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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Jan 09. 2021

글과 함께 마음도 자랐다  

Prologue 2: 글과 함께 성장한 나의 인생 기록

나의 글짓기 연대기 1. 일기쓰기


  어린 시절엔 일기를 많이 썼다. 물론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는 내용이 변변찮다. 의무감에 썼던 글인데다가 주제도 정해져 있지 않고 목적 없이 써서 내용이 중구난방이다. 중학교 때 썼던 일기는 이해할 수 없는 허세가 가득 담겨있다. 한창 사춘기를 맞아 내면의 자아가 이리저리 튀던 때였다. 얼마나 엉뚱하고 이상했느냐면 스스로 고안해 낸 줄임말을 많이 썼는데, '위대한 젤리님'을 줄여서 '위젤'이라고 쓰곤 내 별명이라고 했다. 그 외에도 연애하고 싶다는 귀여운 고민부터 쓸데없는 상상력을 발휘한 내용들이 들어 있다.


  한편 고등학교 시절에 썼던 일기엔 우울감이 가득하다. 그 때의 나는 무기력한 증세에 시달리고 있었고 학업 스트레스가 견딜 수 있는 한도를 초과해 분노가 가득했던 때였다. 거친 감정에 휩쓸려 쓴 글엔 온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썼지만 꼴 보기가 싫은 이유다. 다만 중학교 때에 비해서 글이 훨씬 차분해져 있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선 글에 전문적 지식이 담기기 시작했다. 남에게 보여 평가를 받아야 하다보니 독자를 고려한 글쓰기 연습을 하게 됐고 전체적인 흐름에 맞게 내용을 편집하고 문장을 세심하게 다듬었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뉘앙스를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그에 알맞은 어조와 단어를 선택하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논리적으로 내 의견을 피력하는 연습과 글에 기승전결을 담는 연습을 본격적으로 했던 시기였다.



나의 글짓기 연대기 2. 책과 가까웠던 삶


  어릴 때부터 독서량이 많았던 덕분에 독서와 글짓기 관련한 상을 자주 받았다. 다행히도 책과 거리두기 하지 않은 삶이라 지금 읽는 양이 현저히 줄어들은데 반해 쓸 수 있는 표현은 다양한 편이다. 초등학생 시절엔 한 달에 거의 10권 내외로 읽었던 것 같다. 2년 연속 교내 다독왕으로 선정될 정도였다. 덕분에 독후감을 엄청나게 써댔다. 당시 부모님은 학업에 도움이 될까하여 책을 많이 사주기도 했고 나도 책이 재밌어서 많이 읽었다.


  도서관도 자주 들렀는데 책에 대한 욕심이 매우 강해서 한 번에 정해져 있는 대여권수가 있었는데도 더 빌리고 싶다고 징징댔다. 결국 안 된다는 제지에 가로막히자 빌린 책을 삼사일만에 다 읽고 도서관 개관 시간에 맞춰 도착한 다음에 책을 반납하고 바로 다음 책을 빌렸다. 그 날이 생생히 기억나는 이유는 보고 싶은 책을 다 못빌려서 안달이 난 내가 아빠를 닦달해서 도서관까지 빨리 차를 태워달라고 떼를 썼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착이 참 대단했는데 한편으로 당시 부모님이 그런 내 모습에 뿌듯해 하셨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장한 이후에도 나는 글을 읽는 걸 좋아했다. 특히 판타지 소설 중에 해리포터 시리즈를 좋아했는데 새벽까지 책 읽느라 잠도 안잤다. 어느 하나에 꽂히면 다 끝날 때까지 집중하는 버릇이 있어 그렇다. 물론 여러 번 읽더라도 읽었던 내용을 세세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알게 모르게 줄거리나 전개방식, 문체 등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읽다보니 자연스레 글짓기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다.



  책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만큼 덩달아 글짓기 솜씨도 나쁘지 않았다. 겨우 교내에서 입상한 기록이지만 글짓기 대회에선 거의 매번 상을 휩쓸었다. 받았던 상들의 절반 이상은 글쓰기와 관련한 상이다. 이 기록은 중학교 때까지 이어진다. 교내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자 선생님들의 추천을 받아 몇 번 교외 대회에도 나갔었다. 아쉽게도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 고등학교 때도 틈틈이 글을 썼고 가끔 용돈 벌이가 됐다. 우수 후기로 선정되어 상품권을 받는다든가 인터넷 강의 수강권을 챙기기도 했다.


  대학 때는 글을 써 과제를 제출했고 시험을 봤다. 습득한 지식 내용을 확인하는 절차였지만 종종 잘 쓴 사례로 꼽혔다. 당시에는 나를 주제로 하거나 일상이 소재가 된 게 아니라 소논문이나 발제문 쓸 일이 많았다. 간간이 독후감 공모전 같은 데 글을 제출하곤 했지만 전과 다르게 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훨씬 세련된 방식으로 글을 써내려가는 사람들을 보며 글을 쓰겠다는 의욕이 점차 식었다. 결국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래서 과제를 위한 글쓰기 또는 논술 과외를 할 때 학생이 쓴 글을 첨삭해주는 정도에 그쳤다.



자기소개서라는 형식에 나를 끼워맞추는 게 제일 어려웠다.


  자소서. 또 다른 표현으로는 자소설. 글이 가장 어렵게 느껴진 때가 바로 자기소개서를 쓸 때였다. 취업 문턱 중에 내게 가장 높다고 느껴진 문턱이었다. 그 동안 글쓰기를 오래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장하는 글쓰기가 무척 어려웠다. 애초에 나란 사람을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을지도 몰랐고 어떤 점을 부각하는 게 현명할지 스스로 알지 못했다. 지금처럼 숨 쉬듯이 쓸 말이 생각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할 지도 몰라 난감해 했다.


  온종일 자소서를 쓰겠다고 노트북 앞에 앉아 하염없이 멍을 때렸다. 쓰고 싶어서 쓴 글이 아니라 그런지 의욕도 안났다. 글의 맛이 느껴지도록 하기 보단 정갈하게 잘 다듬어야 하고 있는 사실에 하이라이트를 더해야 했다. 참고할 만한 예시도 없어서 한참을 헤맸던것 같다. 그 때 내 글을 읽었던 남자친구는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며 혹평을 했다. 울컥했지만 이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담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그릇에 넘치게 담은 탓에 무슨 요리가 완성된 건지 알 수 없는 그런 글이었다.


  가까스로 아는 지인을 통해 참고할 만한 자료를 얻었는데 남들은 자기 인생의 어떤 지점이 빛나는 부분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자기 PR의 시대라지만 나는 내가 이 정도로 잘났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글쓰기가 참 낯간지러웠다. 그렇다고 수필 쓰듯이 진솔하게 쓸 수도 없었다. 틀에 박힌 질문에 맞춰 쓰는 정제된 내 소개글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용이 무르익었다. 노련하게 가위질을 해 필요없는 부분을 도려낼 줄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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