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스
정말 미치도록 ‘살고 싶어서’ 분양받았던 공간인데
나는 아직 한 번도 그 문을 직접 열어본 적이 없다.
그 집의 햇빛은 다른 사람의 어깨 위에 내려앉고
바닥의 온기는 세입자의 발끝에서 겨울을 버틴다.
나와 그 집과의 연결은
통장에 찍히는 몇 개의 숫자로만 확인된다.
그 숫자가 흐르고 나면
나는 다시 그 집으로부터 멀어진다.
내 집이지만, 내 집이 아닌 공간.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가 아니고
그곳에서 고요한 오후를 맞이하는 그림자도
나와는 상관없는 누군가일 뿐이다.
나는 멀리서만 그 집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스로를 '취향 없는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싫은지 선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넓은 테라스가 있는 아파트 탑층이고
내가 소유한 또 다른 집에도 언제나 테라스가 자리하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는 늘 그런 곳을 고르고 있었다.
바람이 쉽게 드나드는 자리
도시를 조금 높이서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감
벽과 천장 사이에 조용히 스며드는 개방감이 있는 곳
그런 공간을 나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선택해 왔다.
아마 그 오피스텔을 분양받던 날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살고 싶다’는 갈망을
테라스 위에 조용히 내려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삶의 숨이 조금 더 잘 쉬어지는 자리
밀폐되지 않은 하루
하늘과 가까워지는 느낌
그 모든 것이 오랫동안 나를 끌어당긴
내가 모르는 사이 자라나 있던 은밀한 취향이었다.
나는 취향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너무 오래, 너무 자연스럽게
나만의 방향을 따라 살아왔을 뿐이다.
내 삶은 조용히, 꾸준히, 언제나 테라스를 향하고 있었다.
<나의 기록>
문을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는 내 집.
내가 살아본 적은 없다.
테라스도, 공기도, 햇빛도 전부 임차인의 몫이다.
나는 통장에 찍힌 숫자로 그 집을 확인한다.
내 집이지만, 내 집 같지 않은 집.
그저 매달 150만원을 보내오는 낯선 곳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