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그 숨길 수 없는 찬란함 (1/2)

2020년 아픈 기억을 서랍에 넣어두며

by 흔한여신
작년 하반기 동안 나는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마음 맞는 사람이 없어 답답한 마음을 터 놓지 못해 외로웠다. 그런 괴로움을 달래려고 많은 시도들을 했다. 상반기에 이어 안 해 봤지만 하고 싶어했던 것들을 배웠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았기에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직장에서 성취감을 얻고 삶의 의욕을 되찾아야 하건만 사람도 일도 변함없었기에 내 의지는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결국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답답함에 사주 상담을 받았다. 미래나 운세를 점 치는 걸 좋아하는 나는 가끔 타로점이나 사주 상담을 보곤 한다. 사람에겐 각자 정해진 운명이 있고, 운명이 그 삶을 100% 좌우하진 않지만 많은 부분에 관여한다는 믿음. 그렇기 때문에 운명의 시험에 들더라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사전에 내 앞에 놓인 시련들을 내가 원하는 바로 바꾸어나가고자 노력하는 삶. 이것이 내가 가진 토테미즘, 샤머니즘적인 생각이다. 다행히 한 시간 넘게 이어진 내 정해진 운명에 대한 해설은 내 지난한 고민거리를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출처 픽사베이


사주를 보는 이는 날더러 불의 기운을 타고난 태양이라고 했다.

하지만 본디 기운이 약해 보충이 필요하다고 했다. 처음엔 이게 정말 끼워맞추기식이 아닌 나에 대한 설명이 맞나하고 의뭉스럽기도 했지만 여러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맞는 설명이라 여겨졌다. 빛이 나는 물체는 그 존재를 숨기기가 어려운 법. 다른 말로 풀자면 유혹을 하고 싶은 매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접근하는 대상이 착한 존재이든 악한 존재이든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는 의미라고 나는 해석한다.

얼굴에 한껏 미소를 띄우고 있어도 어두운 빛이 깃든 표정이 있는가 하면 크게 웃고 있지 않아도 밝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쉽게도 사람들이 내 고충을 먼저 헤아리는 경우가 적다. 밝은 빛이 강한 덕분에 대부분 괜찮아보여 그렇다. 사주쟁이도 그리 풀었다. 겉보기에 이미지가 너무 완벽해보이는 탓에 도와주는 이보단 기대는 이가 많아 화가 나는 운명을 타고 났다고. 그런데 사실 지치고 힘들어도 정작 그 내색하기가 힘든 때가 많다.


사람을 믿었던 건 순진한 것이었다.


'순수'라는 단어와 '순진'이라는 단어는 거의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 다만 '순진'이라는 단어엔 티 없이 맑은 상태라는 의미 외에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하다'는 의미가 있다. 즉 단어 뜻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 흔히 어린아이가 순수하다고 이야기하는데 마음 먹기에 따라 어른이 되어서도 순수함을 간직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순수함을 잃지 않은 참된 어른의 생각을 닮고 싶어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순진하다면 남의 꾀에 당해 저도 모르는 새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나 역시 순진한 피해자였다. 사건의 발단은 우쿨렐레를 배우러 간 것이었다. '프립'이라는 사이트를 이용했다. 1:1 레슨권을 구입했었고 그에 따라 호스트를 만나 수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여느 호스트와 다르게 그 호스트는 그 짧은 수업시간 동안 사적인 친목을 다지려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이를 하나의 사제지간이라 여겨 선을 긋지 않았다. 프립을 통해 약정한 3회의 수업이 끝났지만 호스트의 일방적인 예약취소 때문에 그는 미안하다며 수업을 한 회 더 추가해 진행하겠다고 했다. 사실 귀찮기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더 배우는 게 낫지 싶어 이에 응했다.


하지만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는 수업 전에 시간을 낼 수 있느냐 물었다. 자신이 아는 지인이 있는데 나에게 소개해주고 싶다고 했다. 점심 전에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수업하자고 했다. 전부터 수업은 어영부영하면서 자꾸 말을 걸며 친해지고 싶어하는 게 사실 이해는 잘 안됐지만, 어짜피 마지막이고 무료로 진행되는 수업이니 좀 마음을 열어볼까 싶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뒤늦은 후회만 남았다.


"수도하는 사람이에요."

이 말에서 알아차렸어야 했다. 하지만 이게 무슨 말인지 나는 그 때 알지 못했다. 그 동안 숱하게 사이비 종교의 이상한 전도방식이나 이해하기 힘든 종교의식들에 대해 들어왔다. 하지만 그에 대한 설명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적당히 일상 얘기를 버무려 말하니 언뜻 듣기에 다 맞는 말이었다. 그 영악한 호스트는 저와 내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으니 나에게도 도움이 될 법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며 자신의 지인을 내게 소개했다. 첫 인상이 나쁘진 않았다. 그래야하겠지, 겁 먹고 도망 가지 않도록. 눈코입이 제대로 달려 있으며 무엇보다도 온화한 인상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모르는 새 전도를 당했다.

그리고 그들의 부추김에 이끌려 '공부방', 즉 교인들의 집합장소에 가게 됐다. 교회라는 푯말조차 없는 일반 가정집과 같은 장소였다. 이러니 신천지 같은 이단 교회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종교활동을 할 수 있었으리라. 그들의 정체는 '대순진리교인'이었다. 호스트가 데려온 이는 그 종교의 노련한 전도사였다. 사이비 종교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엔 모든 게 다 이상했단 걸 알아차렸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나는 그들의 본거지에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영리하게 내 심리적 약점을 파고들었다. 나는 직장에서의 입지 뿐만 아니라 집에서 독립해서 사는 동생의 안부와 가정의 평안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생에 대한 사무치는 미안함은 그들이 나를 쥐고 흔들 수 있었던 무기였다.


순진하게도 그들이 가르쳐준대로 행동하면 왠지 내 동생과 우리 집안이 화목해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순진하게 그 말을 믿었다는 걸 실토할 용기가 없어 끝내 경찰 조사를 포기했지만 가족문제는 내 마음 속 깊이 자리한 멍에였다. 물론 지금도 무탈하게 잘 살고 있지만, 동생과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는 게 항상 우리 가족에겐 가슴 아픈 일이었다. 언젠가는 온 가족이 함께 웃으면서 지낼 수 있기를 바라왔다. 그런 나는 어리석게도 그들의 새치 혀에 놀아나게 됐다. 그들은 자신들이 일러준 방법을 실천하면 다 잘 될거라고 오히려 더 잘 될거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지만 이미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던 탓에 자못 진지하게 들렸다.



출처: https://wonderfulmind.co.kr/questions-coping-gri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