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겨울이 또 다시 오겠지
내가 당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다 뒤집어 엎고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하란대로 제사를 지냈다. 두려움과 분노로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고 그 장소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빠져 나오는 길에 순진했던 내 자신에 대한 수치심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불신으로 가득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사람을 믿은 데에 대한 상처 그리고 난해했던 그 시간들. 이 사건을 겪은 시점은 찬바람이 막 불기 시작했던 초겨울이었고 생일이 좀 지난 때였다. 아무래도 직장에서 슬럼프를 겪느라 마음이 고단했는데 내면의 소용돌이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쳤다. 짧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우울증의 수렁에서 빠져나온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는 보다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관련한 글을 쓰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꽤 상당기간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운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런 내 심리상태를 알 길이 없는 주변사람들은 극도로 말을 아끼게 된 내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애써 밝은 척 웃으려고 노력했지만 속은 갈가리 찢어진 상태였다. 주체할 수 없는 회의감과 조절할 수 없는 우울감에 꼼짝없이 짓눌려 있었던 고통스러운 12월이었다. 그 시기 다행히 나는 다른 글들을 많이 썼다. 여러 편의 글을 쓰며 사실 나는 내 마음을 치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피해구제를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게 아니다.
당시 나는 침착하게 범죄 피해자로서의 대응을 준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얻은 소득은 없다. 그저 잠시 내가 구제방법을 알아보느라 분주했을 뿐. 자신들의 플랫폼에 해당 수업을 판매했던 프립 측은 예상보다 성실하게 내 의견에 답변했으나 그 이상으로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지 않았다.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을 약속했으나 말뿐이었고 약정한 수업이 진행된 만큼 환불도 불가하다고 알려왔다. 이렇게 흘러갈 거란 걸 전혀 몰랐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냉정하게 얘기해서 나만 힘들고 아플 거란걸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래도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거친 분노가 되어 나를 움직였다.
공권력을 휘둘러 봤기에 나는 그 힘을 잘 알고 있었다. 법 조문과 판례문 읽는 것 또한 일반인들에 비해 좀 더 익숙했기 때문에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도 했다. 알고 있었다. 바위에 계란을 부딪히는 일이라는 걸. 하지만 그래도 그를 벌하고 싶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경각심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런 내가 원했던 건 그가 경찰조사를 받게 하는 일이었다. 일반인들은 조사 받는 일에 익숙지 않아 그 자체로 위압감이 상당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조사 결과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아 수사가 내사종결로 처리될지언정 나는 그 귀찮은 과정을 견뎌볼 생각이었다.
수사관은 젠틀했지만 법은 냉정했다.
최근 뉴스에 보도되어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냈던 이른바 '정인이 사건'. 그 사건 담당 경찰관은 수사에 미온적인 입장이었다고 전해진다. 그에 비하면 나는 꽤 친절한 수사관을 만났다. 그는 전화로 수사절차에 대해 차분히 안내했다. 또한 어떤 사실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묻고 구성요건 성립 여부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고소를 진행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사건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법적 공방까지 가기 위해선 적어도 범죄의 구성요건이 성립해야 한다. 내가 고소하려던 그의 죄목은 '사기'였다.
형법 제347조(사기)
①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전항의 방법으로 제삼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일반 경제사범도 사기죄로 인해 높은 형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또 웬만해서는 사기죄가 성립하기도 힘들고 성립한다고 해도 처벌과정까지 가는데 오랜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나의 의지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등의 문제해결의 의지가 중요하다.
나의 경우 사람을 기망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자료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사상을 차린답시고 재물을 편취한 사실이 있지만 그것이 '기망행위'에 의한 것인지 '자발적 동의'에 의한 것인지 여부가 명확한 물증이 없이는 불분명했다. 이렇게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는 경우 피의자에 대한 조사도 없이 사건은 종결처리 된다.
종교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 하나이기 때문에 포교활동에는 폭넓은 자유가 인정된다.
또한 그 동안 종교집단의 권유에 의해서 발생한 금전적 피해행위는 법이 보호하는 테두리 밖에 있다는 판결이 있어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17고단2343 판례로 종교활동과정 중에 기부를 받은 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건이다. 사건의 피고인들은 대순진리회 신도들로 평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피해자로부터 기도비, 헌금, 팥정성비용, 기부금 등의 명목으로 3천여만원을 편취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다.
하지만 법원은 피고인들이 장기간 꾸준히 대순진리회에서 종교활동을 해온 사실이 인정되고, 일부 영수증으로써 용도가 소명될 뿐 아니라 피해자로부터 받은 기부금을 종교시설공사대금으로 사용한 정황이 있는 점을 감안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즉 엉뚱한데 돈을 쓴 게 아니라 종교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자금으로 기부금을 알맞게 사용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법원 역시 '종교의 자유'라는 대원칙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종교활동의 불법성 여부를 최소한으로 판단한다. 이것이 바로 일반적으로 사기당했다고 여길 법 한 사건에 무죄선고가 내려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고소절차를 진행하려 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마음이 점점 더 약해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사과정에서 피해자로서 나의 피해 사실을 덤덤하게 털어놓을 자신이 없었다. 오히려 이야기를 꺼내는 일에 수치심을 느끼고 이 사건의 원흉이 된 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어쩔 줄 몰라할 게 눈에 선했다. 물론 그 모든 걸 감수하고서라도 가만두지 않으리라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나는 이렇게 고민에 겨울 시간에 그는 행복하게 지낼 것을 생각하니 불행한 감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솟구쳤다.
더 악바리처럼 어떻게든 수사를 진행하라고 매달려 볼까 아니면 최후의 수단으로 이런 내 사정을 설명하고 피의자 소환해 조사 한 번만 해달라고 애원해 볼까하는 고민 끝에 더 이상의 복수가 무의미하다고 결론지었다. 그가 불행한지 여부에 대해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행복해지는 게 우선이었다.그렇게 한 동안 성난 마음을 달래고 낮아진 자존감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최소한으로 유지하느라 개별 연락을 다 끊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치유의 시간을 가졌다.
할 말을 다 토해내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새해가 되어 나는 그저 몸도 마음도 무탈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었다. 성공이나 후광이 비치는 삶은 기대하지도 않을테니 그저 내면의 평안이 깨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깨달았다. 완전히 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애써 사람에게 마음쓰고 나눌 수 없으면 내 것을 내놓아서라도 남에게 건넸던 건 미련한 짓이었다. 순진했던 나의 과거는 아픈 상처과 함께 기억의 서랍 속 깊은 곳에 담아둘 생각이다.
어느 덧 서른이 됐다. 순수했지만 한편으로 순진했던 나의 이십대의 크고 작은 상처들을 되짚어보며 나는 더 이상 남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유롭게 내 이상을 찾아 떠나리라, 마음 먹었다. 물론 당장 모든 걸 바꾸기엔 쉽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주위에서의 평가가 나를 구속하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처럼 주어진 삶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면서도 때때로 지나는 폭풍우를 현명하게 피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게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 되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