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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경 Aug 13. 2023

현대 야사(野史)

(1) 계산되지 않은 책의 매력

도서관에서 책을 탐색하고 선택할 때 혹시 당신만의 특별한 유희가 있는가? 이것에 대해서 누군가와 서로 대화를 해본 적 없지만 일방적으로 들려준 적은 있다. 소수의 사람에게 말해보았고 대개 흥미로워했다. 흥미를 끌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나는 그런 면에서 몹시 만족했었다. 지금 그 흥미로운 이야기로 책의 매력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나는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도서관 홀을 지나 자료실에 들어간다. 안내표지를 따라 청구번호 800번대, 문학 분야에서 멈춘다.

이거다. 책장에서 양장본 소설책 한 권을 뽑아 외양을 살핀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탔구나. 책을 덮고 있는 표지와 책등, 귀발이가 모두 닳았고 빨간색 갈피끈은 색이 바랬으며-빛에 의해 잘 바래지는 빨간색, 책을 조금이라도 위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빨간색이 아닌 다른 색을 입혀줬어야 했다- 후드득 책장을 넘겨보니 콤콤한 묵은 종이 냄새가 난다. 찬찬히 책꼬리나 책배를 훑어본다. 회색 띠가 네 개 그어져 있다. 바로 첫 번째 회색 띠, 그곳을 펼쳐 본다. 예외 없이 그곳은 감미롭거나, 흥미롭거나, 야한 내용을 담고 있는 페이지다. 사실, 대개 야하다.  가벼운 포옹이나 얕은 입맞춤이라도 구현되어 있다. 당신은 알고 있는가? 야함에도 작가의 국적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예를 들면, 우리나라 작가의 경우 뭉그러져있으나 농밀하고, 일본 작가는 입체적이고 상세하며, 프랑스 작가는 진득한 여운과 향을 남기고, 중국의 작가는 우리의 것과 비슷하다.

책머리로 시작해 책배, 책꼬리로 흐르는 이 회색 띠는 개인의 책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간혹 읽다 중단한 채 책갈피를 끼워두었다가 며칠 후 다시 조금 읽다 중단하고 그러기를 몇 차례 거듭하면 가늘게 선이 생기긴 하는데 도서관 책의 회색 띠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 회색 띠는 아주 오랜 시간, 여러 사람의 ‘그 부분 다시 돌아가 읽기’에 의해 생긴 것으로, 도서관에 비치된 책 중에서 발견되는 흔치 않은 궤적이다. 독서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닫힌 행동 양식으로, 한 권의 책이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행위를 유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하나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심지어 책장에 꽂힌 채 등을 보이고 있는 수많은 책들 중 회색 띠를 지닌 녀석을 나는 신통하게도 뽑아낸다! 도서관 책장에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 있는 책등을 바라보며 그들이 단순히 물성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닌 품성이 있다고 느낄 정도다. 더구나 그들의 등에 새겨진 제목과 저자, 출판사만으로도 이미 녀석의 정체 일부는 내게 읽힌다. 그 순간만큼은 그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신묘한 능력을 발휘하곤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읽어온 문학 속의 야함은 그것 자체의 행위로써 독립적이다. 그 행위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등장인물의 카타르시스가 되어주기도 하며, 간혹 저자의 의도에 의해 무게가 1도 실리지 않은 채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켰습니다’ 정도의 느낌을 표현하기도 한다. 목적을 지닌 ‘통속적인 연애 소설‘이 그리는 야함은 말 그대로 야하다. 예전 일간 신문에 실려있던 연재소설은 간간히 ‘짧은’ 야함을 담고 있었고, 과감한 삽화를 얹어 눈길을 끌곤 했다.

문학 속의 야함이 은밀히 특별해지는 것은 읽는 당신의, 우리의 의도이며 그것은 저자의 그것과는 (대체로) 상관없는 일이다. 야함을 이야기할 때 나는 간혹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가리키곤 하는데 야함으로 점철된 그 소설이 당신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순전히 당신의 의도가 이끄는 대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에 의해 재탄생되는 야함의 의미는 책이 계산하지 않았으나 발휘되는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당신은 내가 발견한 그 매력의 증거를 혹시 도서관에서 발견한 적이 있는가?


TV나 영화를 통해 엮어낸 영상물들은 글자로 표현한 수천, 수만 가지의 장면 중 특정되고 선택된 단 한 장면만을 제공한다. 배경과 효과음, 배우의 연기, 그 밖의 모든 것이 특정된 다양성이 배제된 정제다. 독서는 어떠한가? 종이에 적힌 글자를 읽으며 상상하는 그 모든 것은 온전히 당신만의 것이다. 선택할 수 있고, 삭제할 수 있으며, 수정할 수 있고, 다시 읽게 된다면 통째로 다 바꿀 수 있다. 주인공의 외모와 배경의 하늘과 공기, 잡음, 냄새, 그 모든 것이 선택 가능하다. 이야기의 흐름은 동일하지만 모든 연출은 매번 다르다. 그래서 책은 같은 책을 읽을 때마다 감흥이 다르고 다른 세계를 맛본다. 내가 상상으로 구현해 낸 한 소설의 여자 주인공을 다른 소설의 여자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의상을 디테일하게 구현하고, 하늘 아래 작은 꽃과 향기로운 나무를 피워내 본다. 베이스 기타 의 소리를 배경으로 흘려보고 멋진 앙드레 드랭의 그림을 거실에 걸어본다. 그의 식탁에 무라카미 하루키를 펼쳐 놓거나 팔로산토를 지펴놓는다. 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책은 다양성 그 자체이며 독자의 의지로 가꾸어가는 비밀스러운 정원이다.

데뷔 초 모습을 기억하는 배우들이 여러 명 있다. 당시 그들의 경솔한 말씨나 염려되는 장면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연기로 시간을 보내왔고 아직도 현역으로 연기하고 있다. 지금의 그들은 기품 있고 좀처럼 쉽게 얻을 수 없는 깊은 통찰력을 지니고 있음을 짧은 인터뷰만 들어봐도 느낄 수 있다. 쉼 없는 연기를 통해 자신과 상대 연기자가 연기하는 인물을 관찰, 탐색하는 과정에서 습득한 그것, 집중에 의한 원숙함이다. 현실을 사는 이들은 온통 ‘나’로 시작해서 ‘나’뿐인 삶을 산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상대의 심리를 알지 못한 채, 표류하며 여러 관계를 맺는다. 깨어있는 동안 무수히 많은 관계를 흘려보내며 좀처럼 집중하기 어렵다. 제한된 관계의 환경을 어디서 경험할 수 있는가?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집어들 수 있는 책을 펼친다면 가능하다. 좁은 테두리 안에 저자가 펼쳐놓은 서사 안에 우리는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 저자가 부록처럼 해답지를 달아 놓는다 해도 우린 그것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으며 저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읽히는 대로 읽고 마음껏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갈등을 지켜보다 화가 나기도, 억울하기도, 눈물이 나기도, 안심하기도 한다. 미치광이처럼 키득거리는가 하면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허공을 향해 버둥거리는 시선을 내던진다. 그렇게 철저히 나만의 문학 한 권의 한살이를 마치면 뭔가 두둑한 배짱이 생긴다.

우리는 한 권의 책을 읽으며 꽉 찬 세상을 지어내고, 거듭 태어나며 또한 소멸한다.  이런 식의 독서라면 계산되지 않는 책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전혀 계산되지 않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겨본 적 있는가? 나는 인간 보다 책에게서, 책에게는 늘 빠져들었다. 매우, 퍽, 대단히, 무엇보다, 무척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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