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술과 미움
안녕하신가요? 홍경입니다.
이번 뒷담화 주제의 글은 없습니다. 모래알만큼이나 소재가 다양하여 주제 글 보다 주제어를 다루는 것이 낫다 생각되었습니다. 아래 이어지는 모든 문장은 '나의 생각은', '내가 생각하기로는', '적어도 나는'이 문두에 생략되어 있습니다. 닫는 문장으로 쓰여있지만 문을 반 정도 열어 두었으니 열어 놓은 반의 틈으로 더 깊은 사유가 있길 바랍니다.
심술의 뒷담화는 대개 -1의 속성을 지닙니다.
일단 주체가 가진 모든 장점은 평가절하되며 그를 둘러싼 모든 잘된 일들은 그가 가져선 안되는 것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뒷담화중 개인적으로 가장 듣고 있기 힘든 주제로 귀를 씻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심술을 부리는 사람의 얼굴은 평온하지 않고 욕심이 머리 뒤편을 감싸며 사각형 좁은 상자 안에 갇힌 듯한 형상을 보입니다. 대개 심술쟁이 이야기가 진행될 때 딴생각을 할 때가 많아 끝까지 집중하지 못하지만 이야기가 얼추 마무리되었을 때 마무리 말 정도는 하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훌륭하며 누구나 형편없다, 누구나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게 되어 있고, 내 것을 빼앗아 잘 된 사람이라도 면전에서는 일단 축하해줄 일인데 하물며 나와 아무 상관도 없이 잘 된 일이 있다면 기꺼이 기뻐하며 축하해줄 일이다. 나보다 날씬한 것, 나보다 언변이 좋은 것, 나보다 키가 큰 것 혹은 나보다 승진이 빠른 것, 나보다 좋은 기회를 얻은 것, 나보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둔 것, 이외의 다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다른 사람이 잘못되었을 때는 안타까워해주고 잘 되었을 때는 축하해주면 그만이다. 나는 내 삶을 살며 내 밥을 먹고, 다른 이는 그의 삶을 살며 그의 밥을 먹을 뿐이다."
우리는 살면서 인생이 바뀔 정도의 큰 변화를 겪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와 좋은 성품을 모두 갖춘 상대와의 결혼, 최연소 혹은 고속 승진, 성공적인 투자, 풍년을 맞은 자식농사 등 이 외에도 갑자기 들이닥치는 변화는 많을 것입니다. 이런 남의 좋은 일에 심술은 활성화되며 반드시 본색을 드러냅니다. 심술은 보이지 않게 뒷담화하는 것으로 그치지 못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축하의 상자를 건네지만 그 안에 든 것은 비루한 본심이며 축하를 받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감지하지요. 좋은 변화 앞에 이런 불쾌한 인간에 대한 기억은 많은 것을 일깨웁니다. 큰 변화는 큰 깨달음을 주며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의 기회가 되어줍니다. 기품 있는 사람과 비루한 사람은 평소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나의 성품입니다. 내가 갖춘 것으로 세상을 볼 수 있으며, 본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구분할 수 있어야 순수하고 어진 성품의 사람들을 곁에 둘 수 있습니다. 덧붙여 심술궂은 사람도 천 개, 만 개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의 모든 것이 비루하다 할 수 없습니다.
미움의 뒷담화는 예상하시는 대로 +1의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뒷담화의 주체가 한 것보다 더 많이 미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미움은 심술에 비하면 좀 귀엽달까요, 들으며 가끔 웃을 수도 있고 비틀어줄 수 도 있습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미움의 뒷담화를 할 때 들어주는 일이 그리 힘들진 않습니다. 미움은 관계에서 생기는 앙금 같은 것이어서 충분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사그라지기도 하고 오히려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사는 가운데 어떻게 미움이 없으며 다툼이 없을까요?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들은 보통 미움이 일 때 누군가에 이야기하면서 풀게 됩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나를 소중히 여기면 여길 수록 뒷담화의 주체를 함께 미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야기하는 나는 그 시기에 집중적으로 주체를 미워한다면 그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은 간혹 주체와 마주칠 때마다 별수 없이 미운 기분이 들것입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내가 미워하는 주체는 나와 인연이 있기 마련이고 어떤 식으로든 상황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드러워질 수도 있고, 앙금을 지닌 채 친해질 수도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미운 사람은 100% 밉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모든 관계는 보다 유기적이고 가변적이며 여러 감정이 타래로 엉켜있기 마련입니다. 미운 마음이 있다는 것은 둘 사이에 서사가 있다는 의미이고 그 서사는 유의미한 것도 드문드문 섞여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 뒤, 미워하며 뒷담화를 했던 나는 정작 주체와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그와는 별개로 당시 이야기를 들어줬던 사람은 주체에 대해 계속해서 좋지 않게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움의 뒷담화는 감정에 무게중심이 얹혀 있기 때문에 들어주는 사람은 대개 잘잘못보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마음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런 이유로 미움이 많은 사람의 단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경험과 상관없이 '별로인' 사람이 많아질 것입니다. 뒷담화로 생긴 주체의 좋지 않은 이미지는 함께 할 기회가 생긴다면 충분히 바뀔 여지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계속 '별로인' 사람으로 인식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미움의 뒷담화는 듣는 사람도 좀 생각해 줄 일입니다. 다음의 관계에서는 미움의 뒷담화를 할 때 특히 신중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얘기한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 친정식구에게 남편의 미움을 얘기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에 그렇습니다. 그들의 친밀감이 곧 나의 행복인 관계에서는 아무리 밉더라도, 아무리 뒷담화를 하고 싶어도 참아요, 여러분!(찡긋) 누군가에게 미운 인간 뒷담화를 시작할 때, 끝을 맺을 때 '지금은 그런 기분이야' 혹은 '사실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데' 정도의 여운을 남기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