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계 존속(直系尊屬)

영혼의 소리를 듣는 자

by 홍경

나의 할머니는 경주 최 씨로 청주에서 나고 자라 그곳에서 혼인했다. 몰락한 양반가 장녀로 태어나 부친의 총애를 받으며 천자문과 사자소학을 배웠고 총기(聰氣)가 좋아 어렵지 않게 익혔다. 가지런한 외모에 호리호리한 체형, 말씨와 움직임이 얌전했다. 할아버지는 이웃 마을 사내로 인적이 없는 깊은 산에서 숯을 굽는 사람이었다. 술이 말술이고 풍채가 좋았으며 수염이 굵고 거칠게 무성해 할머니는 처음 할아버지를 보았을 때 무서운 산짐승을 보는 것 같았다. 말수가 적고 숫기는 없어도 책임감이 강한 사내로 눈빛이 항상 다정했다. 할머니와 혼인 후 할아버지는 산에서 내려와 소작농이 되었고 곁에서 할머니는 삯바느질로 거들었다. 할머니 인생 전반에 흐르는 고생담은 고저장단이 없는 게 특징인데 한결같이 고통스럽고 헤어 나올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고단함이었다.

1940년,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어린 남매를 데리고 청주역에서 만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일제강점기의 유일한 희망은 넓고 기름지며 배고픔이 없다는 만주였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만주로 떠났다. 하지만 도착한 곳, 기대와 희망의 땅인 만주의 실상은 달랐다. 겨울의 눈보라와 늦은 봄의 흙바람, 설은 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맨손으로 버려진 땅을 갈고 돌을 골라 밭과 논으로 만들었으며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저수지와 수로를 만들었다. 대개 일본이 강요한 노동에 시달렸고, 그 대가로 배급을 받았다. 배급은 죽지 않을 만큼의 썩어가는 조나 수수였고 물과 기후에 적응하기까지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굶주림과 병으로 비참히 죽었다.

1942년 할머니는 아버지의 동생, 셋째 아이를 낳았고 출산 직후 천연두를 앓았다. 열 살도 안된 어린 고모는 챙겨야 할 남동생 하나에 갓난아이 하나가 더해진 데다 어머니 병시중까지 들어야 했다. 할머니의 얼굴을 그대로 닮은 고모는 체형이나 심성이 할아버지와 같아 몸집은 또래보다 컸고 말수가 적었으나 정이 많은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갓난아이를 업고 젖동냥을 할 때도, 수많은 집안일을 할 때도, 동생을 돌볼 때도 불평이나 절망은 없었다.

할머니는 마마를 앓으면서 접신이 되었다. 혼수상태로 온 세계 안 가본 곳이 없으며, 만나지 않은 존재가 없고, 맛보지 않은 음식이 없었다. 꿈을 꾸듯 병석에 누워있다 깨어난 후 사람이 보지 못하는 존재를 보았고 들을 수 있었다. 가까운 이의 우환을 알려주고, 이웃의 좋은 일을 미리 알고 지켜보았다. 몇 달 후 할머니의 이런 능력을 들은 한 중국인 여자가 찾아와 진수성찬의 상을 차리고 할머니를 상석에 앉혀놓은 뒤 절을 했다. 그 후 치마폭에 무언가 감싸 안는 시늉을 하며 음식을 남겨둔 채 할머니에게 뒷모습을 보이지 않고 뒷걸음질로 돌아갔다. 그일 후 할머니는 이상한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되었다.

해방 후 할아버지와 일가족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는 행방불명이 되었고 결국 할머니는 생전에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다. 훗날 아버지는 혼인 후 첫아이를 낳고 할아버지의 생일을 제사일로 삼아 제사를 지냈다.

아버지 열네 살 때의 일이다. 읍내에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 황 씨 할아버지가 불 켜진 당신의 집 앞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황 씨 할아버지에게 다가서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어, 그려. 어디 댕겨오냐?"

"네. 그런데 할아버지 왜 여기 계세요?"

"어, 아직 시간이 안됐어. 그래서 기다리고 있다."

이상히 여긴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니 할머니가 무척 놀랐다. 황 씨 할아버지는 2년 전 아들네와의 불화로 상심하여 누워있다 죽었으며, 그날이 황 씨 할아버지의 제삿날이었다.

할머니는 그 후로 아버지를 걱정했고, 때마다 굿을 했다. 아궁이 앞에서 굿을 하고, 마당에서 굿을 하고, 변소에 팥시루떡을 놓았다. 벽에 못을 함부로 박지 못했고, 집에 아무 물건이나 들이지 못했다. 조심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심한 열병을 앓았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연애한 후 결혼하고 목공소를 열었다. 목공소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리를 잡아갔고 할머니도 장가를 잘 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행은 다시 이어졌다.

마을 초입, 상엿집이 있었는데 두꺼비 모양의 큰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하얗게 눈이 내려 길이 모두 덮여있을 때 아버지는 약주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종종 상엿집에서 잠들곤 했다. 상엿집의 열쇠는 마을에서 관리하고 있고 어렵지 않게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기이하게 여겼다.

눈이 많이 내리는 밤엔 어김없이 눈 투성이 되어 들어오는 아버지를 어머니는 항상 걱정했다. 하루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눈 내린 밤길이 걱정되어 읍내로 향해 걷고 있는데 아버지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큰 나무를 뱅뱅 맴돌고 있었다. 웃기도 했고, 성을 내기도 했고, 무언가 잡는 시늉도 했으나 발걸음은 계속 큰 나무를 두고 돌고, 또 돌고, 계속해서 맴돌았다. 어머니는 너무 무서운 생각이 들어 차마 말을 걸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와 함께 다시 가보았다. 여전히 나무 곁을 맴도는 아버지를 향해 할머니는 싸리비로 아버지를 내리치며 알 수 없는 주문을 소리 내어 외쳤다.

할머니는 외출하는 아버지에게 꼭 이르는 말이 있었다.

"산 사람만 보거라. 산 사람의 말만 듣거라. 그러지 않으면 너의 처와 자식을 지킬 수 없다."

소처럼 커다랗고 맑은 눈을 가진 아버지는 그저 그렇게 이르는 할머니를 소리 없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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