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사이)겨울, 스밈

by 류서윤

말랑말랑하던 비누가 어느 날부터 유리처럼 단단해졌다.
욕실의 온기가 줄어든 탓일까. 손끝보다 먼저 비누가 계절을 알아차린다.


좋아하는 재료를 듬뿍 넣은 샌드위치와 우유를 맛있게 먹고는
멋쩍은 얼굴로 뜨끈한 국물을 찾는 딸아이를 보니,
아침의 빈속에 찬 공기가 스며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얼죽아’라던 남편의 커피 잔에서도 김이 오른다.
온기와 냉기가 맞닿는 경계에서, 겨울의 냉기가 조용히 다가왔다.


식탁 위 사과의 무게도 변했다.
단내와 수분이 사라진 자리에, 겨울의 윤기가 얇게 내려앉는다.

반짝이는 껍질은 어느새 가을의 마지막 빛을 품고 있다.


길가의 노란 은행잎이 바닥에 눕는 순간, 겨울은 그 위로 살짝 발을 들인다.
하늘은 더 얇고 투명하며, 공기 속엔 미세한 찬기가 퍼지기 시작한다.


따뜻했던 계절의 숨결이 서늘한 바람에 실려 떠나가는 이때,
가을과 겨울 사이 그 좁은 틈새에 고요히 내가, 스며 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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