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나리는 풍경

In the moment #4 창작시

by 흔한여신
눈이 담겨 있는 겨울 풍경, photo by. Rojoy


빛이 저물고 어둠이 깔린 거리에

조용히 흰 눈이 쌓인다.

눈이 쌓이며 세상의 소리와 빛이 지워진다.


닿지 못할 높이에서 내려와

지상의 만물 위에 내려 앉아

고요한 밤의 정취를 더 해주는 겨울의 손님.


시끌벅적한 소리로

귓전을 때리는 빗물과는 달리

소리 없이 찾아와 흰 빛으로 세상을 물들이곤

스르륵 녹아 없어지는 겨울의 신기루.


어떤 이에겐 희망의 씨앗이요,

다른 이에겐 불행의 그림자요.

어떤 이에겐 동심의 발현일테고,

다른 이에겐 소리없는 악마일테다.

또 어떤 이는 일감이 쌓였다 아우성일테지.


누군가는 대지를 온통 뒤덮은 흰눈을 밟으며

뽀득뽀득 소리에 웃음꽃을 피울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눈 위에 불안한 걸음을 내디디며

넘어지지 않을까하는 시름에 잠길 것이다.


누군가는 아무도 깨지 않은 새벽

홀로 삽을 들고 그와 이웃이 걸을 길을 만들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제 발자국을 총총히 새기며 지나갈 것이다.


누군가는 신발에 눈이 들러붙는 게 싫어

사람들이 찍어 놓은 발자국을 따라 걸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창 밖으로 눈 덮인 세상을 바라보며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미소를 지을테다.


눈 내리기 전 도시의 풍경은

온갖 색깔과 온갖 소리로 뒤덮여 있었는데

눈 내린 도시의 풍경은 마치 동화 속 세상같다.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잠깐이나마 느리게 돌아가는 세상이 조금은 반갑다.


눈싸움이 재밌어

손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도 모를 만큼

마냥 신나서 웃음을 터트리던 유년시절과 달리

지금은 너무 걱정이 많은 어른이 되버렸지만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바라보며

마음만은 잠시 과거의 순수했던 때로 돌아갔다.

훌쩍 자란 몸 안에 봉인되어 있던,

아무런 걱정 없는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눈이 내리던 집 앞 골목, photo by. Dad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