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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Jan 09. 2021

힘들 때 약이 되는 글

Prologue 3: 글에 담는 마음의 지도

한 동안 글쓰기에 흥미를 잃었다.


  내면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도 하고 세상엔 다양한 실력자들이 무궁무진했다. 남의 글과 비교해보니 내 글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먹고 사는 일이 더 시급했던 차라 조용히 앉아 글을 쓸 시간이 부족했다. 한창 수험기간을 겪으며 외워야 하는 지식을 머리 속에 밀어넣기에 바빴다. 뿐만 아니라 내 생각을 정돈된 양식으로 토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때론 격한 감정을 거친 단어로 표현했지만 나중에 읽었을 땐 어떤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양한 양식의 글쓰기에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나만의 개성이 없이 남의 것을 흉내내기만 했다. 자기소개서는 정해진 틀과 양식에 맞춰야 해서 따분하고 불편했고 자유로운 양식의 글을 쓰려 해도 글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주제를 정해놓고 써 보기도 했지만 구성이나 흐름이 어설펐다. 갈수록 글쓰는 게 어렵다 느껴졌다. 결국 오랜 세월 함께 해왔던 글쓰기와 멀어졌다.


  입사한 뒤로는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친목을 다지는 데 정신이 없었다. 외로운 수험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뛰어들었던 만큼 내 관심은 외부세계를 향해 있었다. 직장생활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하지만 조금 여유가 생긴 뒤부터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수험기간 동안 책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스스로 멍청해지는 것 같다 느꼈기에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읽었다. 그 때쯤부터 브런치의 글들도 많이 접했다. 읽고 난 감상평을 간단히 정리하거나 그 날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정도로 다시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ALEKSEI MOROZOV VIA GETTY IMAGES


힘든 시간을 보내며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


  입사 처음 6개월은 주어진 일이 별로 없어 큰 걱정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업무에 익숙해졌을 무렵부터는 업무와 사람에 치이기 시작했다. 신입다운 자세로 꿋꿋이 버텨내기야 했지만 속상한 날들이 점점 많아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받은 처우가 나빴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답답하고 서러운 일은 생겼다. 책임이 과다해진 탓이다. 풀고 싶은 마음을 주변에다 속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다보니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내면의 상처를 다독일 만한 다른 마땅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는 데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혼자 무작정 끄적이기보단 모임에 참석하는 길을 택했다. 남의 글과 견주어 보며 글쓰는 연습을 해 볼 요량이었다. 그렇게 소셜살롱인 '크리에이터 클럽' 글쓰기 모임에 참석하게 됐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받게 될 영감에도 기대가 컸고 개인적으로는 글쓰기를 생활화하려는 목표도 있었다. 큰 기대는 애초에 하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약 1년 간 크클을 통해 꾸준히 글쓰는 연습을 해 왔다. 매주 모임이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썼던 글은 한 달에 두어 편이 됐지만 다시 글에 흥미를 붙였다.


https://topclass.chosun.com/mobile/board/view.asp?catecode=&tnu=202005100017#_enliple


 아무에게도 말 못할 고민거리나
남 몰래 간직한 상처와 아픔에 대해
털어놓기엔 글쓰기만한 게 없었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나는 한 없이 힘들어했다. 감정이 매순간 크게 동요했던 탓에 더 그랬다. 그래서 크게 의견 충돌이 있었거나 혼자 너무 많은 의무를 떠 안아야 해 속상한 날엔 설움을 주체하지 못해 화장실에 들어가 울고 나오기도 했다. 그런 날에 내 마음을 위로한 건 글이었다. 이미 야근으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에 가면서도 나는 충혈된 눈으로 핸드폰을 붙잡고 글을 써 내려갔다. 악에 바친 악다구니도 아니었고 슬픔에 절은 내용도 아니었지만 담담하게 그 날의 하루에 대해, 스쳐 지나간 감정들에 대해 썼다.


  글을 쓰지 않았던 시절에도 내 내면의 자아는 성장하고 있었다. 또 다른 이의 완성된 글을 눈으로 좇으며 나는 나만의 특성을 담는 법을 조금씩 익히고 있었다. 감이 떨어져서 영 못 쓰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글 쓰면서 그를 여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한 동안 길을 잃었다가 더 새롭고 멋진 길을 만난 느낌이었다. 글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건 수사학적 기법 같은 게 아니라 내 생각의 깊이었다.


  크클활동을 하면서 내 글을 처음으로 남에게 공개하고 그 평을 듣게 되었는데 글에서 따뜻함이 묻어난다는 이야기가 가장 듣기 좋았다. 남을 위로할 만큼 내 마음이 자라난 덕분이었다. 사람들의 칭찬과 응원에 힘입어 나는 내면의 우울함을 때론 위트있는 글로 어떤 때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소설로 풀어냈다. 동시에 다른 이들의 글을 읽으며 위로를 받기도 했고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별거 아닌 일에도 머리 속엔 갖가지 생각이 지나갔고 불안한 마음은 온갖 풍파에 취약했다.


  남들의 시선에 나를 끼워맞추려고 하다보니 탈이 나기도 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순간들이 참 괴로웠다. 지금은 그조차도 이미 적응기에 이르러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지만 과거의 나는 상처를 돌볼 줄 몰라 무작정 아프기만 했던것 같다. 전에는 항상 내가 뒤쳐져 있다는 자괴감이 컸기 때문에 뭐든 앞서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과한 열정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부르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차분히 때를 기다릴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부끄러운 민낯을 마주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삶에 대한 자세도 바꾸어 나갔다.


  짓궂은 상처로 남아 오래도록 아프지 않기를 바란 나는 글을 쓰며 마음을 토닥여 주었다. 괜찮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되새김질 해주었고 잘했다는 말로 따뜻한 격려를 잊지 않았다. 최근에 겪었던 사기 피해를 극복하는 과정도 그랬다. 코로나로 인해 외부활동도 여의치 않은 틈을 타 더욱 고개를 든 잡념이 나를 괴롭힐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게 글쓰기였다. 한편으로 타인과의 연결고리가 되기도 했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 또한 글에서 털어버렸고 고마운 마음은 글로써 표현했다.


그렇게 내 삶은 글쓰기와 함께 기록되었고
나의 마음 역시 부드럽고 강하게 자라났다.



헤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다보면
나만의 길을 찾게 된다.


  세상엔 다양한 상처와 다양한 마음과 다양한 극복방법이 있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모양이 다르겠지만, 글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처음엔 누구나 정돈되지 않은 형태로 날 것의 감정을 토해내게 되지만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는 글과 함께 성장한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나는 글을 읽고 쓰면서 미처 전하지 못했던 진심을 확인하기도 하고 간과했던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만의 길이 찾아졌다. 생각의 지도도 정리가 됐고 특유의 문체도 생겼다.


  이제 내게 남은 건 매 순간을 지금처럼 잘 기록하는 일이다. 담고 싶은 순간을 잘 포착하다보면 이 길의 끝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어디로 뻗어있을지 알 수 없는 미래로 향한 길을 걸으며 조바심을 내지 않고 천천히 걸어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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