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머티즘은 아무나 걸리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겐 류머티즘의 텃밭이 있었다.
중학생 때 오른쪽 손등의 손목 부위 한가운데 볼록한 작은 종양이 생긴 것, 이 종양의 이름은 결절종으로 부위에 따라 통증 양상이 다르다고는 하나 나의 경우 심한 통증이 있었다. 초반에는 말랑한 작은 것이 솟았고, 솟았다 가라앉고, 솟았다 가라앉으며 크기는 점점 커졌다. 마침내 솟은 것은 더 이상 가라앉지 않았고, 통증이 시작됐다. 필기가 많았거나, 시험 기간, 혹은 빨래 등 집안일을 거드는 경우 통증이 심해졌다. 손목을 수건으로 묶어 주거나 극심한 통이 있을 때는 할머니의 작고 구멍 난 파스를 작게 잘라 붙인 후 수건을 묶고 다녔다.
’ 너에게는 향기가 나. 파스 향기.‘
이런 글이 적힌 쪽지를 받곤 했던 여고 시절, 할머니의 하얀 가재 손수건으로 손목을 묶고 점점 통증에 익숙해져 갔다.
오른 손목의 결절종은 20대 중반, 사회생활 하면서 경제적 자립을 이룬 후 참을 수 없는 극한 통증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찾아간 정형외과에서 잘라냈다.
태어나서 처음 받은 외과 수술로 국소마취를 했고 집도하는 의사와 곁을 지키는 간호사 2명이 있었다. 딱딱한 수술대에 바로 누워 오른팔을 손등이 보이도록 옆으로 뻗은 자세였는데 수술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 부위 통증이 느껴졌다. 아프다고 하니 약물 주입, 조금 편안해짐, 다시 통증, 약물 주입, 조금 편안해짐, 세 번째 약물 주입하고 나서야 수술이 끝났다. 저녁 무렵 수술이 끝났고, 병원에서 나왔을 때 허기 속에 어둑한 여름 저녁이었다.
오후 내내 움직이지 못하고 반듯하게 누운 수술대에서 맨 정신으로 버틴다는 것은 나와 같은 종류의 인간이 아니면 힘들 것이다. 생각보다 짧은 시간 안에 엉덩이와 등이 배기기 시작했고 불완전한 마취 효과로 인해 반복되는 통증이 점점 두려워졌다. 불리한 이 공간에서 완벽한 이방인이 되기보다 나는 차라리 그들과 한패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동화되기 시작하면서 얼추 몸의 불편함이나 의식의 두려움은 잊을 수 있었다.
“강 선생, 내 의사 경력을 걸고 이렇게 큰 ’ 절‘은 처음이야.”
“어머, 어머, 어머!”
“이렇게 절이 손등에 숨어 퍼질 때는 실제로 엄청 아팠을 거그든.”
(그럼요, 그럼요, 선생님. 진짜 제가 얼마나 고생ㅎ...)
“이게 또 손등엔 신경이 복잡하그든. 이 환잔 나 아니었음 십중팔구 손병신이야.”
(선생님? 저 귀 열려있는데 손병시ㄴ...)
“조선팔도에서 나만큼 이 수술 잘할 사람 없그든. 어떻게 알고 딱 왔냐 말이야. “
(사실 이 병원 유명하지 않아서, 대기하기 싫어서 온 거 거든요. 뒷골목 초라ㅎ...)
”어, 어, 아니, 아니, 여길 잡아. 잘못하면 터지그든.“
(나는 얇은 막에 싸인 맑은 계란 흰자의 제형을 상상.)
”캬! 정말 나는 대단해. 이걸 피하네. “
(점점 간호사들의 말수가 줄어들고 있어.)
”신경이 말이야, 이게 너무나 약하다 그 말이야. 건드리잖아? 그럼 이 다발이 후루룩 풀리그든. 형태 없이 사라지면 제 기능은 할 수 없다 말이야. “
(간호사들에게는 필요 없는 설명일 거야. 듣기 싫을 수도 있어. 하지만 어쩐지 난 너무 고마워. 미묘하게 날 이해시키고 있고 심지어 위로받고 있어.)
“한두해 키운 게 아닐 텐데. 왜 이지경까지 참았을까? 대부분 진짜 아파서 이렇게 참을 수 없그든.”
(차라리 제게 물어보세요. 저는 귀도 입도 모두 정상 작동 중인데 혹시 수술 중 환자와 의사의 대화는 금지되어 있나요? 그런ㄱ...)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서 나온 나와 엄마. 싱글벙글한 성격에 이미 완벽히 노화가 진행된 노의사는 특유의 말투로 다정히 말했다.
“운이 좋았어요.”
(아마도 ’ 나를 만나서 ‘란 말이 생략된 것이겠죠?)
“정말 운이 좋았그든요. 수술은 완벽하게 마무리되었고 다시 내원할 때까지 물 닿지 않게 조심해야 해요. 그 부분에 절은 생길 수 있그든요? 재발한다고. 근데 그건 내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고 조선팔도 그 누가 수술했다 해도 마찬가지일 거라 말이에요. 다시 충분히 절이 생길 수 있어요. 근데 그걸 알아야 되그든요. 맨 처음 차오를 때 가까운 정형외과에 가서 주사기로 내용물을 뽑아내면 돼요. 아주 간단하다니까? 키우지 말라고, 아프니까. 손뿐만 아니고 발등에도 생길 수 있그든요. 그때도 마찬가지로 꼭 병원에서 뽑아내. 키우지 말라고, 내 말은, 아프니까. “
내 곁에 얼굴이 희노란해져서 서 있던 엄마가 나보다 더 열심히 노의사의 설명을 들어주었다. 얼추 엄마 동년배인 듯. 그렇다. 동년배는 그들만의 정서가 있고 그로써 통하고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이다. 엄마는 예고된 수술시간의 세 곱절 이상 길어진 시간만큼 복도에서 안절부절못했다고 한다.
(엄마의 그 마음 졸임으로 손을 되찾았을 거야, 아마 나는.)
아프지 않은 손을 되찾은 이후, 서른 즈음 발가락과 손가락 말단 관절통이 있었다. 곧 괜찮아졌고 이때 류머티즘의 씨앗이 심어졌다 생각된다. 삼십 대 중반에 그 씨앗은 육아에 여념에 없는 내 몸에 결국 싹을 틔웠다. 기댈 곳 없는 상태로 홀로 도맡은 세 살 터울 두 사내아이의 육아는 힘겹고 우울하게 진행됐다. 당시의 모든 게 힘겹고 우울했다는 뜻이 아니다. 힘겹고 우울한 부분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었다. 반복되는 육아의 육체노동으로 무리했을 때 느끼는 통증과는 사뭇 다른 엄청난 통증이 시작됐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잘 자고 일어난 아이들과 함께 극한 통증이 밀려왔다. 손가락을 아이게 대면 뜯어내는 듯 아팠고, 붉게 발적해 있었다. 말단의 작은 관절이 평온해지려면 적어도 점심 식사 즈음은 되어야 했다. 해가 하늘 높이 솟을 즈음부터 스르륵 통증에서 벗어났다. 조조강직과 극한 통증이 지속되는 시간은 시간이 갈수록 길어졌다. 나는 그 시간 속에서 아이들과 웃거나 울었다. 행복했고, 또 행복하지 않았다. 해야 했고,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었고, 해야 했다.
수유 중이어서 적극적인 약물 치료는 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제일 먼저 갔던 곳은 한방병원이었다. 침과 뜸 시술을 받았는데 침보다는 뜸이 한결 편안하고 좋았다. 둘째 아이가 돌이 지나고 수유를 중단한 뒤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통증은 몇 달간 지속되다 멈추었다 다시 지속되길 반복했고, 회차를 거듭할수록 통증의 양상은 깊고 길어졌기 때문이다.
신도시의 큰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사와 물리치료사는 친절했고 나는 불안해졌다. 그래서 그에게 말했다.
“선생님 제 증상이 검색해 보니 류머티즘과 비슷해요.”
“요즘 사람들은 환자가 의사 같아요. 류머티즘은 그렇게 아무나 걸리는 병이 아니에요.”
한심한 듯 그는 나를 쏘아보았다. 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이지?
“그래서 저는 류머티즘 인자 검사를 받고 싶어요. “
“물론 검사는 하실 수 있어요. 혈액검사 의뢰해 드릴까요? 그런데 그건 아셔야 돼요. 류머티즘 인자 검사 결과가 양성이 나왔다고 해서 모두 류머티즘은 아니에요. 류머티즘은 아무나 걸리는 병이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지금 아이 키우신다면서요. 그럼 이렇게 아픈 게 당연하잖아요. 그냥 아플 때마다 저희 병원 오셔서, 저희 병원 물리치료실 있잖아요, 그리고 친절하잖아, 물리치료받고 약 먹으면 돼요. 일단 뭐, 하고 싶은 대로 검사는 해보세요. “
며칠 후 그곳에서 류머티즘 인자 검사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고, 그는 거듭 ‘류머티즘은 아무나 걸리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당신은 류머티즘이 아니다란 말도 아니고 류머티즘은 아무나 걸리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그는 내가 가진 이 통증의 원인이 류머티즘이 아니라는 말도 하지 않았고, 가능성은 있겠으나 그건 아닐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뢰할 수 없는 그가 내린 처방전의 약도, 물리치료도 받고 싶지 않았다. 다른 정형외과에 갔다. 그곳에서는 더 많은 알약을 주었고, 역시 류머티즘이 아니다 혹은 류머티즘이다 그런 확신은 주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병원을 바꿔 다른 정형외과에 갔다.
세 번째 정형외과, 그곳에 갔을 때 나는 이미 손가락과 발가락뿐만 아니라 무릎이나 팔꿈치, 손목, 혹은 고관절까지 통증 부위가 불특정해지고 통증이 지속되는 시간이 오후 세네시를 넘어 심야 시간까지 번져갔다. 밤에 통증이 심해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마침내 수면부족으로 일상을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당시 상황이 위급했고, 위험 신호가 나의 온몸에서 요란하게 엿보이고 있었다. 동트는 새벽 좀비의 몸이 재가되어 쪼개지며 불꽃이 안에서 피어오르듯, 피어오르듯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