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온 편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나는 있을지 없을지 모를 미래의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를 한 통 썼다.
당시 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고등학생이던 그 시절, 나는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내신 성적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고 친구들과 비교되는 내 자신이 초라하다 느껴 자존심이 한껏 구겨진 상태였다. 하지만 이런 고충을 들어줄 어른이 없어서 더욱 마음이 길을 잃고 방황했었다. 선생님들은 학생 한 명 한 명의 마음상태를 돌보기에 너무 바빴고 일부 성적이 좋은 아이들에게만 겨우 관심이 쏟아졌다.
그 무렵 나는 부모님과 갈등을 자주 빚었다. 나는 나대로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있어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퉁명스러운 상태였고, 부모님은 자신들의 삶도 벅찼기에 치기어린 마음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말투 하나에 꼬투리를 잡았고 작은 행동 하나가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이 어긋나버렸던 탓에 이상적인 부모상에 대한 희망사항이 있었다. 좀더 내가 이해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엄마가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한편으로 내 자신도 나의 이상적인 부모상에 부합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도 했다. 내 부모님이 완벽하지 못했던것처럼 나도 마찬가지로 실수투성이 부모가 될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잘해주고 싶은 마음과 달리 그렇지 못한 현실에 좌절하며 아이를 나무라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에 문득 미래의 아이에게 미리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물론 미래에 이 내용을 봐 줄 아이가 생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내 희망사항을 아래와 같이 기록했었다.
안녕, 내 아이야.
어떻게 불러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너는 고등학생인 엄마를 만난 거란다.
사실 내가 결혼을 하게 될지 모르겠어. 결혼이라는 거 자신이 없거든.
왜냐면 엄마는 상처받는 게 되게 두려운 사람이거든. 그래도 꿈이 있어.
웨딩드레스 입고 남들처럼 사진찍고 식도 올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가정을 꾸리는 것.
그 과정이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음, 국제 결혼도 괜찮을것 같아.
미래의 넌 어떻게 지내고 있었니? 너희가 사는 시대는 어떠니?
지금은 사람이 직접 하는 일이 더 많거든. 근데 점점 기계가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겠지. 그래서 걱정이야. 너희 외할머니가 그렇듯 나도 기계치가 될 거 같거든.
만약 미래에 우주 여행을 갈 수 있다면 난 너와 함께 꼭 가고 싶다.
그러려면 큰 수술 같은 거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건강 잘 챙겨야겠어.
사실 나는 지금껏 연애도 못 해 봤고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엄마가 못 될 것 같아.
한 성깔 하는데 다가 여러모로 많이 부족할 거야. 배려심이 부족할 때가 많거든.
아마 네가 사춘기를 보낼 무렵 서로 상처주고 그러지 않을까?
그래서 미리 사과할게. 내가 늙어서는 사과하는 게 더 익숙하지 않을 것 같아.
미래의 내가, 너의 엄마가 많이 부족하더라도 용서해줘.
나름대로 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고집이 세서 주장을 굽히지 않을지 몰라.
너의 연애 문제나 학업 고민 이런 것들에 별 관심이 없으면 어떡하지?
나는 너의 모든 것에 관심을 두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은데 말이지.
미래의 내가 바보같아서 너를 잘 못 챙길까봐 과거의 나라도 이렇게 몇 자 적고 있어.
힘들고 지친 상황에 놓였을지도 모를 너에게 용기를 주고 싶거든.
나도 네 나이 때는 허영심도 많고 꿈도 많고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어.
내가 그랬던것처럼 너도 많은 걱정과 고민을 안고 있을거 같아.
하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에 용기를 냈으면 좋겠어.
그리고 지나갈 일에 너무 맘 쓰지 않았으면 해. 걱정은 한 번 생기면 걷잡을수 없이 늘어나더라고.
불행히도 그 전에 혹시 지구의 종말이 오거나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많이 부족하지만 엄마는 네가 어떤 사람이든 사랑할 것이고 네가 어떤 인생을 살든 응원할 거야.
늘 꿈을 갖고 희망을 잃지 않고 도전했으면 좋겠다.
그럼 안녕, 사랑하는 내 아이야.
미래에 네가 행복할 일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
지금도 나와 부모님 사이엔 일정한 간극의 존재한다.
가족 관계일지라도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는 서로의 별난 구석이 있다. 나와 완벽히 일치하는 퍼즐짝이 아니기 때문에 맞지 않는 부분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많다. 하지만 합일의 경지에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그저 '그럴 수 있지'라며 스스로를 달랜다. 모든 말과 행동이 온전히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불편한 부분을 눈 감아주며 때때로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며 살아간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달래주는 건 결국 오랜 시간 일구어 온 관계의 힘이니까.
과연 위의 전달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예상보다 미래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이길 바란다.
적어도 나는 장래에 꿈과 희망을 응원해줄 수 있는 그리고 친구처럼 의지할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추천하고 싶은 읽을거리
http://m.enewstoday.kr/news/newsview.php?ncode=179571766117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