개 모퉁이에 지어져 있거나 아직도 초가집이거나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엉성한 벽돌집이었다. 그들 모두 눈에 보이는 온갖 것들로 신분의 차를 인정하고 있었고, 그의 가족들은 그 어느 쪽에서 속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었다. 양쪽 다 그의 가족을 무시했고, 양쪽 모두 그의 가족을 경계했다. 마을 사람들은 충청도 사투리로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으나 예측할 수 없는 함정을 파놓곤 했다. 그의 부모는 가막골 사람들을 낮은 학력의 미개한 자들로 낮추어 보았고 그곳에서 시작한 여유나, 관용, 베풂 같은 것에 몰입되어 있었다.

"hY는 공부 잘해요. 모르셨죠? 게다가 IQ도 저와 비슷하고요. 생각도 깊고 좋은 친구예요. hY가 그런 걸 보면 부모님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모두 좋은 분들일 거라 생각해요. 동생들도 얼마나 귀여운데요."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마."

그에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친구를 사귀는데 누군가의 허락 따윈 필요 없었다.


hY의 마당에 멍석이 여기저기 깔렸고, 기름 냄새가 담 너머로 타고 흘러나왔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굶은 사람들처럼 음식을 먹으며 시끄러웠다. 그는 뒷문으로 들어가 hY를 찾았다. 눈처럼 새하얀 상복을 입고 머리엔 하얀 리본 핀을 꽂고 있었다. 밖으로 나와 둘은 담 밑에 쪼그리고 앉았다.

"있잖아, 울 아빠가 갑자기 방바닥을 구르셨어. 농약 냄새가 났던 것도 같았는데 그때 내가 어려서. 왜 그러냐고 물었거든. 아빠가 목이 마르다고 물을 달라고. 그래서 물을 떠다 드렸어. 아빠는 그 물을 마시고 죽었어. 내가 너무 어려서 잘 몰랐어." hY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도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아직 그의 오른손에 남아있는 단단한 차가움이 더 서럽고 슬퍼졌다.

'모든 것에 단계란 것이 있지 않을까, 시기란 것이 있지 않을까, 정도란 것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hY는 어머니의 상을 치르고 난 뒤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서 hY는 조금씩 천천히 멀어졌다. 그는 hY의 집을 지날 때마다 그 집의 담 밑에 조용히 쪼그리고 앉았다 가곤 했다. 붉은빛이 문풍지로 새어 나오는 웅크린 초가집이 허물어지고 슬레이트 집이 지어졌다. hY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한참 후에는 우연히도 만날 수 없었다. hY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이사 갔기 때문이다.

그는 hY의 슬레이트집과 함께 가막골에 남겨졌고 그가 대학 진학으로 마을을 떠나기 전까지 가끔, 그 서늘한 담 밑에서 앉아 있곤 했다. 그때마다 그렇게 간절히 소주 한잔이 그리워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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