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이직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붙잡지 않고 쿨하게 보내주며 응원까지 해줬다.
퇴사일까지 보름쯤 남았을 때, 회사 후배가 제안을 하나 했다. “신문사에 다니는 지인이 해외여행 칼럼 써주실 분을 찾고 있는데, 해보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여행을 떠나기 위해 퇴사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인에게 나를 추천했다.
마케터로 근무하면서 언론 기사(보도자료)부터 광고 카피, CM송, 방송 시나리오 등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를 경험했지만, 칼럼은 처음이기에 자신이 없었다.
“칼럼은 처음인데, 괜찮으려나?” 내심 안된다고 말해 주길 바랐다.
“네. 선배님의 작업물 몇 개를 공유했는데, 괜찮다고 했어요.” 미리 내 작업물을 보내는 치밀함까지 보인 후배에게 차마 하지 않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결국, 여행 루트와 칼럼 주제 몇 개를 정리해서 담당자와 미팅을 가졌다.
“칼럼을 써본 적이 없는데, 제가 써도 괜찮을까요?”
내 고민을 다 듣고 난 후 담당자는 “작성해 주신 원고는 내부 검토 후 릴리즈 되기 때문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작가님의 문체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웬만하면 수정은 안 할 예정입니다.”라고 은근히 압박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팁을 알려줬다.
“이전 칼럼니스트의 글을 보시고 따라 써보시는 건 어떠세요?”
필사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 방법은 따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미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이전 칼럼니스트의 글을 하나씩 읽어보며 필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용을 워드에 옮겨 적었으나, 곧바로 직접 손으로 쓰는 방식을 선택했다. 아날로그 방식이 더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았다. 여행지의 역사나 건축물의 양식 등 여행 글에만 쓰이는 생소한 표현과 단어의 뜻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발코니와 테라스, 베란다의 차이를 처음 알게 된 것도 필사를 통해서였다.
에디터로 일하는 지금도 필사를 즐겨한다. 칼럼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처럼, 에디터의 역할에 맞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 다른 에디터가 작성한 글들을 베껴 쓴다. 나만의 노하우라면, 같은 글을 여러 번 반복해서 쓰는 것 정도. 특히, 잘 모르는 분야의 글을 쓰려고 하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럴 때 필사를 반복하다 보면 처음에는 단어가, 다음에는 문장이, 나중에는 글의 구성이 눈에 익어 글쓰기가 수월해진다.
필사를 하면 읽기만 하는 것보다 글에 더 몰입하게 되고, 새로운 단어나 묘사를 체득해 글의 표현이 더 풍성해진다. 처음 글을 시작할 때 어렵고 막막하다면, 써보고 싶은 글(닮고 싶은 글)을 찾아 필사부터 시작해보길 추천한다.
Q. 필사하면서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나요?
다음 매거진의 글은 공심 작가님의 <글쓰기는 과거를 회복시킨다>입니다. 과거에 쓴 문장과 마주해보신 적이 있나요? 과거의 문장을 하나씩 바꿔가는 공심 작가님의 노하우가 궁금하다면,《매일 쓰다 보니 작가》 글을 추천드립니다. 6명의 작가들이 전하는 글쓰기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은 매거진 구독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